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단녀인데 수완도 없어서
오히려 하인보다 못해요. 아무 일도 안 하고 빌붙어 사니까
장남 '존'에게 덤빈 벌로 제인은 붉은 방에 갇힌다. 하인들은 제인에게 충고한다. 주인님을 때리다니, 창피한 줄 알라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빌붙어 사는 제인은 이 집 하인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붉은 방에 앉아 제인은 생각한다. 맨날 포악한 행동에 자기만 알고 응석받이인 이 집 아이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은데, 왜 나는 부당한 폭력을 피하려고 맞섰을 뿐인데도 모든 비난을 떠안는가. 죽은 리드 삼촌이 그립다가도 동시에 그의 유령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제인은 "내보내 달라"라고 악을 쓰다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p.34
수완 좋고 생활력 있는 여자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럽다. 같이 책을 읽고 수다를 떨던 엄마들이 하나 둘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 지 2년 차, 본격적으로 책을 읽은 지는 5년 차다. 아마 내가 생활력이 있는 여자였다면, 일찌감치 책 읽기와 논술을 적당히 섞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돈을 벌고 불리는 일에는 젬병이다. 체질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못 견딘다. 내가 뭐라고, 누굴 가르친단 말인가.
오늘 아침도 러닝 머신에 올라 열심히 걷고 있는데, 출근하기 위해 가방을 들고 나서던 남편이 나를 무심히 돌아봤다. 평소에도 특별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은 눈빛. 하지만 나는 대번 죄책감으로 반응한다. 너는 놀고먹어 좋겠다, 라거나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같은 눈빛. 물론 남편은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다 내 억측일 것이다.
큰아이가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여느 날과 별반 다름없이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아침 식탁을 치우고, 슬슬 마루를 쓸려던 참이었다.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는 대뜸 집에 가야겠다고, 울부짖었다. 너무 무서우니 담임선생님께 집에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달라고 했다. 상황을 따져 묻기엔 다급해 보여서, 무조건 "데리러 가겠다" 하고 서둘러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돌렸다.
중학교 1학년 새 학기. 사춘기 예민함이 조금 시작되긴 했어도, 학교 다니는 걸 늘 좋아했던 아이다. 근데 무슨 일일까. 학교 앞에서 겁에 질린 아이를 태웠다. 도망치듯 나오느라 가방도 챙겨 오지 않은 아이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너무 무서웠다고, 학교에 다신 가지 않겠다고, 학교를 옮겨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울부짖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를 어두운 데로 끌고 가서 "죽여버리겠다"라고 했다는 거다. 공포에 질린 아이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이 먼저 올려 보낸 뒤 차 안에서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좀 알아봐 주십사 부탁드렸다. 그 사이 아이는 제 아빠와 할머니한테도 전화를 돌린 모양이다. 엄마 바꿔보라는 아빠 말에 전화기를 건네받은 나. 전화기 너머로 대뜸 남편이 묻는다.
“집에서 뭐하냐?”
(...)
"집에서 뭐하냐"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그제야 이 말의 진의를 파악한다. 집에서 뭐했냐는 그 말은, 애가 선생님한테 욕 들어먹고 대낮에 회사로 전화해 바쁜 아빠가 전화받게 할 때까지, 엄마라는 게 집구석에서 놀면서 뭐 하고 있었냔 얘기다.
"애 먼저 올라왔고, 난 차 안에서 선생님이랑 통하 하느라 이제 왔어. 담임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아봐 주십사 부탁드렸고. 이제 애랑 차분히 얘기 나눠보려고.”
내 목소리가 경직된 걸 눈치챘는지, 남편이 서둘러 통화를 끊는다.
“어~ 알았어. 그럼 이따 다시 통화해.”
조금 차분해진 아이를 통해 정리된 이야기의 전모는 이러했다. 과학 시간에 너무 졸려서 엎드려 있었던 아이를 선생님이 깨웠고, 마지못해 슬로모션처럼 몸을 일으키던 아이가 발림인지 추임새인지 모를 한마디를 뱉은 게 문제였다. “어휴”와 “아이씨”가 뒤섞인 그 의성어가 선생님 귀에 "씨발"이라고 들렸고, 안 그래도 새 학기 아이들 군기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과학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아이를 따로 불렀던 거다. 훈계에 익숙지 않은 아이는 어두컴컴한 과학실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수치와 공포였고.. 그다음은 블라블라. 예의를 갖춘 서로의 사과가 오가고 몇 가지는 오해는 그대로 남은 채 상황 종료.
