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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29. 2022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전문가들은 다 어디다 두고



온 국민이 광장으로 달려 나가 촛불시위를 하기 직전, 세월호로 기울 대로 기울어진 민심에 결정적으로 한 방을 날린 일명 '국정 농단 사건'이 막 언론 여기저기에서 터쳐 나오던 때였다. 사이비 종교 교주의 딸이 대통령의 비호 아래 각종 국정과 인사 문제에 암암리 개입한 것도 모자라 사전에 대통령의 연설문과 각종 서류를 보고 받아 검토했다고 하여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이 기사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뻘 되는 연배의 어른이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도 왜 편지 같은 거 쓰고 나면 내가 제대로 썼는지, 치우치거나 놓친 내용은 없는지, 여러 번 읽고 검토하잖아. 혹 맞춤법 틀린 거라도 봐줬음 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주기도 하고. 그런 의미로 친한 언니한테 한번 봐달라고 하는 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


나는 잠시 말문을 잃고 말았는데.


그 어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치에 관심이 지대한 우리 시대 진정한 보수의 대표 격이라 할만한 어른이셨다. 오랜 세월 나는 그녀로부터 한국 정치를 걱정하고 토로하는 마음을 들어왔고, 누구보다 정치에 진심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정치와는 전혀 담을 쌓고 살고 있던 나는 늘 역사와 전통이 배어 있는 그녀의 해박한 지식 앞에 그저 묵묵히 우리나라 한국 보수의 진면목을 경청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에 문외한인 나였어도 '농단'이 무슨 말인지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단'자는 잘 몰라도, '농단'의 농자는 농락하다, 우롱하다의 그 '농'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농락하고 우롱했다는 말이고, 또 그건 나 같은 정치 바보를 그야말로 개 돼지 아니, 바보 취급했다는 말에 다름 아니었기에... 나는 조금 화가 나려던 참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니, 정치가 무슨 소꿉놀이도 아니고! 연설문을 왜 동네 언니가 검토를 해요? 그 많은 정치 전문가들 다 어디다 두고? 대통령 비서실은 들러리로 있나요?"


이렇게 대충 땜빵을 해대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그 어른은 그 뒤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졌을 때에도 비슷한 말을 해서 또다시 나를 격앙시키고야 말았는데.... 그때는 '위헌'이 이유였다. 대통령 탄핵은 소추장에도 없는 사유를 만들어 넣은 종북좌파의 합작품이라는 둥, 사실오인에 법리 적용이 잘못되었다는 둥, 나는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이유들을 내세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위헌이라며 힘껏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니 헌법에 대해서도 일자무식인 나는 또 이렇게 반박할 밖에.


"어르신. 대한민국 헌법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대학에서 4년 동안 법 공부하고 사법 고시 힘들게 패스 해서 연수원 생활 2년 하고 다시 현장에서 수년간 판검사 생활하며 온갖 판례와 법리해석 거쳐 헌법재판소 재판관 된 8명 보다 헌법에 대해 더 잘 아세요? 그게 위헌인지 대체 어떻게 아세요?"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그 어르신에게 우리 세대라면 희미하게라도 가슴속에 새겨져 있기 마련인 단어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공성(公共性).


그건 정치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가까운 어르신의 태도가 부잣집 막내딸로 귀하게 자란 그녀의 태생적 신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또한 법률가들의 전문성을 자기 아래에 둘 만큼 그녀에게 명분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러니 뼛속까지 평민인 데다, 정치는 감히 높으신 어른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자란 나같은 평민은 절대 그녀의 정치색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렇게 어르신과 우리 세대를 이상한 방식으로 가르고 있는 격차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선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다시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P.S.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와 국정농단이라니.

재키 옷 갈아입으며 인형놀이 중인 그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찾아보니, 농단의 '농'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네요 ^^;

농단(壟斷) : 시장의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자기 물건(物件)을 팔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서 시리(市利)를 독점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나 대상을 제 이익(利益)을 위해 간교(奸巧)한 수단(手段)으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이름. (출처 :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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