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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05. 2022

나사못 하나 사러 이마트 가는 남자

실행력과 불안을 견디는 힘 



결혼하고 남편의 행동 중 가장 기이했던 게 실행력이었다. 남편은 해야 할 일을 쌓아두는 걸 못 견뎌했다. 가령 당장 벽에 못 박을 일이 생겼는데 나사못 하나가 적당한 게 없다, 하면... 그 길로 철물점을 검색한다. 뭐, 나사못 사러 철물점 가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철물점이 마침 문을 닫은 토요일 오후였다. 이 정도쯤 했으면 그깟 나사못, 하루 이틀쯤 늦게 박으면 어때서. 월요일에 철물점에 가도 되지 않나? 근데, 나사못 하나를 사러 이마트를 간다. 이마트에 장이라도 보러 갈 필요가 있어서 '그깟' 나사못을 덤으로 보러 가는 건 몰라도, '그깟' 나사못 하나를 사기 위해 굳이 차를 빼서 이마트에 다녀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마트에 딱 맞는 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말이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이 이달 30일까지 자동차 정기점검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30일이 속한 마지막 주에 예약을 하고 점검을 받는다. 원고 마감이 있다 하면 마치 마감 당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붙들고 있어야 완성도가 높아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 인정하자. 나는 미루는 인간이다. 물론 지금은 웬만하면 남편이 말하자마자 해치우려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남편에게 굳이 '집에서 놀면서 정기점검 하나 미리 안 해놓는 게으른 여자' 낙인찍히면 살 필요는 없으니까. 


집에 강아지를 들여온 것도 남편의 그 신속한 실행력 덕분이었다. 나와 아이들이 그저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사이, 남편은 "너네는 왜 맨날 말만 하냐"며 우릴 바로 싣고 펫샵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니 그 어리고 몽실몽실한 것들이 종이상자에 담겨 말똥말똥 우리만 쳐다보는데, 이쁜 꼬물이들 중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나오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애견족이 됐다.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나는 결혼하고 나서 여태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여기서 '한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실 필요는 없다. 여자들은 평생 다이어트를 '한다'. 그저 성공하며 하는 여자와 실패하며 하는 여자가 있을 뿐. 두말할 것도 없이 나는 후자다. 입으로만 하니 매번 실패하고 평생 한다. 흠. 


그렇다고 내가 남편보다 더 뚱뚱한가,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남편은 결혼하고 근 20년 동안 매해 1.5킬로씩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유지하며 체중을 불리는 중이니, 남편과 나를 나란히 세워놓고 다이어트해야 할 사람을 고르라면 모두 일제히 남편을 가리킬 만하다. (우훗~)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다. 살 좀 빼볼까?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 물론 그는 매번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나를 비난한 적도 없다. 그저 다이어트에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미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 '나는 언제라도 살을 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 '안'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너는 왜 매번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하면서 '못'하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만 루저가 된다. 진짜 희한한 방식이다.


미루는 아내와 실행력 강한 남편. 아마 상담사인 후배가 실행력 뒤에 숨은 또 다른 관점을 내게 들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나와 남편을 늘 이런 구도에서 규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내가 이런 남편의 실행력에 대해 언급하자, 후배가 말했다.


"선배. 실행력 강한 사람에 대해 너무 자격지심 가질 필요는 없어요. 너무 빠른 실행력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해서' 나오는 방어기제일 수 있거든요. 뭔가 결정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걸 견딜 힘이 없어서 서둘러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 남편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다면, 나는 애견인으로서 나 자신의 자격에 대해 좀 더 신중히 검토하고, 어쩌면 분양이 아닌 입양을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러다 영영 애견인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남편의 실행력을 '불안'이라는 관점에서 보니, 나의 결정 지연을 굳이 게으름이나 미루는 성격 탓으로 돌리진 않아도 되었다. 


결정을 유보하는 나는 미결정 상태에 대한 불안을 의외로 잘 견디는 사람일 수 있다. 

결단성이 있어 보이는 남편은 미결정 상태에 대해 나보다 불안을 견디는 역치가 낮은 사람일 수 있다. 


결정하고 실행하는 이 한 가지 일만 해도 겉과 이면에 얼마나 상반되는 의미가 존재하는지. 우리가 프로이트(정신 분석)와 융(분석 심리)의 언저리에서 맴돌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왜 이렇게 행동할까. 나는 왜 또 이렇게 반응할까.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 오해할까.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던 우리 내면의 그림자와 무의식을 만나면서 비로소 나는 남편과 조금 화해할 에너지가 생겼는데. 여러분은 그것 없이 어떻게 남편과 살아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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