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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06. 2022

바람피우는 남자가 가정을 버리지 않는 이유

남자는 사랑을 모른다  



남편에게 청혼을 받지 못했다. 어느 순간 우린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고, 굳이 서로에게 어색한 순간들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양가집에 인사를 올리고 결혼 준비를 할 때 가볍게 물어보긴 했다. 자긴 내가 뭐가 좋았어? 그가 말했다.


"네가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아서."

 

원래 재미 까리 없는 인간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재미없을 줄은 몰랐지.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진심이어서 괜찮았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우리의 사랑이 바랠 일도 없었다.


남편이 한 말의 사회·문화적 진의를 깨닫게 된 건 한참 후, 그러니까 애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이러저러 여성학 관련 책을 쑤시고 다니면서였다.


 카드로 보는 책 '프랑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편(<시크:하다>의 일부 내용을 편집)에 보면 프랑스인들에겐 남녀가 ‘같이 산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결혼한다’가 각각 다른 선택이라고 한다. 같이 사는 건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갖는 것을 의심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시만 해도 꽤 낯선 개념이었는데, 그렇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서양에서는 당연히 '가족'이라는 결속 자체도 우리처럼 강하지 않다고 했다. 일단 ‘우리’라는 개념부터 달랐다. 그들에게 '우리'는 서로 다른 여러 명의 ‘나’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돕고 사는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 보다 ‘나’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다. 그에 반해 동양은 집단과 공동체 중심 - 특히,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더 혈연관계 중심적인데, 일례로 남편을 지칭할 때도 '내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나’ 보다는 ‘가족’을, ‘취향과 즐거움’ 보다는 ‘의무나 책임’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


정작 내 눈길을 끌었던 건 그 '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배 꼬여 작동하게 된 방식이다. <공부 공부>이라는 책에 보면 모든 욕망의 주체가 ‘가족’이 되다 보니 남자들은 대학을 가고 전공을 결정할 때도 가족을 배제할 수 없었는데... 가령, 그 당시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의대나 법대를 가지 않고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이런 말로 아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너는 네 생각만 하냐?” (<공부 공부>, 01_2.자아실현과 탈학교 문화 중에서)



자기 욕망에 충실한 아들 =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등식 사이에서 자유로울 인간이 얼마나 있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금지하고 책임과 의무를 앞세우는 걸 ‘선’으로 간주한 것이 한국형 ‘가족주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런 구도에서 바라보면, 아들 공부시키기 위해 희생한 것은 딸만이 아니었다. 모든 가족이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희생했으니, 성공한 아들은 당연히 온 집안을 부양해야 할 의무로 다시 자신의 인생을 옥죄며 살 수밖에 없었다. 가족주의가 이렇게 꽁꽁 서로에 대한 책무로 묶여있으니, 개인주의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러니 남편이 내게  “너라면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아서”라고 청혼한 것은 애교에 가까웠다. ‘나’보다는 우리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는 여자를 배우자로 생각한다는 것. 그건 가부장 가족주의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남자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이 오래된 가족주의를 다시 떠올린 건, 최근 읽은 책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에서 '바람피우는 남자가 가정을 버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한 문장 때문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종속적 관계를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 분석학 이론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 책의 저자 박우란 작가에 의하면, 둘 사이엔 아래와 같은 교집합이 성립된다. 아마도 상간녀를 향한 충고인 듯 보인다.


남편들이 바깥을 흘끔거리면서도 결코 아내와의 결혼생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그가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바깥을 흘끔거리면서도 아내를 놓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차원이기보다 규칙과 질서, 법의 차원에 더 가깝습니다. 여성에 반해 남성은 질서와 법의 지배를 훨씬 강하게 받기 때문이지요.
남성 중에는 근본적이고 강력한 가정이라는 질서, 그것을 이탈하는 것을 금기로 만들고, 혼외 관계 등 위반을 즐기며 그 위반에서 오는 쾌락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사회적・상징적 법(法)인 ‘가정’을 파괴하고 깨는 것을 여성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두려워합니다.  

-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그래도 사랑일까' 중에서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면서도 가정을 지키려는 이유를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하려고 하면 매번 실패할 뿐이라는 것이다. 아내를 더 사랑해서도, 상간녀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다. 그저 '규칙과 질서'를 깰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가정을 유지하면서 쾌락도 놓지 않으려는 남자들의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우리 사회의 엄격한 가부장과 가족주의 틀 안에 자신을 안전하게 편입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비겁한 욕망으로 바라본 시선이 그 어떤 설명보다 내게 와닿았다.


내친 김에 같은 책 다른 페이지에 보면 여자를 지칭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구절을 만날 수 있다. 여자는 쾌락과 경계를 넘어서는 도발과 대담성이 남자들보다 강하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여자는 '사랑' 때문에 자신의 전부를 내놓을 만큼 무모하기도 하다는 건데... 납득이 되지 않으신다면, 김영하 작가가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한 권의 책으로 선택 한 '안나 카레니나'를 떠올려 보시길. 사랑을 위해 자식도 버리는 게 바로 여자다!


바람난 여자가 훨씬 무섭다.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규칙과 질서 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남편들이여~, 그 후폭풍이 두려우시걸랑 평상시 아내에게 잘하자!)


<공부 공부> 엄기호, 따비.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박우란 저, 유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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