문제는 그 일 이후 내가 남편의 속마음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결혼 전 남편은 글 쓰는 내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남편 벌이에 기대 마냥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란 말이 아니다.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부부가 아직 대출 낀 내 집 하나 가지지 못했을 때의 글쓰기란, 돈으로 환산될 때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게 나의 현실이다.
내가 아는 이웃 남편들도 대개는 아이 돌봄에 큰 지장만 없다면 여자들이 나가서 돈 벌어오길 원한다.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 않더라도. 한마디로 여자들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것’을 한심해한다. 한때 맞벌이가 비약적으로 늘자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3백만 원이 넘으며, GDP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둥 기사를 들먹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서 여자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이 사회의 상상력은 허약하다. 나부터가 그렇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책이 있다. 살림과 돌봄이라는 가사노동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본 경제학 이야기다. <국부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이란 훌륭한 경제학 이론을 생각해낸 애덤 스미스. 하지만 이 위대한 경제학자조차 저녁마다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수고와 집안일이라는 그 경제적 가치에 대해선 ‘경제’라는 틀 안에 넣어서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라는 게, 참정권은 커녕 재산권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돌봄과 가사노동의 의미까지 생각해달라는 건 어쩌면 과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근데 책에 보니 이런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고도 오랫동안 GDP에 포함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는 거다. GDP라는 것이 작년 대비 올 한 해 어떤 산업군이 성장하고 쇠퇴했는지, 그 변동 수치를 반영하는 것인데 한 사회에서 수행되는 가사 노동의 양은 거의 항상 동일하기 때문에 반영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한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고. “남성이 자기 가사 도우미와 결혼하면 그 나라의 GDP가 감소하고, 자기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면 GDP가 상승한다.” 가사 노동 자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형체 없이 존재해왔으며, 여러 잣대로 편의에 따라 해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다가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집안에서만 갇혀 있던 여자들이 대거로 사회로 진출하게 된다. 남자들만의 필드였던 사회로. 여자들이 빠져나가며 생긴 집안일의 공백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가 나갔으니 남자가 들어왔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여자'들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서구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여자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동남아계 가사도우미나, 조선족 이모님이. 그러다 보니 집안일은 여전히 여자들만의 필드로 남았고, 여자들 사이의 각축장이 되었다.
생각해보라. 여성들이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번다고 하면, 적어도 가사도우미에게 주는 돈보다는 자기가 벌어오는 돈이 훨씬 많아야 하지 않나. 그러니 여성 안에 또다시 생겨난 위계 구도. 형체가 없던 가사노동 자체가 수치로 환산되고 하나의 산업군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의 가치 자체는 평가절하된 채 남았다.
물론 많이 변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집안 일과 돌봄 시장에 대한 수요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 필요, 이기심에 의해 수요 공급 곡선이 저절로 작동되기만 한다면, 이런 돌봄 시장에 대한 가치도 점점 높아지는 게 맞겠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재취업을 위해 돌봄 시장에 진출한 주변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은 가야할 길이 먼 것 같다. 같은 직종 같은 직급 내 남녀 임금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 투쟁의 역사를 보라. 여성 내 임금 차이에 대한 논의 또한 그만큼의 시행착오가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인 카트리네 마르살은 가사와 돌봄 노동에 대한 재평가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역할을 살림으로만 국한해서도 안된다고 얘기한다.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월급을 받지 않고도 그가 아들이란 이유 만으로 정성으로 차린 그 저녁 식탁처럼. 이 세상엔 희생이랄지 사랑이나 정서 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도 있으니까. 막말로 집안이 편안해야 남자들도 충분히 재충전해서 다시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나가는 것 아니겠나.
전업 주부로 사는 몇 년 동안 이런 류의 책을 적지 않게 읽었다. 나는 경단녀인데, 수완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아이 학원비를 벌러 원치 않은 시간당 아르바이트를 뛰고 싶진 않았다. 꼭 돈을 벌지 않더라도, 유용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의 가치를 다지자고. 기본적인 의식주와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와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학부모로 살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살림과 돌봄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 그건 사회가 아니라 내 안에 더 강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내 안의 가부장. 앞으로 주욱 이 에세이를 관통할 주제가 될 듯하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저/김희정 역,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