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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26. 2022

고객님, 이 개는 털이 매우 많이 빠집니다만

초보 견주가 운명의 강아지를 만났을 때



반려인들이 자신의 개와 만나던 순간에 대해 들려줄 때가 있다.


그 많은 애들 중에 유독 그 아이가 눈에 쏘옥, 들어왔다고 했다. 잘생긴 외모도 아니고, 오래 방치되었는지 털은 부스스하고, 심지어 한쪽 다리엔 학대당한 흔적도 있었지만, 도저히 눈에 밟혀 지나칠 수 없었다고. 그래서 가던 길을 되돌아갔더니 그 아이도 자신을 향해 몸을 일으켜,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다고 했다. 이 정도면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우리 개와도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있... 었다면 좋았겠지만, 하필 펫 샵 주인이 어떤 개를 찾으시냐길래, 우리가 그때 유일하게 알고 있던 '포메라니안'을 말했을 뿐인데, 그런데 하필 포메라니안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중이라 가격을 듣고 나서 우리가 조금 망설이고 있는 사이,(우리는 그때 강아지를 한번 '보러나' 갔을 뿐이고, 혹 우리가 그대로 나가버릴까 봐 다급해진) 주인은 재빨리 비슷한 다른 강아지를 소개해 준 것이 우리 강아지 '스피츠'였다. 하여, 우리는 스피츠의 가격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면서 (포메라니안과 스피츠는 아기 때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정말이다!), 그 길로 값을 치르고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1년쯤 뒤. 성견이 된 녀석의 털을 하염없이 빗기며 그제야 펫 샵 주인의 충고가 생각났다.


"고객님, 이 강아지는 털이 무척, 매우, 상당히 많이 빠집니다. 그러니 초보 견주이시라면..."


우리에게는 꽤 여러 번 들려줬을, 하지만 우리 귀에는 전혀 꽂히지 않았던 그 충고가 무려 1년이나 지난 뒤에야 떠오른 것이다. 그러니,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 터.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중 앞으로 혹 반려견을 들이실 작정이시라면 신중하게 재고해보시길 부탁드린다.

"스피츠는 털이 무척, 매우, 상당히... 아니 '최고로' 많이 빠지는 견종입니다. 그러니 초보 견주이시라면..."

물론, 당신이 운명론자라면 이런 충고 따위 아무 쓸모없을 예정입니다만.)


그럼 스피츠는 반려견으로선 아웃?이라는 편견을 가지는 분이 계실까 하야, 조금 우리 애 자랑을 해보자면... 일단, 스피츠는 너무 '사랑스럽다!' 주욱 뻗은 앞발 위에 얼굴을 살포시 올려놓고 눈을 이리 떼굴 저리 떼굴 굴리며 '이 인간이 언제 산책을 데리고 나가주나' 하고 기다릴 때. 사랑스럽다! 코딱지 만한 간식 하나 더 얻어먹어보겠다고 앉아, 엎드려, 탕~을 1초 만에 재빨리 끝내고 벌러덩 배를 까고 누운 채 곁눈질할 때. 사랑스럽다! 인간들 삼겹살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삼겹살을 가지고 밥그릇을 향해 가는 엄마 뒤를 좇아 한 바퀴 두 바퀴 돌고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따라올 때. 사랑스럽다.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스피츠가 가장 사랑스럽다!


그러고 보니, 첫 아이 낳고 한동안 강아지 못지않게 아들이 사랑스러운 때가 있었다.

나 : 우리 아들, 넘 잘생기지 않았어? 내 새끼라서 그런 거 아니지? 당신이 객관적으로 말해 줘 봐 봐.
남편 : 음... 솔직히 객관적으로도 잘 생긴 편이라 할 수 있지. 캬캬."


어느 날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니,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아들 바보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과 결혼하고 임신했을 때 솔직히 외모 쪽으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내 얼굴은 작고 갸름한데 남편 얼굴은 크고 둥근형이라 어떤 조합이 나올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나는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아들 조합이란 바로 '작고 갸름한 얼굴(여)+크고 둥근 얼굴(남) 조합이라는 걸!


눈을 감고 자는 아들의 얼굴은 <강아지똥>의 주인공과 꼭 닮았고, 아들이 눈을 뜨면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뒷덜미로부터 환히 후광이 내비쳤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에이리얼이 처음 다리를 갖고 신기해하던 그 볼륨감 쩔던 곡선은 내 아들의 다리와 발을 모델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기저귀를 갈기 위해 두 다리를 들쳐 올리면 그 아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그라미가 숨어 있었다. <똥이 풍덩>이라는 아기 배변책에서 봤던 그 완벽한 똥구멍이! 모두 내 아들에게 있었다.  


<똥이 풍덩!> 여자편. 알로나 프랑켈/김세희 역 (비룡소)


그러니 어찌 내가 이 생명체들에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결정되는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모나 배우자나 자식이 선택되는 방식 따위가 그랬다. 가장 중요한 것 중에 내 의지나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내 안에 들이며 알았다. 때로 내가 모르던 인생이 내게 가장 완벽한 것을 줄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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