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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28. 2022

아무짝에 쓸모없는 널

어쩌자고 집에 들였을까



며칠이 지나자 이 녀석은 우리 집을 제 집처럼 마음껏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다 보면 구석탱이에서 가끔 지름 5센티미터 정도의 노란 운석 자국이 발견되었다.

분명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고 생각했던 각티슈가 바닥에 나뒹굴고 주위는 온통 하얀 화산재로 가득.  

어느 날은 후다닥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데, 내 유일한 천연가죽 샌들 끈이 두 동강 나 있었다.  


그때부터 인터넷에 '3대 지랄견'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보기 시작했다.

(혹 오해가 있을까 하여, 스피치는 절대~ 3대 지랄견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들은 어느 때까지 모두 지랄견에 가까운 시기를 보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평생?

(이즈음에서 우리는 아기들이 서서히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어느새 네 발로 도마뱀보다 더 빨리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던 시기를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어보기 전까지 그건 '지랄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곧 알게 되지요)


가끔 '새끼'들이 우리에게 전폭적으로 요구하는 헌신들에 대해 생각하면, 아찔해질 때가 있다. 혼자 먹을 줄을 아나, 제가 싼 똥을 치울 줄을 아나, 혼자 눈곱을 떼어낼 줄도, 심지어 인간 새끼는 저절로 잠드는 법도 없이 밤새 빽빽 울어댄다. 저 홀로 할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배운 만큼 배운 인간들이 저것들을 집에 들여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는 걸까.(하룻밤 아니 한낮의 실수)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도 출근해서 집에 아무도 없던 날. 아침 볼일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아파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길로 집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또 녀석과 나뿐일 터. 내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녀석은 신발장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겠지. 그럼 그 뒤부터 계속 나를 졸졸 좇아다니겠지. 내게 밥과 물과 간식을 달라 요구하고, 놀아달라고 볼을 굴려대고, 책을 좀 읽으려 하면 산책부터 시켜달라며 나를 빤히 쳐다보겠지. 그럼 나는 그때부터 안절부절못하게 될 게 뻔했다. 이제야 내 '새끼'들 배변 훈련시켜 혼자 화장실 갈 줄 알게 만들어놓고, 이제 학교 보내 놓고 내 시간 좀 가져볼까 했는데, 어쩌자고 다시 나는 이런 '새끼'를 집안에 들였던가.(그래서 바보야, 그새 잊고 둘째를 낳았지)   

 

인간이 처음 늑대를 개로 받아들이던 그 아득한 시절을 상상해 본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매일매일 먹는 것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너. 어느 날 너는 인간이 피운 모닥불의 따듯함과 인간이 먹다 남긴 고기 냄새에 이끌려 우리에게 다가온다. 야생의 위협을 감지한 인간은 곧 옆에 놓인 작대기를 손에 살며시 그러쥔다. 어른 거리는 불빛 너머로 대치하는 인간과 늑대. 하지만 너는 너무 지치고 굶주려 어느 순간 야생의 끈을 놓고야 만다. 치켜뜬 눈의 힘이 풀리고, 빳빳했던 꼬리가 축 처진다. 그리고 내려가는 듯싶던 꼬리를 이내  살랑살랑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긴장했던 인간의 눈빛도 네 꼬리를 따라 조금 흔들렸던가. 인간은 잡았던 작대기를 내려놓고 대신 살점이 남아 있는 뼈다귀를 손에 바꿔 든다. 너는 까만 코를 킁킁거리며 한 발짝, 두발짝, 내게 다가온다. 이제 꼬리는 빙글빙글 한 템포 높은 호를 그리며 공중을 휘감는다. 내 손에서 뼈다귀를 받아 맛있게 먹는  너를 지켜보며 나는 행복하다. 간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너는 바닥에 드러누워 이내 내게 배를 까보인다. 나는 답례로 너의 부드러운 털을 살살 긁어준다. 어느새 나의 다른 손이 너의 목덜미에 줄을 감고 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너는 오늘도 엄마가 나한테 넘어왔다며 신이 나 현관문을 나선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너를 산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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