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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07. 2022

아들이 나와 닮아서...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모든지 미루고, 금방 싫증내고, 이상한 완벽증에, '마음' 없이는 절대 무엇 못하는 성격.


사춘기.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아들의 특징이다. 처음엔 몰랐다. 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나중에 이 항목들을 모두 늘어놓고 반대로 뒤집자 남편이 나왔다. 그러니 빼박, 아들은 나를 닮은 게 틀림없었다.


아들은 예전부터 집으로 보내주는 가정통신문을 엄마에게 잘 전달하지 않았다. 아들 둔 집에서라면 흔히 있는 레퍼토리일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어쩌다 옆집 엄마를 통해 가정통신문을 인지하고는 회신문을 작성해서 가방에 넣어주면, 이번엔 제출하는 걸 깜빡했다. 어느 날은 그냥 넣어두면 또 잊을까 봐 책가방 바로 위에 올려 두고, 잘 챙겨가라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고 나서 보니 회신문이 방바닥에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


가정통신문뿐이겠는가. 가족 모두 일찍 교회로 출발해야 하는 일요일 오전. 우리는 점심까지 먹고 들어오니 늦게라도 꼭 밥 챙겨 먹으라고, 찌개와 반찬 있는 곳을 알려주고 갔지만, 말만 하고 먹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귀찮아서 못 먹나 싶어서 식탁 위에 아예 밥을 차려 놓고 나갔는데도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다음엔 어떻게 했을까. 밥을 차려놓고 아들을 깨워 식탁에 앉혀놓고 나왔다. 한술 뜨는 걸 분명 보고 나왔다. 설마, 했는데... 돌아와 보니 또 그대로였다.

"아침에 분명히 너 먹는 거 보고 나왔는데 어떻게 된 거니?"

아들은 우리가 떠나자마자 도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고 했다.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면 '돌'보듯 했다. 학원비 결제하라고 카드를 쥐어줘도 꼭 기한을 넘겨 두세 번 독촉을 받은 뒤에야 긁고, 미리 한 약속도 더 맘에 드는 것이 생기면 언제라도 쉽게 교체되었다. 당최 이 '남자'와는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었다.  


놀라운 건, 참다못한 내가 어느 날 친정 엄마한테 아들의 만행을 쏟아냈을 때 전화기 너머로 깔깔거리며 들려온 웃음소리였다.  

"야, 너는 신발 위에 도시락 올려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갔어~~~"


뭐? 내가 그렇게 물건을 못 챙기고 다녔다고? 말도 안 된다! 신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놨다는 건, 그만큼 내가 자주 도시락을 안 가지고 학교에 갔다는 건데? 하늘에 맹세코 나는 학교 다니며 점심을 굶어본 적도, 도시락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돌아간 기억도 없다. 전혀~ 없다. 그렇게 자주 있었던 일을 내가 이렇게까지 기억 못 할 리가!


억울한 마음에 동네 친구들에게 하소연했지만, 그중 하나가 다시 깔깔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 내가 그때 피아노 얘기한 거 기억나? 피아노를 그렇게 배우고 싶어 했는데, 우리 엄마가 안 시켜줘서 두고두고 원망했다고. 우리 엄마가 언니는 뭐든 다 시켜주면서 나는 그거 하나 안 시켜줬거든. 그래서 지난번에 울 엄마한테 그 얘기했더니 뭐라시는지 알아? 내가 울고불고 피아노 그만두겠다고 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끊었다는 거야."


우린 모두 선택적 기억 착오자들이며, 모든 기억은 내게 유리 한대로 편집된다. 


아무리  변명해 보려 해도, '신발 위 도시락' 같은 디테일이 거짓말일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도 어디 나갈 때 늘 허둥지둥 서둘다가 꼭 가져가야 할 물건을 잊고 나오는 사람이 아니던가. 무인 까페 커피머신에 신용카드를 꽂아놓고 커피만 들고 나오는 사람이다. 지갑 잃어버리기. 우산 놓고 오기. 모두 젊은 시절 내 레퍼토리. 하, 그러니 친정 엄마의 기억이 틀리다고 반박할 근거는 더더욱 없었다.


그럼 딸이라면 좀 달랐을까? 동성이라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었을 테니 아들보다는 나았을까?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아들은 독립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이성이라서, 이해가 안 되면 오히려 놓아버리기도 쉽다고 한다. 하지만 딸은 어떤 면에서 더 속속들이 이해가 되다 보니 아들보다 분리 독립이 더 어렵기도 하단다. 정서적으로도 훨씬 결속되어 있어 갈등이 생기면 그만큼 골도 더 깊다고 한다.


딸이든, 아들이든 어렵다. 나를 닮아 어렵고, 잘 알아서 더 불안하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나 자신이 아니던가.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그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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