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Dec 14. 2022

학원비와 샤넬백, 뭐가 다른데?

남편들은 우릴 보고 미쳤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크면서 점차 학원비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남편들과의 언쟁도 늘어나기 마련. 생활비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내역을 듣고 난 남편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 보고 "미쳤다"고 한다. 과외도, 학원도 없이 늘 전교에서 놀았던 남편들은 자기가 벌어다 준 돈을 학원에 죄다 쏟아부으면서, "맨날 돈 없다"고 징징거리는 우리 여자들이 이해가 안 간다. 학원 가서 하는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고, 집에서 자기 주도로 하는 공부만이 진짜라고. 쓸데없이 학원에 갖다 바칠 돈으로 차라리 네 옷이나 사 입으라고. 그럼 우린 혀를 쯧쯧 차며 이렇게 말한다. 애들 어학연수비 한번 대줄 능력도 안되면서, 원론적인 그런 얘기 따위 집어치우라고. 물론 속으로만. 밖으론 이렇게 말한다.


"제발 회사 가서 다른 남자들이랑 대화 좀 하며 살아. 우리 또래 아빠들이랑. 다른 집들은 애들 교육비로 한 달에 얼마나 쓰는지."


물론, 그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막말로 몇 백만 원 하는 샤넬 백? 젊은 여자들이, 아니 강남 친구들이 컬렉션으로 모은다는 그런 백 하나쯤 못 살 게 뭐 있나. 애들 학원비 두세 달만 모으면 거뜬히 살 수 있는데!!! 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는 3만 9천 원짜리 니트 하나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한다. 학원비는 척척 결제하면서. 그리고 왜 나는 강남 친구처럼 살지 못하고, 남편은 옆집 남편처럼 벌어다 주지 못할까, 생각한다.

 

그러게. 왜 나는 애들 학원비로 한 달에 100만 원도 넘게 쓰면서 내 옷 하나 사는 덴 벌벌 떨까. 학원에 꼭 다녀야 대학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왜 학원비는 늘 지출 항목 일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까. 부모님께 용돈 한번 넉넉히 드리지 못하면서, 언제부터 학원비는 당연한 고정비가 됐을까.


남편들이 미쳤다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샤넬백이나 학원비나~ 남자들 눈에 모두 똑같아 보일 것 같다. 돈 낭비라는 점에서. 어떤 여자들의 욕망은 샤넬백에 투사되어 있고, 내 욕망은 아이에게 투사되었다 뿐. 욕망이라는 대상만 다를 뿐, 어차피 채워질 것 아닌 욕망에 투자 중이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샤넬백은 허영심이고, 자식은 그렇지 않다는 고상한 근거라도 있나? 오히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의 욕망을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남자들과 똑같이 배우고, 똑같이 경제활동하다가, 출산과 더불어 집안으로 들어온 고학력 여자들. 자녀 교육은 사회적 진출과 야망이라는 그들의 꺾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 합법적인 장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자식 교육은 샤넬백 보다 안전하다. ‘좋은 엄마’라는 이상적인 상을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여자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지 못하고, 꼭 누군가의 대상- 즉 남편 혹은 자식-을 통해서만 대리 충족하는 심리 이면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직접적인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일은 그런 이미지(좋은 엄마)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은 직접적인 만족 추구나 쾌락을 얻는 일에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무의식의 세계는 결코 상식과 논리적인 이유에 지배당하지 않고 언제든 의식과 감각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 <남편을 버려야 산다>,'불안이 주는 사랑의 쾌락' 중


샤넬백은 '나'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 학원비 보다 순수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궁금한 건 왜 너의 욕망이 샤넬백이 되는 동안, 나의 욕망은 학원비가 되었냐는 것이다.   

 

p.s. 사교육비에 대한 첨어.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고도 GDP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GDP라는 것이 작년 대비 올 한 해 어떤 산업군이 성장하고 쇠퇴했는지 그 변동 수치를 반영하는 건데, 사회에서 수행되는 가사 노동의 양은 거의 항상 동일하기 때문에 반영할 필요 자체가 없었던 것. 그래서 18세기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있었다고. “남성이 자기 가사 도우미와 결혼하면 그 나라의 GDP가 감소하고, 자기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면 GDP가 상승한다."라고.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의 자리에 '학원비'를 넣어보면 이런 워딩이 가능해진다.

"대한민국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내 아이 학원비 벌러 나온 학원장들로 가득하다."

아이 학원비는 어차피 아내가 번 학원비로 충당된다. 그러니 여전히 아내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이 있다면, 학원비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억울해할 필요는 없으시다고. ㅋㅋ


<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박우란 저, 유노라이프.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부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서 손 떼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