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의 알바를 그만두며
2년 가까이해 왔던 알바를 접었다. 고3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스스로 알바를 하게 된 데다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돈이 생기셨다면 얼마 전 용돈을 보내 주신 거다. 이 얼마 만의 잔고인가! ㅎㅎ 고작 단돈 몇백이었는데도 통장에 돈이 꽂히자 그날부터 마음이 부웅 날아올랐다. 알바를 하며 머리를 쥐어뜯을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렸다. '이 참에 알바를 그만둘까.' 알바를 해야 할 이유와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주욱 대차 대조표를 만들어 줄을 세웠다. 그러더니 얼마 간 고민하는 척하던 내가 어느 날 툭, 학원 원장님께 카톡을 날렸다. 퇴사는 주식의 하향곡선만큼 일사천리로 처리되었다. 알바란 원래 그런 거니까. 어차피 아들 학원비 때문에 시작한 거였다. 동력을 상실한 건 당연했다. 너무 빨라서 그렇지;
좋은 알바였다. 그 당시 나에게 이 보다 더 적당한 알바는 없었다. 하루 4시간, 한 달에 100만 원. 신문을 읽고 작성한 학생들의 분석지를 첨삭해 주는, 그야말로 카페에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우아하게 할 수 있는 꿀 알바. 2년 동안 매일 신문을 읽으며 블록체인과 메타버스와 챗GPT라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경탄하고, 스페이스 X의 계속된 도전과 누리호의 성취를 함께 축하했다. 0.7명 대로 내려온 대한민국 출생률과 우매한 독재자들이 일으킨 지구 곳곳의 전쟁과 기후 위기를 걱정했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가위 같은 과학의 발전은 얼마나 눈이 부신지, 바이러스 변이쯤 곧 퇴치할 것 같기도 했다. (혹 경제 논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이하더라도 지구는 계속될 거니. 돈룩업하는 인간이여. 그땐 스스로 자초한 재앙을 겸허히 받아들일 지어다)
가장 좋았던 건 가장 최신 동향과 지식을 업데이트하면서 비로소 다시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육아하며 세상과 저만치 멀리 떨어져 살았던 내가 다시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가고 있다는 안도 같은? 택배나 서빙이나 캐셔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여차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단 가능성을 보게 된 것도 기뻤다. 몸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것보다 하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나마 내게 익숙한 일을 다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벌리는 돈이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읽고 쓰는 일)을 하면 좀 덜 힘들고 좀 더 재밌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머리 쓰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을 오래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흥미를 잃으면 동기 부여가 잘 안 되는 사람. 게다가 세상 모든 밥벌이에는 고단함이 있었다. 돈으로 환원되는 그것은 속성상 어떤 모양이든 돈을 주는 이의 틀에 나를 맞추고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매번 들이는 노력이 덜해진다거나 일의 루틴함이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았다. 하루 4시간 학생들 첨삭을 하고 나면, 더 이상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쓰고 싶지 않았다. 하루 4시간 신문 분석을 하기 전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맘 놓고 읽을 수가 없었다. 돈이란 어떤 모양으로든 인간을 원치 않은 것에 얽매이게 한다.
이 정도쯤의 생활고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이 나이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나 좋은 것만 하고 살고 싶다는 것도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당연히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여자들의 경제적 독립은 여자들이 남자들만큼 일자리와 기회의 균등을 얻지 못하던 시절엔 여자들에게 혁명처럼 주어진 과제였고, 지금 내가 사는 21세기에는 그 이유를 묻는 것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만큼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나 또한 처음 알바를 시작하던 2년 전, 내 어머니 세대와 차별화를 두며 우리 세대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던 것이 이 경제적 독립이 아닌가.(한 달에 100만 원)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돈벌이를 지금 내 발로 걷어차버리려 하는 걸까.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인생의 후반전에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도 모를 이 일을. 나는 더 밀어붙이지 하지 않고 재조정하려는 걸까. 학원비 벌러 다시 세상에 나섰다 지난 2년. 돈벌이에 대한 나의 동기에 다시 미세조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