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떠밀려 다시 강제성숙의 길로
집에서 주로 댕댕이 패드를 가는 사람은 나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싸놓은 패드를 접고 주변에 묻은 오물을 휴지로 닦고 탈취제를 뿌려 다시 한번 주변을 말끔하게 훔친 뒤 그 모두를 비닐에 담아 버린다. 어느 날 컨디션이 별로인 날은 그 위에 패드를 덧덮어 하루 정도 미루기도 한다. 패드를 치울 때마다 이런 일을 하며 평생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하며 수챗구멍에 가득 찬 머리카락 덩어리를 수거할 때도,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릴 때도, 가스레인지 후드와 바디를 닦을 때도, 이런 일은 돌아가면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모두 싫어하는 궂은일이 아닌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고 이 일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일이라면 몰라도. 그 일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무조건 내 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며 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집안일이 이렇게 궂은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 친구들 중에는 햇살이 좋은 날이면 베란다 볕에 가족들 칫솔을 나란히 세워두고 일광욕을 시키며 행복해하는 친구가 있다. 어떤 친구는 몇 달에 한 번씩 소파든 아이들 방의 배치든 뭔가 바꿔줘야 직성이 풀린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자기가 차린 음식을 맛 보이고 레시피 정보를 알려주는 걸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대부분 알뜰살뜰한 주부들은 어질러진 상태를 스스로 못 견뎌하기 때문에 몸이 알아서 이미 집안의 각을 잡는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도 집안일이 재밌었던 적은 없었다. 해야 할 일이라 했고, 그럭저럭 할만했지만, 더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다. 내가 책에 대해서라면 눈빛을 빛내는 것처럼, 그들은 가족을 챙기고 집안일을 정돈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거겠지. 그냥 서로 꽂히는 게 다를 뿐이다.
사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코드도 다 다르지 않나. 내 친구는 제3세계 아이들이 아스라이 떨어지는 노을빛을 배경으로 누런 먼지를 날리며 행복하게 골을 차는 장면만 보면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진다고 한다. 나는 케이팝 스타처럼, 많은 이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서로 벌이는 경합 프로그램 같은 걸 보면 어느 순간 울컥,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우여곡절 끝내 마침내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 좋은 성과를 거둘 때.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하고 감격한다. 사람마다 취향도, 삶에 대한 지향점도, 그에 따른 만족도 모두 다른 것이다.
회사를 관두고 그나마 10년 넘게 전업주부로 자족할 수 있었던 건, 육아가 내게 드리우는 의미 때문이었다. 그나마 내가 집안에서 하던 창의적 일이 음식이었는데, 애들 다 크고 나니 자주 먹지도 않고 남편은 원래 뭐든 잘 먹는다. 아마 사춘기를 기점으로 내가 받은 양육 성적표가 훌륭했다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아들에게 내 말이 잘 먹히고, 남편이 내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있다, 칭찬했다면... 아마 나는 집안일에 대한 내 효능감과 인정 욕구를 적절히 만족시켜가며 그곳에 계속 머물렀을지 모른다. 엄마의 개입이 아이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전적으로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사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동안 투자한 지분이 많을수록 나는 본전 생각 때문에 더 녀석들을 못 놓았을 게 뻔하다.
하지만, 날 거절한 건 아들들이니! 바람맞은 것도 자존심 상하고 쪽팔린데 싫다는 녀석 옆에서 더 이상 껄떡거리고 싶진 않았다. 연애할 때도 먼저 차여본 적은 없다. 나는 누군가에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늙어서까지 자식만 쳐다보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노년도 원치 않는다. 그러니, 이제라도 다른 투자처를 찾아 헤매는 중이다. 다행히(!) 첫째 아들은 뭐든 잘 안 하려는 방식으로, 둘째 아들은 알아서 너무 잘 챙기는 방식으로 내 돌봄을 거절하고 있었다. 내게 후반전 준비하라고 아주 등을 떠밀어주니,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서 손 떼련다.
강아지 패드 가는 것도 차차 집안 구성원들에게 분담을 요청할 생각이다. 화장실 청소도, 쓰레기 버리는 것도. 똘똘한 전업주부들은 예전부터 당당히 요구하는 것들이겠지만, 전업주부를 허울처럼 걸치고 살던 나는 어정쩡해서 그런 것조차 요구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이 내 안에서 더 힘을 얻고 당당해지길 매일 기도하며...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