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내게 학원 알바를 소개해 준 친구는 독서모임 친구다. 우린 책을 매개로 만나 7년 가까이 함께 책을 읽고 삶을 나눴다. 그 사이 친구는 동네 학원에서 알바를 시작했고, 나를 학원으로 이끌어 주었고, 학원에서 어느 정도 노하우를 익히자 자신의 학원을 차려 나갔다. 그녀는 경제적 독립에 대한 단초를 스스로 마련하고 내게도 기회를 준 셈이었다. 그 기회를 그녀는 잡았고 나는 버렸다.
알바를 그만두자마자 나는 그동안 알바 한다고 다소 등한시하던 예전 독서모임에 열의를 내었다. 그간 못 읽은 책을 읽고 좀 더 열심을 내어 글을 썼다. 반면 원장이 된 친구는 학원 일만으로도 바빴다. 당연했다. 내가 전업주부와 독서모임 멤버로 사는 동안 그녀는 전업주부에 독서모임에 '학원장'이라는 역할까지 하나 더 부여받았으니. 그뿐인가 돈을 벌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학원장'이라는 역할을 일 순위로 다시 재편되었다. 독서모임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건 너무나 당연했다. 처음엔 그녀도 오전에 잠시라도 틈을 내어 독서모임에 나오려 노력했다. 한창 수다가 무르익을 무렵 학원문을 닫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아쉬움으로 그득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독서모임에 나오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이 더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가 맘껏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일침이 필요했다.
"OO님!! 나는 백수잖아. 당신은 원장님이라고! 난 여전히 남편한테 생활비 얻어 쓰는 사람이지만, 당신은 스스로 벌어 쓰는 자영업자가 됐잖아. 당신에겐 명함이 있고, 돈이 있다고! 노는 나랑 비교하면 안 되지!"
한때 우리는 둘 모두는 학원비가 필요했고, 경제적 독립을 꿈꿨다. 함께 몇 년 간 알바를 하며 노하우를 쌓았다. 후반전을 다르게 살아 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업주부의 자리로 돌아왔고, 그녀는 원장이 되었다. 같은 니즈로 시작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자유를 선택했다. 대신 돈을 포기했다. 그러니 그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읽고 쓰는 자유를 어느 포기해야 했다. 물론 나 또한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고 약간의 스트레스를 견디면 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많은 돈을 포기하고 알바를 하면서 독서모임도 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두 갈래 길에서 한쪽을 좀 더 밀어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니 나머지 기회비용에 대해서도 우리는 차츰 받아들여야 할 터였다.
2년 전 내가 알바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다시 일하러 나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모든 여자들이 다 돈을 벌러 밖으로 나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우리에겐 학원비가 필요했다. 세상은 변해서 여자도 남자만큼 버는 세상이 되었기에 언제 까자 남편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나처럼 경력이 단절된 여자들이건 수완이 좋건 적건 상관없었다. 우리 여자들은 자식들을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쓰는 삶이 좋았지만, 마냥 나 좋은 것만 하겠다는 생각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모습 같았다. 자식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지 않나. 나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남편과도 다른 삶을 살아보게 할 기회가. 그러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좋아하는 것쯤 희생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들 학원비 때문이었다. 나는 명품을 걸치지 못해 불행해 본 적이 없고, 부모님 해외여행쯤 못 보내 드리는 것 정도도 괜찮았다. 열심히 해도 어떤 사람은 딱 먹고살 만큼의 행운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하는 것 없이 평생 펑펑 쓸 만큼의 행운을 누리며 살기도 한다. 그건 내 소관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들이 대학을 못 간다거나, 히키코모리가 되는 것은 두려웠다. 그런데 그랬던 아들이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대학은 가지 않겠으나 알바는 하고 살겠단다. 하루아침에 교육비와 아들 용돈이 굳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왜 다시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와 기회비용을 따져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옛 직장 입사동기가 인터넷 서점 첫 여성 대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까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여러 기사에 소개되었다. 전사 이벤트를 올릴 때마다 서로 "지겨워 죽겠다"를 연발하곤 했던 동기인데, 내가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가 되는 동안 그녀는 대표 이사가 되었다. 학원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친구는 부럽지 않냐며 야단이다. 은주 씨도 다시 뭐든 해봐~ 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친구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도 부럽지가 않았다. 10년 전에도 지겨워 죽을 것 같았던 일이었다. 그때 그 고비를 넘겼더라도 나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책이 좋아 들어간 회사였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 매일 수십 권의 신간을 만나지만 제대로 읽은 책은 몇 권 없었다. 게다가 팀장이 되자 누군가를 평가하고 관리하고 매출 부담을 져야 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얼굴 마담을 하고 무대 인사를 하는 일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일을 버텨온 그녀는 대단했지만, 20년간 해 온 그 일을 다시 몇 년 간 더 해야 하는 것이 대표이사의 자리라면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책을 맘껏 읽고 쓰는 이 시간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나는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것도 없고, 금방 흥미를 잃는 사람이었다. 몸을 견디며 단단히 하는 일에도 게으르다. 하지만 읽고 쓰는 자리만큼은 늘 나를 관성처럼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머지 생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조금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띄엄띄엄이라도 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그 자리를 이제는 운명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