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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Sep 30. 2022

사골국물 태워 먹던 날

'김연아 엄마'와 파충류의 뇌



가스레인지에 사골국물을 올려놓고, 잠시 방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가... 아차, 하고 후다닥 나와보니 마루엔 이미 연기가 한가득. 사물이 분간 안 갈 정도의 희뿌연 연기가 허리 위까지 차올라 있었다. 놀랍게도 아들은 꿋꿋이 소파 한쪽 끝에 앉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엄마가 놀라 소리치는 통에 그제야 고개를 었다. "와~ 넌 대체 연기가 이렇게 가득 찰 동안 뭐했니?" (사골은 지가 올려놓고선!) 애꿎은 아들에게 빽, 한소리를 퍼붓고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며 창문을 열고 연기를 뺀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그제야 강아지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 피치가 없네... 피치가 어딨지?"

(피치는 우리 강아지 이름. 아기 때 눈에 복숭아빛 눈물 자국이 발그레하니 예뻐서 붙여준 이름이다.)


그 길로 다시 이 방 저 방 수색을 시작했는데... 와, 이 녀석을 어디서 발견했게?

화장실이다!

화장실 문을 확, 제쳤더니 거기서 하얀 털 뭉치 하나가 엉덩이를 위로 쳐든 채 은색 하수구 구멍에 코를 박고 있었다. 저 혼자 살겠다고 수쳇구멍에 코를 박고 헐떡이고 있었다.


"야이놈 강아지야아~~~ 어, 연기가 나면 먼저 주인한테 위험을 알려야지! 연기가 나면 컹컹컹, 하고 짖어야지! 너 혼자 살겠다고 하수구에 코를 처박고 있어?"


분명 짖는 소릴 듣지 못했다. 녀석은 집에서 별로 짖는 법이 없어서, 무슨 소리라도 냈다면 분명 나와봤을 터였다. 교과서에서 읽은 개의 효용 따위가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고로 개는 집을 지키고, 위험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고...에, 또... 진도의 어느 백구는 몇 백 킬로미터를 달려 주인을 다시 찾아올 정도로 충성심이 높고, 또 일본의 어느 개는 집에 불이 나자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다 까맣게 타 죽은 주검으로 발견되기도(너무 나갔군) 했다는데, 아니 이놈, 너 진짜 이렇게까지 쓸모없기야?


그러다 문득, 불과 몇 주 전 산책길에서 내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려준 칭찬이 생각난 거다.  


우리가 산책 나설 때면 한결같이 짖어대는 개가 있었다. 우리 동 9층 어딘가에. 처음엔 어쩌다 들리는 소리겠지 했는데, 꼭 우리가 나갈 때 짖고 1시간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짖었다. 언젠가 그 소리를 듣고 멀뚱하게 서 있자, 지나가던 다른 반려인이 말했다.


"저 개 맨날 저래요. 주인이 집에 없는 건지, 있어도 통제가 안 되는 건지. 민원 엄청 들어올 텐데."


쉬를 가끔 엉뚱한 데 지려놓고, 신발끈을 물어뜯어도, 그건 집안에서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밤낮으로 짖어댄다면, 그래서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데, 주인은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저런 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나는 '너'를 꼬옥 껴안았던 거다. 그런 치명적 결함 없이 우리 집에 와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는 쫄보라 네가 저렇게 짖었으면 어찌할 줄 몰랐을 거야.


아들을 키우면서도 매일 이런 질문 언저리에서 헤맸다. 그래도 밖에 나가 애들 때리고 다니진 않으니 괜찮아.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애들도 많다는데, 알바라도 하겠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공부까지 잘했음 더 좋았겠지만, 그때 내가 닦달했다면 지금쯤 '강박'에 '공황'을 달고 살았을지도 몰라.


물론 한편에선 늘 이런 목소리도 있었다. 일명 '김연아 엄마'의 목소리다. 내가 김연아 엄마였다면, 애가 학원 그만둔다고 했을 때 얼르고 달래서 요령 있게 설득했을 텐데.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 단계만 잘 넘기면 너는 정말 멋진 어른이 될 거야, 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을 텐데. 그럼 아이는 지금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김연아처럼 훌륭한 어른이 되었을텐데. 나는 왜 그때 잘 대처하지 못했을까. 확신과 힘을 주지 못했을까. 김연아처럼 자랄 수 있는 애를 망친 건 다 나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내가 김연아 엄마였다면~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비교와 가정은 '쓸모 있는 어른'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무한 가지를 뻗어 나갔다.


지금은? 누가 묻는다면, 정답을 모르긴 매한가지.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처럼 아들의 말 한마디에 바로 파충류의 뇌가 삐뽀삐뽀~ 빨간불을 작동하고, 내 안의 불안이 미친 듯이 널을 뛰진 않게 되었달까. 불안이 경험을 입고,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이제 포유류의 뇌 정도로는 작동하된 덕분이다.


사춘기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알았다. 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불안의 역치가 높은 사람이며,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그러니 내가 쫄보고, 김연아 엄마가 아니더라도 애는 적어도 나만큼은 자기 인생을 어찌어찌 헤쳐나가며 살아가지 않겠는가, 하고.


아들의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내가 누구인지 계속 묻고 있다. 


파충류의 뇌 : 우리의 뇌 중에 가장 먼저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부위로, 뇌간과 소뇌 등을 가리킨다. 기본적인 생존과 본능에 관여하는데, 특히 위험이나 불안을 감지할 때 깜빡이는 부위라고 알려져 있다. (근데 요즘은 거의 폐기되어 가는 이론인 걸로 알고 있음.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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