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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11. 2023

중년의 얼굴

나이에 걸맞은 얼굴을 갖게 될 때까지



사십 중반에 접어들던 해. 무슨 일인지, 사방에서 누구 닮았단 소릴 그렇게 들었다. 처음 친구에게 자기 시누이랑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냥 픽, 웃고 넘겼다. 그런데 우연히 옆 동네 과일 가게에서 귤을 살 일이 있었는데, 과일 가게 사장님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싶더니 다가와서 나보고 자기 마누라랑 너무 닮았다는 게 아닌가! 그냥 아는 사람도 아니고 속살까지 다 아는 아내와 닮았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으로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소릴 들은 건 몇 달 뒤 떠난 해외여행지에서였다. 그해 남편이 이직을 하면서 잠깐 틈이 생긴 우리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터키(튀르키예)로 패키지여행을 갔었다. 일행 중에 한 청년이 며칠 우리 쪽을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는 듯 했는데, 4일째 되던 날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저... 혹시 OOOOO에서 인강 하시는 OOO 선생님 아니세요?"  


전혀 뜻밖의 질문에 내가 헛웃음을 날리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그 청년은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행에게 돌아갔던 거다. 너무 똑같이 생겼다며.


일련의 그 일들이 있은 후 알았다. 아, 내 얼굴이 이제 세월에 꺾이기 시작했구나. 한때 나와 친구를 구분해 주던, 젊은 시절 아직 개성이 남아 있던 내 얼굴은 이제 고만고만한 내 또래와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구나. 눈가와 입 주위엔 주름이 조금씩 지어지고, 귀밑머리엔 하나 둘 새치가 올라오고, 머리칼은 기름이 빠져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그렇게 나는 이웃 여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중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기한 건, 남들이 먼저 알아챈 내 나이를 내가 다시 인식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그로부터 5년쯤 지난 작년. 유달리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이 못마땅했다. 러닝 머신이라도 몇 분 탄 날은 그나마 나았지만, 뭘 입어도 다 얼굴에 받지 않고 밋밋했다. 특별히 무리한 것도 없는데 눈은 늘 피곤에 절어 있고,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남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중년의 얼굴을 나는 이제야 발견하고 있었다. 5년 동안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나마 내가 붙들고 싶었던 가장 이상적인 얼굴 한 조각을 붙들고, 가장 긍정적인 자세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살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제 상상력을 발휘할 그 마지막 한 조각조차 남아 있지 않는 그렇고 그런 얼굴이 되어 버리자 이제야 발견했다. 내가 중년의 얼굴이 되었다는 걸.


작년에 처음으로 비타민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침침해진 눈 때문이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나이 먹음을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내 주변 여자들이 성형을 하고 피부에 보톡스를 넣는 마음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늘 그 나이에 걸맞은 얼굴이라는 걸 갖고 싶었는데, 그건 어떤 얼굴을 말하는 걸까? 과일 가게 사장님의 아내와도 닮고, 인강 강사와도 헷갈릴 만큼, 적어도 모두에게 비슷비슷한 얼굴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적어도 지금 아는 한 가지는, 그게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생물학적인 얼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이목구비와 젊음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그것은, 또한 내 또래 이웃 여자들과도 별반 구분되지 않는 평범한 중년의 얼굴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이제 분명히 알 것 같다.


어쩌면  얼굴은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서 다시 시작하는, 온통 내 노력만으로 다시 지어 올려야 하는 아주 공평한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중년의 얼굴은 제법 공들여 한 땀 한 땀 잘 빚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기회이자 시작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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