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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7. 2023

그때 그 비데의 문제

아들의 비데 의존과 엄마의 불안 중독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당신은 그때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했어? OO 비데 문제?


TV를 보던 남편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하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고2 때 OO가 비데 때문에 학교를 가니 마니 해서 내가 비데를 끊고 난리 쳤잖아. 학교에 비데가 없다고 아침마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앉아서 나오질 않고... 난 그게 단순히 비데 문제로 보이지 않고, 의존이나 중독이 될까 봐 또 걱정하고..."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화장실 문제로 꽤나 우릴 고생시켰다. 등산을 갈 때는 산중턱 푸세식 화장실을 쓸 수 없어 온 산을 헤매더니, 캠핑에 가기 시작하자  2박 3일 정도는 집에 올 때까지 화장실을 참기 시작했고, 집에 비데가 생기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 바쁜 아침에 40분을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친정 식구들과 함께 스키를 타러 갔다가 서툰 스키어가 아들을 덮쳐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의 CT를 곁눈질하던 형부(형부는 의사다)가 아들에게 한마디를 했다.


"장에 진짜 아무것도 없네~ 보통은 대변 찌꺼기가 떠다니고 그래야 정상이거든."


네 다섯 살 때 확증편향된 결벽을 보이고(손을 베개 밑에 넣고 잔다거나~ 베개가 제일 더러운데 말이지), 가끔 외부에서 화장실 문제를 겪을 때에도(푸세식 화장실은 어른인 우리도 좀 참아내야 하는 일이니), 크게 문제 삼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이 화장실이 불편하니 캠핑을 따라가지 않겠다거나 여행을 거절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적응되리라 생각하며 지낼 정도?


결정적으로 아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때 형부가 CT를 보며 확인도 시켜줬겠다, 스키장을 다녀온 후 화장실 문제에 대해 아들을 재차 설득해 보았다.

"OO야, 이모부도 그러셨잖니. 장에 대변이 남아 있는 게 정상이래잖아. 그렇게 다 없어질 때까지 짜낼 필요 없대. 비데에 자꾸 의존하다가 나중에 비데 없이 혼자 똥도 못 면 어쩔래?"

그러자 아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도 그때 들었지? 사람들이 뱃속에 똥을 넣고 다닌대잖아. 더러운 똥을 내 몸에 넣고 다닌다니 너무 끔찍하지 않아? 내 뱃속에 똥이 남아 있는데 더럽지 않아?"


흠... 그러니까, 대장을 완전히 비워내지 않는 행위는 더러운 똥을 몸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행위라는 거지? 똥이란 늘 밖으로 배출되는 형상과 기제로만 경험한 나로서는 내 몸이 '적당이 남은 똥을 뱃속에 싣고 다니는 주머니'라는 발상 자체 앞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하긴, 모르는 걸로 치다면 그런 아들이 사춘기에 저렇게 씻지 않는 더러운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비데에 대한 집착까지 시작되었으니 아들의 불안과 나의 불안은 오뉴월 그네 타기 하듯 매일같이 함께 널을 뛰었다. 아들이 학교 화장실을 쓰지 않겠다고 버티며 아침에 화장실에서 진 치는 날이 늘어나자 나는 급기야 업체에 비데 수거 요청을 했다. 엄포만 놓을 줄 알았던 엄마가 정말 비데를 없애자 아들은 학교를 안 가겠다고 협박했다. 며칠 실랑이 끝에 지각을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다시 비데를 설치했다. 아들은 그제야 아침에 화장실을 당연하다는 듯이 독점하던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가족 구성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급할 땐! 학교 가기 전 '신축 건물'의 화장실을 쓰고 등교하기도 했던 거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 그때 해볼 만큼 해봤잖아. 비데 문제? 이제 6개월 안이면 어떻게든 다 해결될 문제야. 대학을 가서 집을 떠나든, 군대를 가든, 비데 없는 데 가서 생활하다 보면 지도 어떻게든 적응하겠지. 막말로 적응 안 되면 탈영을 하든! 그것도 그때 가서 해결하면 돼. "


헐~ 탈영이라고? 내가 이러니 당신을 못 믿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되뇌는데 남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요즘 웬만한 집엔 비데 다 있잖아. 그냥 비데랑 같이 살면 안 돼? 그게 뭔 그리 대수라고"


그러게. 비데 좀 맞고 싸는 게 뭐가 그리 큰 일이라고 그때 나는 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더랬나.

아들이 비데에 의존한 것은 사실이다. 남편이 아들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그렇다면 그 일을 바라보고 대처한 나의 방법은 적당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저절로 해결될 일을 굳이 문제삼은 나야말로 불안에 중독된 엄마였던 것은 아닐까.  


지나고 보니 그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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