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Dec 13. 2022

엄마여, 너의 불안을 아들에게 전가하지 말지어다

아들 복음서 1장 1절 말씀


세상에 아들 둘 있는 집을 다 모아서 투표라도 해보고 싶다. 당신 집의 첫째와 둘째도 우리 집처럼 이렇게 다른가요?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나서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똑같은 방식으로 키웠는데, 왜 이렇게 다른가요?  




첫째는 어렸을 때부터 입도 짧고, 잠도 짧고, 옷도 뒷목의 탭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잘라 입어야 하는 예민쟁이다. 장난감에 작은 흠집만 나도 한나절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상한 완벽증의 소유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유로운 기질이라 뭐든 밖으로 분출하는 바람에 속에 쌓인 응어리는 별로 없(을 게 틀림없)다. 사춘기 들어오면서 감정 널뛰기가 거의 폭주 수준이라 얼르고 달래느라 진이 빠지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춘기 때 녀석의 과장된 하소연을 다큐로 들으며 내 불안이 더 요동쳤던 것 같다.


예민한 아이 특유의 유능감이 있다. 늘 선생님들로부터 가르치는 맛이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4학년 땐가 학교 참관수업을 갔는데, 등고선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답하는 아들이 신기해 물어보니, 수업시간에 한번 들은 게 절로 머리에 떠올랐다고 했다.(이건 아빠 머리;) 그 시절 레고며 축구며 체스며 스케이트보드며 기타며 수영이며 수학이며 영어며... 아이에게 들이는 크고 작은 사교육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늘 학교 가는 게 즐거운 아이였고, 그 흔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은 튼튼한 몸이었다. 굳이 단점을 들라면, 준비물을 잘 챙기지 못하고 자기 관심사가 아닌 데에는 철저히 무심하다는 것. 한마디로 '얼르고 달래 마지못해' 뭔가 하는 것이 잘 안 됐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해낸 게 많지 않다. 김연아 엄마처럼 모질지를 못해서 애가 재미없다고 하면 몇 번 실랑이 끝에 '저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며 학원을 접은 내 탓이 크다. (지나고 보니 대한민국의 과열된 입시 경쟁과 불안에 대한 내 딴의 방어기제였더라). 그래서 지루함을 버티고, 성실한 엉덩이를 만들어주는 일에 실패했다. 한때 영재학급 수료자로 한 끗발 날리던 시절도 있었으나, 초등학교까지 곧잘 하던 공부는 사춘기를 변곡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들 둔 여느 집처럼 핸드폰 대전을 몇 차례 치르면서 우리가 아들을 이기지 못하는 부모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꼭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유방임형 부모였기에, 어느 순간 아들과 척이나 지지 않으며 살면 다행이라는 방침 아닌 방침을 정했다. (이걸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만) 어쩌면 둘 다 싸움에 대한 근육이 없다 보니 지금은 일종의 회피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밤낮으로 게임을 원 없이 하다 보면, 어머니, 이제 게임이 너무 지겨워졌사옵니다. 소자, 늦었지만 공부라는 걸 좀 해볼까 합니다,라고 기세 좋게 달려 나갈 날도 오지 않겠나, 그런 로또 당첨에 가까운, 옆집 아들 미담에 배팅하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아들은 늘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 법! 얼마 전 3개월 짜리 고깃집 알바를 하고 나서 아들이 말했다. 평생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스스로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고 싶다고 시작한 알바였으나, 알바를 하며 자신의 쓸모를 깨달았을 뿐이다.


최근 아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애들이 부르면 무조건 나간다. 다른 애들은 공부하느라 시간이 안되니, 부를 때마다 달려 나가는 내 아들은 꽤 인기가 좋은 편이다. 뭘 하는지 동네를 싸돌아다닌다. 이것도 미스터리인데, 그 극심한 사춘기 때도 아들은 '탈선'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겁이 좀 있는 편) 옆집 아들들이 옷에 담배빵을 만들고 다니기 시작하자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아들아, 넌 왜 술 담배는 안 하느뇨? 그때 아들이 말했다. 일찍 담배 피우는 친구들 보니 키가 별로 안 크기 때문이란다. (어머, 너도 그런 걸 보고 각성이란 걸 하는구나?) 요즘은 몰래 술도 좀 마시는 거 같다. 자기가 술이 센 편이라고 좋아라 하는 걸 보니. 뭘 하는지도 가끔 엄마에게 알려준다. 저 딴엔 나름 모험이랍시고 하는 짓이 내 기준엔 별 영양가 없는 죄다 시답잖은 일뿐이지만.  


