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좌절 내성이 시작되던 때
예민한 아들의 사춘기를 마무리하며 여전히 내게 남은 주제 하나가 있다.
정신과 상담을 통해 실제 진단과 치료까지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때 의사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가능성으로 제시한 여러 진단명 중 하나. 바로 '좌절 내성'이다.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없으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고3인데 스트레스가 0인 것도 좀 이상하죠?"
그러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아예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것도 정상 범주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 이렇게 공부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청소년기 학생들이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가 하나도 없다는 건 이 시기 부딪히고 겪어야 하는 갈등을 회피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었다. 회피성 시제, 즉 좌절 내성의 방어 기제. 내가 늘 내 아버지와 나와 아들을 관통하며 불안해했던 단어의 또 다른 뒷면이라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아들에게 큰 기대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초등학교까지 특별히 공부를 강조하지 않아도 아들은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갔고, 어렵지 않게 100점을 받아왔고, 회장에 나가 당선됐다. 경기도 변두리, 경쟁이 심하지 않은 동네였다. 상장을 받아오는 것이 흔했고, 나는 점수에 일희일비하는 엄마도 아니었다. 물론 무심한 엄마도 아니었다. 할머니에게 상장을 찍어 보내며 자랑하고, 용돈을 받고 기뻐하는 아들을 다시 찍어 할머니에게 보내는 정도의 기쁨은 표현할 줄 알았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내 아들을 공부에서 이토록 크게 밀려나게 한 계기는? 굳이 하나 의심되는 순간을 뽑으라면 6학년 때 받은 '영재 수업'이다.
아들은 5학년까지 특별히 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에서 문제집만 한두 권 풀었지만, 남편 머리를 닮아 수학에 감이 좋았다. 그때 아들의 재능이 아까워서 별생각 없이 옆 학교 '영재 학급'에 신청서를 냈는데 합격을 했다. 그 모든 게 물 흐르듯 수월하게 진행됐다. 나는 열혈 엄마도 아니고, 아들을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다만 우리 학교에는 없는 옆학교 영재 학급 강사진과 그 커리큘럼은 탐이 났고, 아들이 이번 참에 과학에 대한 흥미가 생기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토요일마다 아들은 실험과 관찰과 조립으로 이루어진 수업에 신나게 참석했다. 주말 아침부터 6-7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이었지만 늘 아들은 마중 나온 우리를 향해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달려왔다. 오늘 만든 과학 키트를 흔들며 조잘거렸다. 그 모습이 우리를 매혹시켰다.
그렇지? 너무 재밌지? 우리 땐 이런 거 없었어. 하지만 학문의 세계란 이렇게 멋진 거란다! 네가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알게 된다면, 엄마는 그것만으로 족할 거 같아.
그것이 시작이었다. 일단 주제 선정이라는 한 고비를 넘긴 아이는 다시 과제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도서를 찾아 아이 앞에 늘어놓아도 보고 실험 키트를 사서 들이밀어 보아도 끄떡없었다.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다른 주제로 바꿔도 된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 D-day 몇 달 전, 몇 주 전에 한 번씩 과제를 상기시켜도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마침내 결과 보고서 제출 마감일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아이가 뒤집어졌다. 관련 키트와 자료를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이제 와서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완벽한 보고서는 어려우니 완성도를 버리라고 하자 그건 또 싫다고 울부짖었다. 그간 아들이 어떻게 했는지 지켜본 나로서는 이미 반쯤 낙제를 각오한 터라 사실 그대로를 말해줄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 아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이상한 완벽증, 미루고 결정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진저리 쳤다. 아이는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지금을 참고 인내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그저 재미있는 것도 배워야 하지만 다소 피곤한 일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과제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춘기 아들을 통과하며 나는 통틀어 '미성숙'이라 할 만한 그 모든 결함이 내 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아들 문제로 힘들 때마다 아들을 붙들고 힘들 때마다 나는 아들 보다 내 안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그 미성숙이라는 민낯을 마주해야 해서, 그것이 힘겨웠다.
내 안의 결함도 어찌하지 못한 내가 아들의 그것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했던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그걸 인정하고, 직시하는 데에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