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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30. 2022

수 클리볼드가 쏘아 올린 질문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니 괜찮다는 착각



내가 아들 사춘기로 지독한 시간을 보낼 때 사람들이 충고했다.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묻는가, 하고. 사춘기는 원래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돌아온다고. 가장 중요한 하나만 잡고 가라고.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대해주기만 한다면 크게 엇나갈 일은 없을 거라고.


아들 사춘기가 잦아들고 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에도 일견 일리가 있었다.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던 아들은 그저 한때 자기 욕망에 너무 충실해 주변일랑 아랑곳하지 않는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내 안에서 계속 나를 불안하게 다그쳤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계속 내가 아들에 대해 무언가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생각해 보니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2016년 출간된 <나는 가해자의 부모입니다>(수 클리볼드 저, 반비). 1999년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사고를 다룬 책이다. '에릭'과 '딜런'으로 알려진 재학생 둘이 검은 프록코트를 차려 입고 학교에 찾아가 친구들을 향해 900발 이상의 총을 난사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 특히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총기 난사범 중 하나인 딜런의 어머니가 써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딜런은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모두 그를 선샤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한다. 좀 내성적이었다는 것만 빼곤 참 키우기도 쉬웠고, 아빠와의 관계도 좋아서 집에서 자동차 부품을 사서 함께 조립을 하기도 했다고. 사춘기 들어오면서 말썽을 좀 피우긴 했지만, 그야말로 다른 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아이였다. 딜런의 엄마 또한 평생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던 교육가였다. 하지만 아들이 친구 하나와 1년 전부터 이 날의 참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사실도, 딜런이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본문에 의하면 보통 2인조로 움직이는 총기 난사범 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조합이 있는데 그게 바로 공격적인 성향의 사이코패스(에릭)와 의존적인 성향의 우울증(딜런) 조합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조사한 한 박사가 이 둘의 성향에 대해 내린 정의가 있는데, 이를 보면 딜런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에릭은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했고, 딜런은 자기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 “고 생각한 것 같다.


에릭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날 학교에 갔지만, 딜런은 자살하기 위해 학교에 간 것이었다.


예상처럼 이 사건 후 많은 사람들은 딜런의 부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제 아이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통념. 부모가 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아들이 저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를 때까지 몰랐을까, 라는 의문. 나도 처음엔 이 엄마에게 분명 무슨 문제가 있을 거라고, 그런 심정으로 계속 책을 넘겼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 즈음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부모에게서 그렇다 할 혐의를 찾을 수 없었던 거다. 그리고 찜찜한 기분으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서문을 펼쳤는데, 거기 바로 내 의문을 해소해주는 문장이 있었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상한 아이 뒤에 이상한 부모가 있다면, 내심 우리는 안도한다. 적어도 나는 그 정도로 이상한 부모가 아니니까, 우리 아이는 괜찮을 거라고. 적어도 저 여자처럼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불행까진 겪지 않을 거라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금 안도하는, 나는 딱 그 정도의 부모밖에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우리의 통념을 철저히 뒤엎는다.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아이를 잘 키웠든, 이제 아이는 자라면서 더 많은 시간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보내게 될 거라고. 너는 점점 더 아이 친구들의 이름을 모르게 될 거고, 네 아들은 점점 더 부모 보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거라고. 


그럼 너는 점점 더 네 아이에 대해 모르는 엄마가 될 거라고. 비록 내 아들이 사이코패스는 아니더라도 사이코패스와 함께 합을 맞춰 총기를 난사하게 되는 우울한 아들일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한 엄마들이라면 한번씩 극단적으로 펼쳐내고 대개 아빠들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말하는 그런 상상들. 


이 책이 출간된 2016년은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여객선 하나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며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총 304명의 꽃 같은 목숨을 빼앗아간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학교조차 더 이상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는 인식. 나는 이제 아이를 점점 놓아주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도, 국가도, 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만나며 불안은 증폭되었다. 


내 선뜻 아이를 놓지 못하는 이유 이런 사회 환경적 불안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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