아들은 몇 달 전부터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서 초저녁부터 하염없이 자다가 새벽녘에 일어나 덜거덕 거리며 라면을 끓여 먹는, 뭐랄까 블랙 펄호 선원들이 배를 뒤집어 해가 지는 새벽을 만드는 꼴 같은 이상한 리듬을 타는 중이다. 이렇게 학교 가면 수업시간에 잔다는 그 많은 애들 중 하나가 될 게 뻔했는데, 그나마 아침마다 일어나 꾸역꾸역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신기해 아들에게 또 물어보았지.


엄마 : 아들이여, 너는 학교에 왜 가는 것이냐? (사실 그전까지는 학교에 급식 먹으러 가는 줄 알았다)

아들 : 어머니~ 소자, 학교에 자러 가옵니다.

엄마 : 내 말이~ 잠은 집에서 편히 자면 되는데 굳이 왜 학교까지 가서 자느뇨?

아들 : 잠도 애들이랑 같이 자는 게 더 재밌사옵니다.  


아하. 너는 그래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라는 귀중한 가치를 배우고 있는 중이로고?


아들의 행각이 그러하다보니, 우리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도, 아들은 굳이 대학은 꼭 가시겠단다. 본인 뜻 강제로 꺾으면 또 나중에 무슨 원망을 들을까 싶어 현재 사촌형님 과외 하나를 시켜주고 있다. 사실 공부 쪽으로 이제 별 기대는 없다. 대한민국 입시 공화국에서 하루 24시간 꼬박 공부만 해도 인 서울 할까 말까 인데, 저렇게 하루 몇 시간 수학 공부만 해서 될 리 다는 건 아들 빼곤 다 안다. 본인이 꿋꿋하게 붙들고 있으니,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저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니 사회 전반에 배어 있는, '대학'이 한 인생에 드리우는 전망과 마지막 보루로서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우리 부부는 평상시에도 늘 공부하는 것까지는 밀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려줄 재산도 없고) 때문에 녀석도 대학에 못 가면 바로 군대에 가거나 그때엔 자신의 뜻이나 취향과 상관없는 일이라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저렇게 또 대학이라도 붙들고 있는 건가, 흠). 사실 지금은 아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겠다. 누구 말대로 자기 인생에 대한 걱정은 본인이 가장 많이 하는 법이라니, 그런 말이나 붙들 밖에. 


우리 부부는 아들이 사춘기 때부터 계속 아들 스스로 마음 돌이킬 날을 기다렸다. 김연아 엄마처럼 훌륭한 부모는 아니지만, 한 번도 시험 성적으로 아들을 평가하거나 아들의 뜻과 반하는 것을 강제하진 않았다. 어떤 부분 좀 꺾어주어도 좋았겠지만, 그건 우리 부부에게 애당초 없는 능력이었다. (애가 고집이 고집이~) 우리 또한 결혼하고 알콩달콩 이상적인 부부 생활을 영위해온 것은 아니지만, 자유와 독립만큼은 우리가 서로에게 허용한 일말의 가치였다. 그러니, 이런 우리의 본심만큼은 아들도 언젠가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 아침. 고2 마지막 기말고사가 있는 날. 시험공부 좀 했냐는 질문 역시나 아들은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다음 시험은 잘 볼게."


나는 저렇게 똑같은 말을, 5년 넘게 당당하게 말하는 아들이 참 신기하다. 요즘 유행하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딱 저런 마음일까. 그래 뭐, 너에게 맞는, 네가 꾸준히 재밌게 할 일도 어딘가에 있겠지. 언젠가 네가 꼭 찾아갈 거라 믿는다. 아들. (이 또한 붙들지 않으면 의탁할 말이 없으니, 꼭 붙든다!)


며칠 불안정하던 내 맘이 오늘 아침 이렇게 담담해진 건, 내가 어제 저녁부터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끔 물리학자도 우주 상수만큼 희박한 확률로 위안을 사할 때가 있다.


소년 시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상태로 빈둥거리며 지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 들은 어디를 가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부모 대부분은 이 '낭비'의 소중함을 잘 모르지요. (14p)


그러니, 모르는 건 바로 너다. 엄마여, 너의 불안을 아들에게 전가하지 말지어다.

(이렇게 멋있게 쓰고, 아인슈타인이니까 그렇지,라고 올라오는 말을 꾹 눌러 삼킨다)


p.s. 첫째 아들 성토하다 보니 지면이 꽉 찼네. 둘째 아들은 다음 시간에...

제가 다음 시간엔 둘째 아들 자랑을 엄청 할 거 걸랑요? 근데 잘난 아들 얘기보다 남의 집 못난 아들 얘기가 더 재밌지 않나요? 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책임전가, 내 아버지의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