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전업주부가 밥을 안 한다고? 내가 또 그 정도로 무책임한 인간은 아니다. 대신, 밥 '고민'을 안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10년이나 밥을 해먹이고 차리다 보면 이제 어느 정도 기본 메뉴는 고민하지 않아도 차려진다. 그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죄책감이 없어졌다. 그전까지는 고민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면서 뭔가 새로운 메뉴를 차려내야 한다는 압박, 매일 똑같은 걸 차려낸다는 자괴감 같은 게 있었다면 이제 그런 게 없어졌다. 밥때가 되기 딱 1시간 전에 후딱 밥을 차리고, 마침 생각나는 게 없거나 사놓은 재료가 없으면 과감하게 시켜먹었다.
비유해 본다면, 아내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일을 가끔 도와주는 남편의 기분 같달까.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것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찌 됐건 매주 그 일을 해야 할 목록에 담아두고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도와주는 입장이 되면 가끔 생각날 때 도와주면서 생색내고, 혹 깜빡해도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딱 그 정도의 기분으로 밥을 했다. 매번 어디서 응용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서 상을 차려 먹이는 이웃집 여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차려주는 게 어디냐, 라는 자세로 밥을 차린다. 밥을 차리는 데 비슷한 노력이 들어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자 홀가분했다.
마찬가지 자세로 집안일들을 하나 둘 놓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그 전에도 꼭 매끼 새 밥을 해먹여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베갯잇을 빨아준다거나 하는 그런 깔끔한 여자는 못됐다. 하지만 늘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렇지 못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왜? 나는 전업주부니까. 남편에겐 바깥이 일터고, 나에겐 집안이 일터니까. 나는 어찌 됐건 여기서 가치 있는 일을 생산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강조하지만, 생각만...) 근데 내 욕망이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자, 그제야 내가 전업주부를 허울처럼 걸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집안일에 대해 그렇게 선을 긋고 나니 마음이 편했을까? 어떤 의미에선 그렇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 나는 일터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 늘 지지부진했지만 그나마 걸쳐놓았던 나의 소속감,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놓고 나자, 그야말로 나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대놓고 불량주부로 자처하면서 깽판을 냈으니, 나는 그 이제 내가 그토록 원한다는 '그 일'을 찾아야 했다. 많은 경단녀들이 인생 후반전 앞에 서서 망설이게 하는 결정적 이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나는 그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 했다.
에필로그.
어느 해 부부동반 모임에서 남편의 여권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나라의 도장이 쉴 틈 없이 찍혀 있는 남편의 여권을 넘기며 이웃 엄마들은 면세점을 매번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남편이 1년에 10개국이 넘는 나라를 한 달에 2-3번씩 들락거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남편에게 무얼 요구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형부. 언니 명품백도 좀 사다 주고 그러지, 왜 그러셨어요?"
옆집 엄마의 말에 남편은 졸지에 마누라 백 하나 사주지 않는 인색한 남자가 되었다. 기실 문제는 나에게 있었건만. 나 자신이 명품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남편에게 요구하지 않았고, 아내도 모르는 명품에 대한 취향을 남편이 알리 만무했다.
나에게 없는 욕망을 그가 알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하지만 나는 오랜 세월 그가 내 욕망에 무심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다.전업주부를 허울처럼 몸에 걸치며 살아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