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Dec 08. 2022

책임전가, 내 아버지의 그림자

아들을 통과하며 아버지를 만나다



나에겐 부모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안 계셨다는 게 아니라, 내 모든 중요한 결정에 부모님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께 조언을 구한다거나 그분의 조언에 내가 영향받은 기억이 없다. 이것 또한 선택적 기억상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맨 마지막 기억은 고3 때인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아버지가 해당 대학 교무처장인지를 찾아가 나를 인사시켰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때만 해도 그런 게 먹힐 리 없건만. 그걸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격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인사를 드렸던 그 장면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부끄러움'으로.


대학 이후 진로를 결정하고, 회사에 취직을 하고,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고, 다시 이런저런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에도 부모는 없었다. 내 친구는 부모가 반대하는 남자라면 결혼도 다시 재고해 볼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다된 결정을 형식적으로 보고 드렸을 뿐이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난 후 가세가 기울자 우리는 서로 흩어져 자신의 인생 문제로도 벅찼던 것 같다. 각자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안도하며 살았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부모에 대한 비중이 이렇게나 없는 게 기이해 어느 날 언니에게 물어봤다. 한때 치기 어린 반항으로 기성세대에 발끈하며 지내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결정적 순간에 부모님이 없었다는 게 나는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니도 똑같다고 했다.


원래 부모란 어느 순간부터 자식들의 삶에서 사라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에 대해 다시 떠올린 건, 아들과 사춘기 극심한 독립전쟁을 벌일 때였다. 모든 최종 결정을 내가 쥐고 있을 때에는 그로 인한 책임도 당연히 엄마인 내가 지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제멋대로 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한동안 결과에 대한 책임 공방이 우리 사이에 수순처럼 따라붙었다. 가령 이런 거다.

 

늘 할 거 다 하고 느긋하게 준비하다 그날도 서둘러 집을 나선 아들. 7-8분쯤 지났을까. 중간에 전화가 왔다. 책가방 좀 가져다 달랜다. 아침에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책가방을 안 메고 학교로 출발을 한 거다. 기가 막혀서, "네가 와서 직접 갖고 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헐레벌떡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이 책가방을 들쳐 메고 나서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엄마가 책가방을 안 가져다줬기 때문에 지각한 거다!”


이런 날이 처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지. 이 모든 결정은 이전 몇 달간 크고 작은 수많은 '엄마 때문' 사건을 겪은 뒤에 일어나는 것들이다. 어느 날은 실내화를, 어느 날은 수채화 물감을... 처음 몇 번은 가져다주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간 애를 '영 배릴 거 같길래' 내린 특단의 조치.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중 나는 끊임없이 '엄마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이 남 탓하는 구도에 들어올 때마다 지나치게 발끈한다는 사실을. 아이는 인생 처음으로 선택과 책임이라는 통과의례를 시작하고 있으니, 이 일이 기꺼울 리 없었다. 누구나 똑같다. 어느 누가 책임까지 스스로 떠안고 싶겠나. 게다가 지금껏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왔고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한 촉수를 가졌으니, 아이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이 상황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스트레스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합리화도 필요하고, 그게 가장 만만한 엄마에게 더 자주 향할 수 있었다. 아직 아이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구도였다.


문제는 내가 남들보다 훨씬 더 이 '엄마 때문'이라는 말에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공원묘지 땅에 투자하랬나? 아무도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돈을 투자하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부동산 시세차익을 노리고 돈을 입금한 것도, 회사에서 견디지 못해 사표를 내고 나온 것도, 그래서 물려받은 땅을 모두 팔아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던 것도 모두 자기가 내린 결정이었다. 운이 나빠 투자한 것마다 실패한 것도, 말년에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사는 것도 모두 자신이 초래하고 선택한 인생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의 실패를 남에게 돌렸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힌 회사의 국장 때문이고, 자신을 속여 땅을 팔아먹은 사기꾼 친구 때문이며, 집안에 여자가 잘못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두 주사파의 사주를 받은 전 정권과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암적으로 존재하는 빨갱이들 탓이었다. 그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으로 책임을 지는 법이 없었다.  


그게 내가 아들 사춘기를 통과하며 다시 만난 아버지였다. 아들이 자신의 책임을 엄마인 내게 전가할 때마다 내 불안을 뻥튀기고, 모든 책임을 지나치게 나에게로 전가하는 나의 태도 뒤에도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나와 닮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