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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08. 2022

귀의 쓸모

아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를 갖게 될 때까지



소리와 촉각에 대한 예민함.

감정 읽기의 어려움.

선택적 천재성.

미결정 상태에 대한 불안.

루틴 안에서의 안정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던 어느 날. '자폐'라고 불리는 어떤 특성을 분류해보다가 우리 집 남자들과의 교집합을 발견하고는 하마터면 캭,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이며 극단적으로 짜 맞춘 교집합이자, 에... 또, 혈액형 유형별 성격 맞추기식 심심풀이 땅콩용이니, 미간에 힘주어 진지하게 읽으실 필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근거가 전혀 없냐 하신다면, 이런 전문가의 소견 하나 조심스럽게 속삭여드릴 수도 있고요. 

"전형적인 남성의 특성을 극단적이고 과장된 형태로 앓는 것이 어쩌면 자폐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어리고 아직 우리 시댁이 모두 함께 모여 명절을 보내던 당시. 시부모님이 올라오시면 우리는 1주일 정도 함께 한집에서 지내곤 했다. 서로의 집이 멀다 보니 한번 만나기도 힘들고, 또 남들 다 올라올 때와 다 내려갈 때는 기차표도 비싸니 교통비도 아낄 겸 명절 전후로 하루 이틀을 늘리다 보니 그게 1주일이 되곤 했던 거다. 좁은 집에 큰집 아들 셋과 우리 집 아들 둘을 합치면 두세 살부터 초등학생까지 그야말로 천방지축 짐승돌 다섯이 모인 정글이 따로 없었다. 


3일째 되던 저녁이었던가. 그득하게 쌓인 설거지 후 애들 씻기고 잠옷을 갈아입히고 방 닦고 이부자리 깔며 잘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잘 놀던 짐승돌 두 마리가 변신 로봇 하나를 가운데 두고 으르렁 거리기 시작하자 엄마들이 막 빽, 하고 소리를 지르기 일보 직전. 남편이 갑자기 주섬주섬 자기 가방을 싸기 시작하더니,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나 오늘 차에서 잘게." 


뭐어? 밖에 나가서 혼자 자겠다고? 모처럼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모인 명절에? 우리 여자들이 황당해하며 돌아보는 사이 남편은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고, 정말 그 길로 나가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명절에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아내에게 남겨둔 채 남편을 가출하게 한 것이 아이들의 음성 데시벨 때문이란 걸. 만나자마자 기쁨에 겨워 집안 가득 내뿜던 난장판 상황이 3일 차이니, 다섯 아이들의 소음 데시벨을 그가 꽤 오래 참아왔다 싶기도 했다.  


'개와 사람의 몸을 비교한 쉽고 친절한 해부학'이란 부제가 붙은 <개는 무엇이 다를까?>에 의하면, 놀랍게도 개에게는 소리를 선택해서 듣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개는 인간에 비해 고막에 전달된 소리를 22배로 증폭시켜 듣다 보니 사람보다 훨씬 더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댕댕이들에게는 인간과 더불어 살며 함께 발달시킨 것이 있으니 바로 그것은!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닫는 능력이라고 한다. '산책'과 '간식' 소리엔 첫 소절이 발사되기도 전에 귀가 쫑긋, 반응하지만, '이리 와'와 '자자' 같은 소리엔 전혀 끄덕하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원리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 아들들이 엄마 목소리만 선택적으로 잘 못듣는 것도 혹시 같은 원리? 오랫동안 아들 연구에 몰두하신 남아 미술교육 전문가 최민준 소장의 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아들들은 그 많은 소리 중에서도 특히 사람 소리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때문에 엄마의 잔소리가 아들들 뇌에 꽂히기를 바란다면, 귀가 아니라 눈에 대고 호소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설거지를 하던 중이라도 꼭 수도꼭지를 잠그고, 고무장갑을 벗고, 탁탁탁 걸어 나와 아들 얼굴을 바투 잡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잔소리를 발사해야 그 소리가 비로소 뇌에 꽂힌다고 했다. (필요한 경우, 등짝 스매싱을 곁들어!) 


강의 내용 중에서 제일 재밌었던 건, 이 아들에 대한 조언이 주변 사람들에게 격하게 공감을 얻는 이유였다. 바로 아들 키우는 집에 귀가 안 들리는 분이 '하나 더' 계시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집에 계신 그분에게 내 말이 들리게 하려면 우리는 또다시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남편을 사로잡고 있는 TV 화면을 온몸으로 가린 채, 남편의 (큰) 얼굴을 부여잡고, 눈에다 레이저를 쏘며 말해야 한다는 건데. 


구구절절 모두 옳은 소장님을 말씀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만 싶은 거지.  

그러니까, 그 짓을 언제까지 하란 말인가요오오~~~? 


신체에 대한 담론에서 귀는 우리 몸의 기관 중에서도 가장 겸손한 부위다. 눈이 쉽게 유혹에 넘어가고 마찬가지로 타인의 불행에 눈감아 버리기 또한 쉬운 반면, 귀는 불수의근이라는 특성상 임종 직전까지 열려 있다. 마지막까지도 다른 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라는 막중한 의미가 담은 귀가 아니냔 말이다.  


남자들이여~ 그러니 아들이 남편이 될 때까지, 그대들은 뭣들 하고 그렇게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를 갖게 되었는고? 그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기이하다는 거다. 


P.S. 어느새 소리에 대한 예민함이 귀를 닫는 것으로 둔갑해버렸네. 하~ 어찌 또 이런 일이!   


자폐에 관한 전문가 소견 : <데카르트의 아기>, 폴 블룸 저, 동녘사이언스. '1장 의중을 읽는 사람들(60p)' 

[유튜브]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 (2016. 8. 23) - 국내 1호 남아 미술교육 전문가 최민준 소장이 아들 맘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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