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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28. 2023

주식, 이게 뭐라고

내가 들어갈 때는 이미 끝난 그 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4개월 전. 내 생애 처음 주식 계좌를 열었다. 친구가 시키는 대로 증권앱을 깔고 정보를 입력하고, 친구가 시키는 대로 2차 전지주 중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주식 몇 주를 샀다. 


초등학교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삼성전자 1주씩을 선물하던 때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절대 주식 따위 사지 않을 것 같았던 동네 친구가 마침내 주식을 사고, 최애 작가 중 하나가 코인으로 인생역전 하는 소설을 써서 내게 '이더리움'이라는 낯선 이름을 각인시킬 때에도, 나는 단호했다. 


"내가 들어갈 때는 이미 끝났다."

그게 나의 신념이자, 방패막이였다. 밤낮으로 주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혹 남들과 적절하게 발맞추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것만 지키면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라는 하나의 다짐. 주식은 그렇게 내겐 절대 들어서면 안 되는 그런 시장이었다. 그러니 내 친구가 나의 이런 오랜 금기를 깨고, 나에게 주식의 세계를 열어주었을 때. 그건 나에게 나름 큰 도전이었다고 할 만했다.


친구는 4~5년 전 주식 세계에 뛰어들어 그때부터 착실하게 주식 공부를 하면서 제법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 주식을 하며 약간의 재미를 볼 때만 해도 그녀는 우리에게 주식을 권하지 않았다. 그저 계절마다 블라우스와 코트를 바꿔 입고 우리에게 머플러를 선물하며 자신의 성취를 즐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점점 주식 이야기가 늘어나는가 싶더니 1-2년 전쯤부터는 만날 때마다 주식을 권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마다 우리의 대답도 늘 똑같았다. 


"돈이 없어. 우린 하고 싶어도 투자할 여윳돈이 없다니까. 진짜야! 월급 들어오면 다음 날로 다 카드로 빠져나간다고. 우린 너랑 달라. 통장에 잔고 좀 있어보는 게 소원이다~" 


돈이 없다니. 뭔가 할 말이 잔뜩 있어 보였지만, 한결같은 우리의 말에 친구도 더 이상은 권하지 못하곤 했던 거다. 하지만 6개월 전쯤부터는 작정하고 우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맨날 돈 없다고 하면서, 돈 벌 궁리일랑 전혀 하지 않는 우리가. 우리를 설득한다고 해서 자기한테 무슨 수익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자기 말을 믿지 못하냐고 했다. 그러더니 그동안 자기의 권유로 돈을 번 유치원 동료와 다른 그룹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 말을 듣고 몇 년 전에 몇백을 넣은 동료는 몇백을 벌었고, 자기 말을 듣고 몇천을 넣은 언니는 다시 몇천을 벌었다고 했다. 그러니 자기 말을 듣고 몇억을 넣은 친구의 친구는 얼마를 벌었겠냐고 했다. 요는, 자신에겐 우리가 가장 친한 친구인데, 이 세상에서 우리만 자신의 말을 믿지 않아 아직도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거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그 친구가 우리에게 주식을 권하고 우리가 늘 고집스럽게 그녀를 거절하는 동안 내 주변 사람들은 이 합법적 돈벌이를 통해 아이 학원을 하나 더 보내고, 차를 바꾸고, 전세를 갈아타며 살고 있었다. 부모님 생신에 밍크 목도리를 사드리고 임플란트를 해드리고 동남아로 여행을 보내드렸다. 남들은 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 방식에 순응해 자식의 도리를 하고 여유를 즐기며 살고 있는 동안 우리만 맨날 "돈 없어"를 연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리하여, 내가 돈 없단 말을 열 번쯤하고 열한 번째 친구가 다시 나를 설득했을 때. 번득, 아이들 용돈을 모아놓은 계좌가 떠올랐다. 그동안 시댁과 친정 식구들로부터 받은 아이들 용돈만큼은 건드리지 않고 모아 두었는데, 두 아이 통장을 합치니 그게 8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종잣돈으로 시작하기엔 너무 적지도 과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금액이 10년 동안 아무 잉여도 창출하지 않은 채 그대로 통장에 박혀 있었다. 그래, 나는 돈이 없었던 게 아니라, 할 생각이 없었구나. 강산이 변하고 초등학생까지 다  주식 계좌를 트는 동안 나는 고작 주식 한주에도 도전해 보지 못했구나. 나 자신이 원금 그대로 통장에 박힌 고인물이었구나. 


주식 이게 뭐라고, 나는 그동안 고집스럽게 유지해 오던 삶의 방식 한번 비틀어보질 못했나.


그 길로 은행에 가서 통장에서 돈을 몽땅 찾았다. 남편과 아이들도 모두 웃으며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친구가 사라는 주식을 샀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주식에 대해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 네가 사라고 할 때 사고 팔라고 할 때 팔겠다고. 친구도 한동안은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2년은 묵혀 둘 생각하라고. 자신도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그 진득한 방식이 맘에 들었다. 


남의 말만 듣고 무언가 결정해 본 것도, 단가가 100만 원이 넘는 무엇을 사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주식은 사자마자 연일 불기둥을 올리더니 1주일 만에 20%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렸다. 800만은 곧 1000만 원을 넘어설 것 같았다. 친구에게는 주식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실시간 앱을 열어보며 나는 솟아오르는 불기둥에 감탄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세계였다. 돈이 돈을 낳는!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잔액들은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만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세계를 열어젖히고 남들이 다 들어선 세계에 이제 갓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눈이 부셨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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