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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21. 2022

왜 어머니는 그때 밀키트를 만들지 않으셨을까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정신



서울에서 일주일씩 며느리집을 오가며 함께 먹고 함께 자던 명절이 종료되자, 이제 따로따로 시댁에 들르는 방식으로 명절 풍경이 바뀌었다. 애들도 커가며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학원 스케줄로 바쁘고, 멀고 피곤한 할머니댁에 가는 건 어느새 명분이나 설득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루만 자고 오거나 당일치기 형태로 시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당연히 서운해하시겠지만, 생각해 보면 자식들 온다고 며칠 전부터 집안의 온갖 이불을 다 빨아 널고 1주일치 해 먹을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시댁에 갈 때마다 차려내던 그 어마어마한 음식들은 이제 좀 줄지 않겠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음식이 넘쳐흐를 만큼 흔하고, 아들들은 모두 비만과 고혈압과 운동 부족으로 다이어트를 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대체 어머니들은 왜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해대시는 걸까. 왜 그렇게 엄마 밥을 못 먹여 안달하시는 걸까. 늘 의문이었다.


코로나 기간. 시댁 근처인 경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한동안 못 만났던 우리는 몇 주 전부터 "경주 근처에서 한번 보자~"며 명절 밑 스케줄을 맞추고 있었고, 결국 이번에도 이것저것 뭐가 안 맞아 우리 가족끼리 여행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한 터였다. 막상 시댁 근처까지 가니 전화를 아니할 수 없고 통화를 하다 보니 그리움이 복받쳐 '그럼 1시간 거리 밖에 안되니 잠깐 밥 한 끼만 먹자'로 일사천리 만남이 진행 됐다.


"어머니, 저희 오늘은 정말 반나절 밖에 못 있어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세요. 저희가 들어가면서 회 사갈게요. 정말 아무것도 차리지 마세요!"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하고 들렀던 시댁.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집 안은 장어 굽는 냄새로 진동했다. 그럼 그렇지.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다시 상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회와 장어로 끝날 리가 없었다. 회 안 먹는 둘째 위해 생선을 다시 굽고, 셋 다 안 먹는 며느리는 어머니가 담그셨다는 미나리 초절임에 꽂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이제 음식은 충분하니 같이 와서 밥 한 끼 나눠 드시자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역시나 부엌을 떠나지 못하셨다. 둘째가 생선을 모두 먹어 치우자, 고기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다시 등심을 꺼내 굽기 시작하셨다. 2박 3일 먹어야 할 음식을 한 끼에 다 차려내실 기세였다. 그즈음 되면 우리도 조용히 어머니를 포기하고, 말없이 음식만 꾸역꾸역 먹게 된다.


식사를 마치자 남편은 피곤에 절어 늘어지고, 이러다 여차 하면 차 막히는 시간에 걸릴까 하여 다시 우리는 올라갈 채비에 나섰다. 이래저래 벌려놓은 부엌을 치우면서 내려온 김에 이것저것 싸주신다는 어머니를 말리고, 재촉하는 애들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옷을 다시 차려입고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남편과 애들 뒤를 따라나서는데, 뒤에서 어머니 왈. "바빠서 우리 귀한 손주 얼굴도 한번 제대로 못 봤네... " 그러시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요. 음식 차릴 시간에 애들 얼굴 보고 얘기나 좀 나누시지, 왜 그러셨어요. 나도 같이 속상해서 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간신히 삼키며 현관을 나섰다. 


방향을 틀기 위해 차를 후진하는데, 멀리서 우릴 따라 나온 어머니가 눈시울을 붉힌 채 손을 흔들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다시 뒤돌아 봤을 땐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날이 버전만 달리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이 즐겁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훌륭하시다. 늘 LA 갈비, 삼색전, 나물 무침, 양념 꼬막으로 정해진 친정 상차림과 달리 시댁은 갈 때마다 생판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조합된 음식들이 상에 올려져 있었다. 평상시 잘 먹지 않는 재료와 음식인데도 간이 딱 맞고 맛있어서, "어머니 대체 이건 어떻게 만드셨어요?" 하고 레시피를 물어보면 잘 모르신다고 했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배합해서 만들었는데 다들 맛있다고 한다며 좋아하셨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정말 요리 연구가 같은 걸 하셨어도 잘하셨을 거라고 칭찬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최근까지도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못 드셨다. 어머니 기준에서 밖에서 만든 음식은 기본적으로 좋은 재료를 쓰지 않고, 간을 세게 하거나 조미료를 첨가하여, 몸을 상하게 하는 음식이었다. 전복이나 문어를 씻을 때는 손이 퉁퉁 불더라도 꼭 찬물에 오래 비비셨고, 밥은 늘 한 끼 먹을 것만 안쳐서 늘 매끼 새 밥을 올리셨다. 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이 우러나오는, 그래서 밥 보다 반찬을 많이 먹게 하는 요리법을 고수하셨다. 재료들끼리의 궁합은 물론이고 5대 영양소까지 고루 균형을 맞춰 상을 차리셨다. 


음식은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들이는 최대한의 정성이자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어느 시절 자신의 기량을 한껏 쏟아부어 쌓아 올린 전문 영역이자 어머니의 자부심! 그저 이제는 그걸 선보이고 맛있다고 평가해주고,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아들들이 사라지고 없을 뿐이고, 한때 그렇게 완벽하게 해 먹였던 아들은 이제 며느리가 차려주는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매일매일 먹으며 뚱뚱해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어머니는 1년에 한두 번 그 잠깐이라도 자신이 해준 해독 음식 같은 걸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어림짐작해 볼 뿐이다  


그리고 불량 며느리인 나는 오늘도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이다. 왜 우리 어머니는 그 좋은 솜씨를 가지고 식당을 내거나 반찬 가게를 하거나 밀키트 같은 걸 만들어 파실 생각을 하지 못하셨을까. 그녀의 관심과 재능과 진심은 모두 음식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은 성공을 부르는 공식의 삼박자가 아닌가! 자식의 성공에 목메지 않고, 그 에너지를 자신에게 쏟았으면 지금쯤 시어머니 또한 밀키트계의 삼성가를 이루셨을 게 분명했다. 왜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채 돈, 돈, 돈 할 때. 왜 어머니는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하지 못하셨을까.


가치관 때문이었다. 시댁의 가치관에 따르면 돈이란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면 저절로 따라붙는 것이지, 돈을 쫓아 사는 것은 천박한 삶이었다. 어머니는 한때 삼성전자 주식을 사셨지만, 돈으로 돈을 버는 방식의 불편함 때문에 바로 되팔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늘 아들 둘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느라 돈에 허덕이셨다. 하지만 부동산을 팔아 목돈을 마련하는 것까진 경우의 수 안에 있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까진 가짓수에 없었다. 차라리 내 옷 안 사고 먹고 싶은 거 아껴 한 푼 두 푼 모으면 모았지, '돈을 벌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는 건? 시집 잘 못 가서 남편 잘못 만난 여자들이나 하는 일들이었다. 그 당시 여자들은 좋은 가문과 능력 있는 남편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있었으니까. 자식을 잘 키우고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던 성공이었으니까. 어머니에게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팔아 볼 상상력은 꽃필 수 없었다. 


돈도 저 좋다는 사람에게 붙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니 모두 한결같이 물불 안 가리고 '돈'이면 뭐든 하는 세상에서 독야청청 돈이 절로 따라붙길 바라는 이 집안에 돈이 모일 리 없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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