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지 미루고, 금방 싫증내고, 이상한 완벽증에, '마음' 없이는 절대 무엇 못하는 성격.
사춘기.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아들의 특징이다. 처음엔 몰랐다. 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나중에 이 항목들을 모두 늘어놓고 반대로 뒤집자 남편이 나왔다. 그러니 빼박, 아들은 나를 닮은 게 틀림없었다.
아들은 예전부터 집으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을 엄마에게 잘 전달하지 않았다. 아들 둔 집에서라면 흔히 있는 레퍼토리일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어쩌다 옆집 엄마를 통해 가정통신문을 인지하고는 회신문을 작성해서 가방에 넣어주면, 이번엔 제출하는 걸 깜빡했다. 어느 날은 그냥 넣어두면 또 잊을까 봐 책가방 바로 위에 올려 두고, 잘 챙겨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고 나서 보니 회신문이 방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가정통신문뿐이겠는가. 가족 모두 일찍 교회로 출발해야 하는 일요일 오전. 우리는 점심까지 먹고 들어오니 늦게라도 꼭 밥 챙겨 먹으라고, 찌개와 반찬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갔지만, 말만 하고 먹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귀찮아서 못 먹나 싶어서 식탁 위에 아예 밥을 차려 놓고 나갔는데도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다음엔 어떻게 했을까. 밥을 차려놓고 아들을 깨워 식탁에 앉혀놓고 나왔다. 한술 뜨는 걸 분명 보고 나왔다. 설마, 했는데... 돌아와 보니 또 그대로였다.
"아침에 분명히 너 먹는 거 보고 나왔는데 어떻게 된 거니?"
아들은 우리가 떠나자마자 도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고 했다.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돌'보듯 했다. 학원비 결제하라고 카드를 쥐어줘도 꼭 기한을 넘겨 두세 번 독촉을 받은 뒤에야 긁고, 미리 한 약속도 더 맘에 드는 것이 생기면 언제라도 쉽게 교체되었다. 당최 이 '남자'와는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었다.
놀라운 건, 참다못한 내가 어느 날 친정 엄마한테 아들의 만행을 쏟아냈을 때 전화기 너머로 깔깔거리며 들려온 웃음소리였다.
"야, 너는 신발 위에 도시락 올려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갔어~~~"
뭐? 내가 그렇게 물건을 못 챙기고 다녔다고? 말도 안 된다! 신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놨다는 건, 그만큼 내가 자주 도시락을 안 가지고 학교에 갔다는 건데? 하늘에 맹세코 나는 학교 다니며 점심을 굶어본 적도, 도시락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돌아간 기억도 없다. 전혀~ 없다. 그렇게 자주 있었던 일을 내가 이렇게까지 기억 못 할 리가!
억울한 마음에 동네 친구들에게 하소연했지만, 그중 하나가 다시 깔깔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 내가 그때 피아노 얘기한 거 기억나? 피아노를 그렇게 배우고 싶어 했는데, 우리 엄마가 안 시켜줘서 두고두고 원망했다고. 우리 엄마가 언니는 뭐든 다 시켜주면서 나는 그거 하나 안 시켜줬거든. 그래서 지난번에 울 엄마한테 그 얘기했더니 뭐라시는지 알아? 내가 울고불고 피아노 그만두겠다고 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끊었다는 거야."
우린 모두 선택적 기억 착오자들이며, 모든 기억은 내게 유리 한대로 편집된다.
아무리 변명해 보려 해도, '신발 위 도시락' 같은 디테일이 거짓말일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도 어디 나갈 때 늘 허둥지둥 서둘다가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을 잊고 나오는 사람이 아니던가. 무인 까페 커피머신에 신용카드를 꽂아놓고 커피만 들고 나오는 사람이다. 지갑 잃어버리기. 우산 놓고 오기. 모두 젊은 시절 내 레퍼토리. 하, 그러니 친정 엄마의 기억이 틀리다고 반박할 근거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 딸이라면 좀 달랐을까? 동성이라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었을 테니 아들보다는 나았을까?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아들은 독립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이성이라서, 이해가 안 되면 오히려 놓아버리기도 쉽다고 한다. 하지만 딸은 어떤 면에서 더 속속들이 이해가 되다 보니 아들보다분리 독립이 더 어렵기도 하단다. 정서적으로도 훨씬 결속되어 있어 갈등이 생기면 그만큼 골도 더 깊다고 한다.
딸이든, 아들이든 어렵다. 나를 닮아 어렵고, 잘 알아서 더 불안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 아니던가.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