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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9. 2022

어떤 이에겐 필요하지만 내겐 맞지 않은 좋은 말

내 본성이 가리고 있던 허울 좋은 구호들



이제 생각해 보면 내가 아들에 대한 주도력을 상실하게 된 지분의 30% 정도는 강사 선생님에게도 있다. ^^;

어느 날 학부모 교육에 오신 강사 선생님의 결정적 한마디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나쁜 부모냐. 아이가 해달라는 데로 다 해주는 부모예요. 그런데 그런 부모보다 더 나쁜 부모가 있어요. 어떤 부모인지 아세요?


답이 나오기도 전에 혹시 내가 그런 부모일까 보아 지레 눈빛부터 흔들리고 있는 중인 우리를 향해 선생님은 위풍도 당당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해주는 부모예요!


물론 나는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해주는' 그런 부지런한 부모도 못된다. 나를 흔든 결정적 한마디는 그다음이다.

여러분은 스스로가 맘에 드세요? 여러분 생각만큼 아이를 키우면 딱 아이가 여러분만큼 자랄 거예요. 하지만, 아이의 역량을 믿고 키우면 아이는 자신이 가진 무한 잠재력을 꽃피우며 자랄 거고요.


스스로가 맘에 드냐는 이 질문. 바로 이게 트리거였다. 나는 늘 나 자신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자존감 낮고, 재능도 별로 없는데, 수완도 없고, 머리도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 선생님이 그런 방법이 있다고 조언하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 키우면 딱 나만큼 밖에 못 자라고, 아이의 역량에 맡기면 아이는 무한 잠재력을 가지고 뻗어나갈 거라고. 근데 그러려면 부모인 내가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아이 안의 무한 잠재력이 아이를 절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고. 그때 내 안의 트리거가 탕~하고 발사되어 날아가 꽂 게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거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려면 네 개입을 최소화해야 해!

(경제가 잘 작동하려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해. 그럼 보이지 않는 손이 저절로 작동하게 될 거야)


바야흐로 세상은 헬리콥터 맘이다, 돼지엄마다, 하며 새로운 치맛 바람녀들을 양성해 내는 중이었다. 저 교육의 메카 강남에서는 대학 나온 고학력 여성들이 일찌감치 가정으로 들어와, 우리 집 한 달 생활비보다 많은 돈을 사교육에 쏟아부으며 연일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긴 해야겠지만 내가 아무리 용을 쓴들, 물심양면으로 나는 절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 그들보다 영악하지도 못할 바에야, 아예 개입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수많은 육아 전문가들도 얘기하지 않았나. 요즘 애들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너무 풍족하기 때문이라고. 부모들이 저만치 앞서 온갖 사교육으로 융단을 깔아놓으니 아쉬운 것이 없어 좀처럼 스스로 뭘 하려 들지를 않는다고. 그래서 강남 학원가에는 결핍을 주는 교육이 유행이라고도 했다. (결핍을 주기 위해 다시 돈을 써대는 게 무슨 결핍인가 싶지만은) 그러니 나는~! 아쉬운 것 없는 저들의 약점과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보다 앞서는 부모가 되지 말고 아이 뒤를 따라가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거다. 아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아이 보다 앞서지 않는 부모. 내가 빠져야  아이는 나보다 훌륭하게 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놀이터에 풀어놓았다. 온갖 전문가들도 대한민국의 과열된 교육열에 대해 비판하며 내 이론을 뒷받침해 주었다. 물론 그런 화려한 이론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어린것이 좁은 교실에서 이미 대여섯 시간을 꼼짝없이 잡혀 있다 이제 돌아왔는데, 바로 숙제부터 하라는 말은 내게 잔인해 보였다. 특별한 날엔 학원 빠지는 것도 허용했다. 전학 갔던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다거나 친구 생파에 초대되었다거나 오늘이 입학식이나 방학식이면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험 성적으로 아이를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초등학교까지는 이렇게 살아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아이가 꼭 해야 할 숙제는 많지 않았고, 학원은 주로 공부와 상관없는 예체능 학원이었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이 성적은 늘 우수했다. 한가지 맘에 걸리는 건, 학교에서 늘 칭찬 일색인 것과 달리 집에만 오면 퍼지는 아들의 이중성이었다. 하지만 학부모 면담 때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고충을 토로했을 때, 선생님은 이런 말로 나를 또 안심시키기도 했던 거다.   


"어머니. 학교에서도 그렇게 규칙 지키며 바른생활하느라 제 딴엔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겠어요. 그러니 집에서는 좀 풀어줘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 통지표에 "수업 태도가 환상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다'라고 적어주셨던 담임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그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아 그 말을 너무 오랫동안 무턱대고 믿었다.


그 모든 게 '문제'가 되어 우르르 쏟아진 게 사춘기다. 집에 오면 쉬는 것부터 하던 방식이 어느 때부터인가 핸드폰과 게임으로 바뀌면서 안 그래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들이 이제 전두엽까지 마비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열심히 뛰어놀면 그 에너지가 중학교에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공부 에너지로 전환될 줄 알았는데, 아들에게 학원은 어느새 자신의 컨션에 따라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들의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던 부모의 태도가 아들에겐 공부를 등한시 해도 되는 빌미가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사춘기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나는 그게 내가 아이에게 어떤 '몸'을 만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과열된 교육 방식에 저항한다고 생각했던 내 자유로운 양육 방식은 실은 그저 내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방식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냥 본성대로 아이를 키운 것이었다.


모든 아이가 완벽한 기질을 타고나는 것이 아닌 이상, 아이들은 양육 과정 중 부모의 적절한 돌봄과 제재를 통해 보다 균형 있는 인간으로 자라게 된다. 내 아들은 나와 같이 자유로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 보다는 제재와 훈련이 좀 더 필요한 아이였다. 하지만, 제재와 훈련은 자유로운 성향의 엄마인 나에게도 없는 것이었으므로, 아들에게 적용하려면 내 굳어진 몸부터 비틀어야 했다. 훈련. 그건 나부터 변화해야 하는 불편한 방식이므로 나는 은연 중 피하려 했던 것 같다. 대신 나는 경쟁적 환경이 내게 던진 불안을 만회하기 위해, 그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 중 내가 듣고 싶은 것 하나를 붙들고, 그저 내 본성에 편한 방식으로 아이를 키웠다. 좋은 부모는 아이보다 앞서지 않는 부모라는 허울 좋은 구호를 붙들고.  


어떤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그 말이 내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걸 인정하는 데에만 꼬박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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