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Oct 07. 2023

알바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 아들아!

행복해하는 너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재개된 독서 모임.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이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저마다 아이들의 상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 3년 코로나를 지나는 동안 우리의 아들들은 급격한 사춘기의 정점을 찍고 있었고, 그 사이 독서 모임 엄마들의 심신도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었다.


"나, 벼르다가 아들 데리고 얼마 전에 정신과 상담 다녀왔어요. 의사 선생님은 우리 아들 후천적 ADHD인 것 같다고 하시고, 담임 선생님한테 상담했더니 반 아이들 다 데리고 가도 똑같은 진단 나올 거라고 하셔서 한동안 헷갈렸어요.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한테 마지막으로 조언 구하고 나서 깨끗하게 정리 됐어요. 당분간은 판단 유보 하기로."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ADHD에 얽힌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편과 아들 문제로 온 집안이 같이 상담받았다는 본인의 이야기부터 ADHD 약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다보니 요즘 입시생들 사이에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우려까지. 조금 과장하자면, 여기저기 공황에 우울에 강박 아닌 아들이 없고, 상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집이 없었다. 심지어 독서 모임을 왕성하게 이끌던 독서모임 리더는 자기도 성인 ADHD인 게 분명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음식 먹을 때 자꾸 접시 정리를 하잖아요. 남은 음식 한쪽 접시로 계속 옮겨서 정리하면서 잠시도 가만히 안 있는. 누가 그것도 일의 ADHD 증상 중 하나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웃 엄마도 얼마 전 자기 남편에게 비슷한 얘길 들었다고 했다.


"내가 사람들 말에 너무 감정 이입을 많이 하고,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입에 모터 달린 것처럼 너무 흥분해서 말하잖아요. 요즘은 글쎄 핸드폰 손에 쥐고 막 어딨냐 찾기도 한다니깐. 어느 땐 선글라스를 냉장고에서 찾은 적도 있고..."


건망증인지 ADHD인지 모를, 꼭 어느 하나가 아니더라도 여러 병명의 교집합을 가진 증상들에 우리는 서로 "나도 나도~" 하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우리 시대엔 증상이 있어도 진단받지 못했던 병명들이 비로소 이름을 얻고 있었다. 나도 검사를 받았다면 불안 장애나 우울증일 수 있었다. 예전엔 그런 것을 안고 살아도, 홀로 애쓰며 살았다. 별나다고 하니 점점 더 꼭꼭 감추고 살았다. 그 와중에 증상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저절로 다듬어지기도 했다. 가족이나 훌륭한 부모 덕분에 더 훌륭한 재능으로 발휘되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화병이 되기도 했던 그것들이 지금 봇물 터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양한 사례만큼이나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아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던 이웃집 엄마는 적절한 약물과 음식 치료, 그리고 상담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치료를 거절했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보겠다고 했다. 내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부모이지만, 부모가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아이에게 성공한 방법이 내 아이에게도 꼭 맞으란 법 또한 없다. 


모든 이야기의 끝이 꼭 전형적인 해피엔딩일 필요도 없다. 우리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봄, 정신과를 다녀온 후 "다시 의지를 부려 보겠다"던 아들은 그 후도 공부에 매진하지 못했다. 대신, 고2 때 잠시 했던 알바를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고기를 굽고 돌판을 닦는 궂은일을 하다 보면 "공부가 제일 좋았어요"하고 돌아올 줄 알았던 아들은 그때에도 "엄마,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라고 말해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 말이 무서워 우리는 3개월 만에 아들의 알바를 그만두게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나는 아들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척했지만, 결국은 내 불안에 못 이겨 아들의 결정에 관여하는 조바심 많은 엄마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고3 아들은 지금 알바를 하고 있다. 하루 11시간. 피곤할 만도 하련만, 너무 재밌단다. 알바 가는 날은 지각 한번 하는 법 없이 신이 나서 일어난다. 주말만 하던 알바를 너무 재밌어서 주중까지 뛰자 2주 만에 통장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이 꽂혔다. 초등학교 6년에 중고등학교 6년을 공부하는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성취감을 지금 만끽하는 중이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돈'이란 방식으로.


어린애가 벌써부터 돈맛을 보면 어쩌겠냐고? 난 세상 제일의 걱정 인형이다. 그런 걱정을 안 했을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아들이 평생 히키코모리로 살까 봐 걱정하던 내가 아닌가. 지금은 알바 시간에 맞춰 저절로 눈 뜨고 일어나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견하다.


알바만 하고 살아도 괜찮다, 아들아!

네가 지금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 좁은 시각으로 널 제한하지 않으마.



이젠 조금 떨어져, 조금 더 널 응원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잠재력을 부모의 시각으로 제한하지 말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