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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30. 2023

누군가의 삶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내 삶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친구를 믿은 건 아니었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저 삶의 방식 한번 틀어보자는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나로 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이벤트에 당첨된 적이 없는 불운의 아이콘~ 아니, 이벤트에 일희일비할 만큼 자잘한 재미를 느끼며 살거나, 복권을 살 만큼 헛물을 켜는 캐릭터는 아니다. 내가 들어갔을 땐 이미 끝났다, 정도의 현실감각은 어렴풋이 가지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늘 모르고 솟을 것 같던 주식 그래프가 딱 1주일 만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1천만 원에 육박하던 잔액이 9백만 원이 되고 간신히 원금을 맞추더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하락폭은 상승폭 보다 더 가팔랐다. 그제야 "이대로 1천이 넘으면 밥 사겠다"며 톡에 공언했을 때 동네 친구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와~ 언니! 그 주식을 샀다고? 진짜 용감하다~ 우린 모두 손 떨려서 감히 못 들어가고 있던 장이었거든. 진짜 대단!"


그 말인즉슨, 내가 그 주식을 주어 담았을 시점은 주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들어서지 않을 장이었다는 거다. 혹 들어섰더라도 15%쯤 수익이 났을 때 당장 팔았어야 했을 만큼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다들 떨어질 때만 관망하던 주식이란 것.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다 끝난 뒤 하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4개월쯤 지나고 평가손익이 마이너스 30%를 육박하자, 그들의 말이 상식에 가까웠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둘러보니 몇 년 동안 안정적으로 투자하여 큰 수익은 없지만 그럭저럭 잔고를 유지하던 이웃들의 그래프도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시점이었다. 주식이란 속성 자체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라지만, 시기적으로도 주변은 바이러스와 기후위기와 전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란했다. 주식, 부동산, 물가 그 어느 것 하나도 예측 가능한 전망이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친구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때 1주에 100만 원도 넘는 주식을 사라고 권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남들은 다 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때, 열 번이나 거절하던 나를 설득해 이 시장에 들어오게 할 만큼 그녀를 확신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 친구와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다시 한번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20년 지기인 그녀는 육아를 위해 결혼 후 일부러 직장을 갖지 않고 아이 키우는 데에만 전념했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동안에도 늘 남편 앞에 당당하게 자신의 지분을 주장했다. 신혼 초인데도 그 막강한 시어머니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웃는 낯으로 선을 그을 줄 알았다. 우리들이 내 옷 한 벌 사는 데 손을 벌벌 떠는 동안에도 두 딸 보다 더 예쁜 옷을 사 입었다. 지금도 삼십 대 못지않은 피부와 핏을 유지하며 매일 산을 오르고 한강을 달린다. 한마디로 모든 게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었다. 아이와 남편과 주변에 맞춰 움직이는 나와 달랐다. 그녀는 늘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확신이 있었다. 주장하고, 설득하고, 관철시켰다. 


그에 비하면 나는 늘 애매했다. 경계에 한 발을 걸치며 살았다.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분명히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다. 밤중 수유를 끊겠다고 단호히 마음먹었다가도 아이가 빽빽 울어대면 30분을 못 기다리고 다시 젖을 물렸다. 맞벌이할 때 남편에게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요구했다가도 빨래가 쌓이면 그새 잊고 세탁기를 돌렸다. 아들이 사춘기 때 내가 차린 음식을 거절하고 컵라면으로 때울 때에도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며 물러섰다. 처음엔 이런 내가 타인을 존중하고,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것도, 취향도 모두 다르니 나 또한 대접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먼저 대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내가 나섰다 실수할까 봐 무서웠다. 늘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잘나고 똑똑해 보였다. 나 같은 바보가 뭔가를 주장했다가 잘못되거나, 더 좋은 선택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거나, 그 때문에 그들이 나중에 내 탓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에 개입해 그들의 삶에 흠결을 내고 싶지 않았다. 유명세를 타고 영향력을 끼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럭저럭 손가락질받지만 않는다면 괜찮았다. 내 삶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누군가의 삶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내 무의식의 깊은 뿌리 안에 이렇게 깊은 두려움이 있었다. 


한 남자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들까지 낳고 살았으면서도 나는 여태 서로 주고받는 그 흔한 책임감조차 기꺼이 떠맡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좇나니... 그러니까 나는 사랑하며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건 영광과 비난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것인데, 나 같은 쫄보는 혹 받을 비난이 두려워 영광도 누릴 줄 모르는 바보다. 요즘 이렇게 막연했던 용어들이 너무 선명하게 나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런 나의 경향성을 어떻게 긍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p.s. 참고로, 친구는 주식을 사서 무조건 2년을 묵혀 두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친구의 생각'은 2년 후에 판단하는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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