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Sep 22. 2022

나 지금 나인원에 있어요

그림자 노동의 커밍아웃



"은주 씨. 잘 지내죠? 내가 뭐 좀 부탁할 게 있어서... "


맞벌이할 때 아이 봐주시던 이모님이 실로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던, 그러니까 큰 아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를 봐주셨으니 못 뵌 지 10년이 넘었다. 그 후 명절이면 늘 고맙게도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시곤 했는데 그마저도 끊겨 최근 몇 년 간은 소식 없이 지내던 터였다. 그러니 부탁 전화는 다소 의외였다. 반가운 마음에 내용을 물었더니, 성경책을 하나만 구해서 보내달란다. 지금 일하는 집 아기 엄마한테 권해주고 싶다고. 근데 이 엄마가 어디 '~스'으로 끝나는 나라에서 와서, 러시아어로 된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닌 러시아어 성경이라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가 어려워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문자로 넣어주신 주소는 아래와 같았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 91. 나인원 아파트 OOO동 OOO호.


이모님이 요구한 사이즈와 옵션에 맞는 성경책 하나를 발송하고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책이 잘 도착했다고 고맙다고. 그리곤 "돈을 부쳐주신다"는 걸 정중하게 사양하고는 못다 한 얘기를 마저 나누던 중이었다. 이모님이 갑자기 "주소 봤죠? 나 지금 나인원에 있어요. 은주 씨, 나인원 알죠?" 하는데, 불현듯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얼핏 들은, 한남동의 빌라 하나가 머릿속에 끼어 맞춰졌다. 젊은 부호들과 샐럽들이 많이 산다는, 요즘 핫하다는 한남동의 그 신축빌라가. "아~~ 그 연예인 많이 산다는 부자 동네요?"


내가 이제 뭘 좀 알아듣는다 싶었는지 전화기 너머로 이모님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이어졌다. 아기 아빠가 비트코인인지 블록체인인지로 성공한 IT 업계의 젊은 사업가라고 했다. 한국에 주재원으로 들어와 있는데, 아기 보는 사람부터 청소하고 밥해주는 사람까지 다 따로 있다고 했다. 게다가 3교대라고 했다. "네에? 아이 돌보는 사람만 3명이라고요?" 내가 호들갑을 떨며 되묻자, 다시 전화기 너머로 수줍지만 자부심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고, 월 4백 받아요."


내가 회사로, 그리고 이모님이 우리 집으로 출퇴근하던 시절. 이모님의 근무시간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나와 똑같은 풀타임 근무였다. 공식적으론 아이 둘을 돌봐주는 육아도우미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이들 먹이고 가끔은 빨래도 돌려주는 가사도우미 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모님의 월급은 시세보다 조금 더 쳐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내 월급의 1/3을 살짝 웃돌았다.  


당시 가끔 시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와 육아를 돕곤 하셨는데, 그때도 손이 컸던 이모님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도 우리 애들 먹인다고 제철 과일은 물론 집에서 담근 게장이며 끓인 국을 한솥씩 짊어지고 환하게 웃으며 현관문으로 걸어 들어오곤 하셨다. 그리고 그런 이모님을 두고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었다.


“다 좋은 데, 낭비가 좀 심하대이.”


어머니 입장에서 여자라면 모름지기 한 푼 두 푼 모아,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아껴서, 빨리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할 궁리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모님은 그래 보이지 않았던 거다. 버는 족족 쓰고 내 것 네 것 없이 퍼다 나르는 방식은 어머니 세대에선 영락없이 가난의 꼴을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모님의 '큰 손'은 낭비가 아니라, 자기 노동을 팔아 쓰는 여자의 '당당함'이었다는 걸. 그건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의 출처가 다시 남편이 되는, 그래서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재차 효용을 따지다 결국  희생하고야마는, 어머니 시대 전업주부들의 경제 논리를 벗어난 방식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이모님이 그 돈으로 무얼 하던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10년 전 노동 시장에 나가 돈을 벌어들이던 나는 이제 돌봄과 가사노동이라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10년 전 돌봄과 가사노동을 업으로 삼아 '바깥'으로 진출한 이모님은 이제 GDP에 일조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돌봄과 가사노동은 남자들처럼 자유롭게 직업을 가질 수 없고 남편을 얻을 수 없었던 여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여자라면 남자를 위해, 어머니라면 아들을 위해 당연하게 제공되어야 하는 수고였다. 하지만 지금, 남자들의 그늘에 갇혀 유령처럼 존재하던 여성의 돌봄과 가사노동이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인듯 싶다. 그림자로만 존재했던 돌봄과 가사노동이 어느덧 고부가 가치로 자리매김 고 있는 것이다. 


며칠 뒤 이모님으로부터 다시 문자 하나를 받았다. 사과 한 박스를 보내줄 테니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주소를 찍어 보냈다.   

"감사합니다, 이모님!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림자 노동의 커밍 아웃, 그 최전선에서 부단히 경주중인 이모님의 성취에 하트를 가득 담아 응원을 보내드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