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고아가 되는 시간

너를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에 대해 들려줘

by 쏭마담
제인, 난 트집쟁이나 꼬치꼬치 물어 대는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 앉아서, 좀 상냥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입 다물고 있어라.” p.13
고아 소녀 제인. 리드 부인과 그녀의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부인은 죽은 남편의 간곡한 유언 때문에 마지못해 외종질 뻘 되는 제인을 떠안았다. 그녀는 제인을 좋아하지 않고, 아이들도 호시탐탐 제인을 괴롭힐 생각뿐. 외로울 때마다 제인이 찾아드는 곳은 작은 거실 창가. 책이 있고 커튼 뒤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그곳이 소녀의 유일한 안식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이 집 장남 존에게 불려 나와 이유 없이 얻어맞던 제인.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자기편이라곤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 앞에 놓인 부당한 세계와 맞선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심청, 장화 홍련, 소공녀, 키다리 아저씨, 빨간 머리 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 속 여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고아나 한부모 가정이다. 동화책을 향유하는 주 고객층을 아이를 둔 평범한 중산층 양부모 가정이라고 가정해볼 때, 그 비율은 과히 압도적이다. 그 사실에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고아의 세계란 부모 없는 세계,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세계. 오롯이 혼자인 세계다. 리베카 솔닛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한 때 고아였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기본적으로 ‘얼어붙고, 말을 잃은 상태’(<멀고도 가까운> 44p)이며, 우리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없고 그 환경에 대해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인생을 지나가며 우리는 어느 한 때 이렇게 우리를 얼어붙게 하고, 말을 잃게 만드는, 철저히 혼자인 시간들을 겪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아'는 '시련'과 동의어 인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가 주인공에게 흠뻑 감정 이입하게 되는 시점도 그녀 앞에 시련이 시작될 때다. 시련은 그녀에게 부당하다는 점에서 우리를 자극하고, 우리는 그녀가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간절히 응원한다. 그녀는 시련을 통과하고, 성장하고, 자신의 신분과 환경을 변화시킨다. 시련은 고통스럽지만, 평범한 여자 아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꼭 통과해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쯤, 상담사인 후배와 함께 사춘기와 중년을 해석하는 원고 하나를 써 출판사에 투고하고는 보기 좋게 낙방했다. 기대했다고도 말 못 하겠다. 처음 쓴 원고, 그것도 녹취에 기대어 쓴, 블로그나 소셜미디어 씨드독자 하나 확보하지 못한 무명 씨의 글. 내가 생각해도 출판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원고를 퇴짜 맞고 1년간 계속 생각했다. 나는 왜 쓰고 싶은가. 왜 작가가 되고 싶을까. 혹 이름을 내고 싶다거나, 인정을 받고 싶다거나, 그저 작가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이 필요한 건 아닌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이 나를 말끝마다 거절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유라도 알아야 납득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아들이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킨 적이 있던가. 내가 공부에 미쳐 아들을 존중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최대한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했는데 내게 돌아온 건 부당한 거절뿐이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질문하고 토로했다. 독서 모임이든, 동네 티타임이든 만나면 온통 아들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차츰 내 양육 태도와 문제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일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렸다면 아마 그렇게 수다나 토로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야기하며, 생각이 정리되며,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며... 그렇게 아들에게 적용하고 나를 변화시키고 마침내 해피엔드! 근데 아들의 사춘기는 2년이 가도록 끝이 보이지 않았고, 조금 나아지는 듯 보이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길 반복했다. 결정적으로, 처음엔 모두 아들로부터 시작된 문제의 원인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아들의 방종은 내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한 빈틈 때문이었고,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회피했던 해묵은 태도 때문이었다.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회피했으나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고민은 그렇게 너(사춘기)에서 나(중년)에게로 옮겨졌다.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내 인생 어느 시기, 나의 모든 것은 아이 눈빛 하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내 인생의 이유였고,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우선순위였고, 나의 우상이었다. 그런 그를 통째로 내 안에서 들어내자 오롯이 두 가지 감정만 남았다. 배신감과 부당함. 게다가 그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주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다. 차라리 아들과 싸우고 있을 때는 살 만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그나마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소강할 때의 나는 자주 침잠했다. 아들이 내 모든 호의와 제안을 거절하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팽개치고, 귀와 입을 닫을 때. 내가 차려준 밥을 거절하고 밤늦게 기어 나와 라면 나부랭이나 끊어먹는 나날이 반복되고, 이러다가 진짜 내 아들이 몇 해 전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 피시방에서 식음을 끊고 계속 게임만 하다 죽었다던 그 이상한 청소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심각하게 들 때. 참담했다.

어느 날은 잠시 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는데, 이제 일어나 빨래를 개고 저녁을 준비해야 하겠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로 침대 옆에 걷어 놓은 빨래에 손이 안 뻗어졌다. 앤드류 솔로몬이 자신의 저서 <한낮의 우울>에서 설명한 딱 그 우울이었다. 위풍당당한 떡갈나무를 뒤덮은 담쟁이넝쿨의 위용. 2년 여 내 몸에 기생하여 살며 내게 실존적 질문과 불안을 안겨주던 우울. 그것이 마치 애초에 내가 자기 것인 양 내 생명력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스스로 숨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우울증이라는 덩굴식물을 죽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놈이 나를 죽여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내게서 자살할 힘조차 빼앗아간 놈은 나를 죽이지 않았다. 우울증은 내가 파괴한 것을 대신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p.29)

상담사인 후배에게 어느 날 이 감정에 대해 토로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선배, 자살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실행력은, 그가 마지막으로 낸 안간힘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지요.”

우울. 주도권을 어둠에게 뺏긴 상태. 그 어둠이 서서히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남편도, 아들도 소통할 수 없던 그때. 속수무책이던 그때. 다행히도, 내 곁에 책과 이웃이 있었다. 그간 내가 읽은 책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이웃들이 내가 그 어둠에 잠식되기 직전이면, 한 번씩 나를 불러내 심연에서 끌어내어 주었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그 기록들을 남기며... 수많은 작가들이 말한 글쓰기의 효용을 떠올렸다. '글쓰기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그랬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고, 돌아보니 내 인생이 내게 너무 무의미한 것 투성이어서. 살 이유를 모르겠어서.


글은, 죽을 자신도 없던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안간힘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쓸 이유가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튼 뒤로 숨어 책을 읽는다. 이내 어디선가 꾸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난 트집쟁이나 꼬치꼬치 물어 대는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그런 식으로 어른한테 따지고 들다니, 무섭구나. 어디 앉아서, 좀 상냥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입 다물고 있어라.”


샬롯 브론테도 들었을 그 목소리. 지금 그녀는 시대가 규정한 그 목소리 앞에 골똘히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그리고 노트 위에 한 소녀를 불러낸다. 제인이라는 이름의 고아 소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없었던 시절, 그녀는 제인의 입을 통해 대신 말하게 한다. 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너를 자주 얼어붙게 하는 그것에 대해 들려 달라고. 너의 부당한 감정에 대해, 네가 꿈꾸는 세계에 대해 말하라고. 내가 듣겠노라고.


200년 전 한 여자의 마음의 동요와 회한이 조용히 내게 전해진다.



*<제인 에어> 네버랜드 클래식 26, (시공주니어) 버전으로 읽고 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