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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30. 2022

은행과 학원에 갖다 바친 돈 3억

오늘도 나는 학원비 벌러 학원 알바 뛰는 중



결혼하고 전세대출금 이자 명목으로 은행에 갖다 바친 돈이 1억 5천쯤 된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 키우며 학원에 갖다 바친 돈도 얼추 그 정도쯤이다. 초등 저학년 땐 태권도, 피아노, 생태 같은 가벼운 예체능 위주였지만, 고학년이 되자 대학에 안 보낼 게 아니라면 영어와 수학 학원 정도는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아이 합쳐 한 달 학원비만 80-1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여기다 좋은 고등학교 가려는 애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면 수학 학원에서 슬슬 과학도 넣어야 한다고 하고, 수학 영어 잘하는 애가 국어에서 맨날 하나 둘 틀리면 그동안 해놓은 영수 아까워서라도 국어학원엘 보내게 된다. 그때부터 학원비로 기백만원을 훌쩍 넘는 건 시간문제다. 고2 언저리쯤 원룸 하나에 숙식을 해결하면서, 각 과목 선생님들이 드나드는 한 달에 500만 원짜리 과외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경기도 일대에 살고 있는 중산층 입네~ 하는 내 주변 엄마들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대략 한 달 교육비를 100~150만 원 ±로 상정하고, 아이가 얼마나 더 공부에 열의를 부리느냐에 따라 아이 학원비를 벌러 알바를 나가야 할지 말지가 결정된다. 남편 월급이 갑자기 한 달에 100여만 원씩 훌쩍 뛸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게 내가 수완이 좋은 여자였다면, 별 문제도 아닐 비용들이다. 내가 일찌감치 재테크에 눈을 떠 부업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에 손을 댔다거나, 아님 예전 커리어를 되살려 재빨리 재취업 전선에 올라탔다거나, 아님 빠르게 변하는 업종들-예를 들어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무인카페나 아이스크림점이라도 잡아 하나에서 두 개, 세 개로 세를 불렸다면 충분히 커버할 만한 비용.


혹 경제적으로 수완이 없었더라도 어쩌면 내가 좀 더 생활비에 대해 주도적으로 산정을 하고 지출 안에서 운용을 했다면 남편 탓 안 하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잘 굴려서 빨리 원금부터 갚아나갔다거나, 아이들 학원 따위 보내지 말고 집에서 좀 더 요령을 부려 내가 가르치거나, 바닐라라테 사 먹을 돈 아껴 좀 더 알뜰살뜰하게 살았더라면... 모두 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외벌이 만으로도 나는 만족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 자신만 더 한심해질 뿐이다.


이제 와서 가장 한심한 걸로 치면 학원비다. 어차피 체르니도 못 치고 그만 둘 피아노 학원, 공부랑 하등 상관없는 생태수업, 축구선수가 될 것도 아니었던 축구클럽... 그래 뭐, 이 정도야 비용이 크지 않았으니 차치해 두더라도... 영수 학원 말이다. 대체 이게 뭐길래 이리 목을 매고 냐 말이다. 정말 공부 학원이 이상한 게... 나처럼 공부가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고 하는 엄마들도 놓을 수 없는 게 이 영수 학원이다. 지금 애가 혹 별볼일 없더라도, 일단 영수만 해놓으면 언제라도 다시 기회란 걸 가져볼 수 있게 하는 마지노선이랄까. 우리 부부는 다행히 공부에 대해서 입장이 똑같았다. 공부하겠다는 놈 밀어주고, 안 하겠다는 놈은 밀어줄 필요 없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인가.


우리에겐 아들 둘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똑같이 투자했다. 초등 고학년까지는 학교 방과후나 집에서 문제 풀기 식으로 진행하다가 6학년 말쯤부터 동네 학원에 넣었다. 두 아이 모두 사춘기 전까지는 그 어렵다는 영재 학급도 다니고, 학교 공부쯤 곧잘 해냈다. 우리는 특목고 같은 원대한 포부도 없었기 때문에 뭔가 더 밀어 넣어야 한다거나 하는 조급함도 없었다.


그렇게 첫째 아이가 학원에 들어갔다. 첫째에 대한 선생님들의 피드백은 늘 똑같았다. 가르치는 선생님마다 애가 머리가 비상해서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고, 얘는 공부해야 할 아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는 아이의 태도.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던 선생님이 혹 학원 정책에 따라 다른 선생님으로 교체되거나 하면 대번 아이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 시기가 지독한 사춘기와 겹치면서 아이는 머리는 좋으나 공부하는 몸은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둘째 아이에게 받는 피드백은 형님에 비해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을 이기기 위해 늘 악착같이 따라붙던 근성 덕분인지 뭘 시작하면 끝을 보았다. 기타, 드럼, 피아노는 물론이고 배드민턴이든 농구든 시작한 건 뭐든 누구보다 잘 해내지 않으면 본인이 못 견뎠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 엄마인 내가 챙길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원에만 보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며 알아서 기량이 쌓이고 상급반에 올라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아이 학원비를 어떻게 지출해야 할까. 공부가 재능이지만 공부하지 않는 첫째 아들은 우리 부부의 기준에 의하면 학원비를 지출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지 끝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성과를 내는 둘째 아들만 학원에 보내면 된다. 합리적 지출과 소비. 그리고 그랬다면, 내가 이제와 학원비 어쩌고 하는 이런 글도 쓰고 있지 않겠지.


아이 키워본 이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부부가 같은 지향점을 가져도 아이마다 다 다르고, 그 아이 생각이 또 우리 생각과 다르다. 첫째 아이가 '다음 시험은 정말 잘 준비해보겠다'는 말을 4년쯤 계속 하고, 우리가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아이를 등떠밀며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깨달았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가 재능인 아이더라도 엉덩이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5년쯤 되던 해부터 우리는 슬슬 아이에게 다른 길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네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좋아하는 게이머를 제대로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유튜버가 돼서 대박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그럼 공부 학원 말고 영상 편집 학원을 다녀 볼래?


하지만 아이는 자기는 대학을 꼭 가야겠다고 우겼다. 우리는 끈기 있게 설명했다. 대학을 가려면 '공부라는 걸 해야겠다'가 아니라 '지금부터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펼쳐야 하는 것'이라고.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애'가 가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는 아무리 설명해도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학원에 가는 것 이외의 시간엔 공부하지 않고, 학원도 끊지 않으면서. 부모 눈에야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대한민국에서 대학에 가지 못할 게 뻔했다. 이런 아이에게 학원비는 고스란히 버리는 돈이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아이의 학원을? 끊을 순 없었다. 우리 또한 어느 한때 우리 부모에게 그런 아들과 딸이지 않았는가. 늘 그들의 충고일랑 들리지 않고, 꼭 실패한 뒤에야 후회하지만, 그 손가락은 내가 아닌 부모를 향하던. 공부하겠다는 아이의 뜻을 꺾으면 두고두고 우리가 들어야 할 원망을 감당할 자신 없었다. 그리고 막말로 고3까지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합법적으로 주어진 학업의 시간이지 않은가.


이게 현실이다. 남편이 회사에서 잘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병들어 누워, 정말로~ 집이 쫄딱 망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가 공부하겠다는 아들의 학원비를 끊을 수 있을까. 아이가 공부하겠다는데, 그걸 끊을 만큼 간 큰 부모가 대한민국에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들 학원비를 벌러 학원에 알바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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