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Sep 26. 2022

강아지? 그까짓 게 뭐라고~

홀린 듯 너를 들이던 날




"강아지 키우고 싶다며? 얘들아, 강아지 보러 가자~"


남편이 어느 날 핸드폰으로 턱턱, 뭔가 검색을 하는가 싶더니 우리를 모두 차에 싣고 어딘가에 내려놓았다. 서울의 한 강아지 분양소였다. 가게 주인은 곧이어 우리를 똑같은 상자들로 가득한 옆방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엔 온통 강아지들 천지였다. 상자마다 하얀 것, 까만 것, 누런 것, 그리고 회색이 간간이 섞인 강아지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어떤 것은 머리에 솜털 구름을 한가득 얹고, 어떤 것은 할머니 뽀글 파마를 하고, 또 어떤 것은 격투기 선수마냥 머리털을 빤지르르 뒤로 넘긴 채 꼬물거리고 있었다. 모두 말똥말똥 천진한 눈을 하고 열심히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그냥 '한번 보러나 가서' 절대 빈손으로 나올 수 없는 '꼬물거림'이었다. 냉혈한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남편을 따라갔다 덜컥, 집에 강아지를 들였다.


지금 같으면 유기견 센터라도 한번 둘러보고 분양소엘 갔을 텐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키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없었다. "왜 너희들은 맨날 말만 하고 실행하질 않냐"는 남편의 말에 조금 주눅이 들었고,  "강아지, 그까짓 게 뭐라고. 키우고 싶으면 키우면 되지, 맨날 키울까 말까 망설이기만 하냐"고 하자,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 T.T)  


생각해 보면 아이 있는 집 버킷 리스트 중에 '강아지 키우기' 항목이 없는 집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마주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 것도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키우면 좋겠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꼭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에 가까운. 딱 그 정도의 마음. 


어느 정도의 현실감 또한 있었다. 그 이쁜 걸 들여놓는 순간 모든 게 내 일이 될 거라는 걸 알 정도의 현실감은. "강아지만 들이면 우리가 다 할게요"라던 아들들의 맹세도 곧 시간이 흐르며 바랠 거라는 걸.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집 엄마들이 모두 한숨을 쉬며 내게 들려준 충고 "애들 말에 절대 속지 마세요"에서 나 또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그래서 결국 아침저녁으로 강아지 배변 기저귀를 갈고, 눈곱을 떼주고, 털을 빗기고, 산책을 시키고, 발을 닦이고, 목욕을 시키고, 물과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등등이 결국은 내 일이 될 거라는 걸.  그래서 망설였던 거다, 남편아. 실행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강아지가 우리 집에서 와서 보내는 첫날밤. 그 작은 것이 찡찡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그제야 불안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루에 나와보니 온몸을 들썩이며 숨인지 울음인지를 삼키고 있었다. 갓 눈을 뜨자마자 에미도 형제도 없는 곳에 팔려 왔으니, 이곳은 얼마나 낯설고 외로운 곳이었을까. 하지만 침대에서 함께 데리고 잘 자신이 없었다. 혹 매트리스에 오줌이라도 지리면 어쩌나, 자다 잠결에 깔아뭉개기라도 할까 봐. 그리고, 불현듯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저녁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나이 스물일곱 쯤 되던 해. 회식을 마치고 자취방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던 길이었다. 골목이 시작되는 어귀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던 나에게 천천히 손짓을 하는가 싶더니, 돌연 자기 앞의 라면 상자를 가리켰다. 상자 안에는 지금처럼 강아지 한 마리가 꼬물 거리고 있었고... 아...! 그렇게 탄성을 내지르고 돌아서는가 싶던 내 손안에 어느새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때도 무엇에 홀린 게 분명했다. 자취방에 돌아와 강아지와 단둘이 남게 되자 몰려온 두려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밤새 끙끙거리는 그 어린것을 어찌할지 몰라 뒤척이다 동이 트자마자 그 길로 상자를 들고 나왔다. '부디 나 대신 잘 부탁한다'라고, 상자 속에 작은 메모라도 남겨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장면 이후로는 기억이 뚝, 끊겨버렸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도 내가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는 방식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눈에 반하면 충동인 듯 운명인 듯, 그렇게 내 안에 들였다. 


그중에 개와 아들이 있었다. (어쩌면, 남편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