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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06. 2023

자긴 맨날 돈 안 되는 것만 하며 살더라

나 하나쯤은 무용한 방식으로 살아도



몇 년 전 추석을 갓 지나고 만난 독서모임에서 한 멤버가 들려준 이야기다.

명절에 형님을 만났는데, 형님이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물으시더란다. 그래서 "독서모임 하며 지내요..."라고 했더니 형님이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지.


"자긴 맨날 돈 안 되는 것만 하며 살더라."


부럽다는 건지, 한심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 형님이 결혼 후 내내 맞벌이를 해오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말 앞에 우리는 살짝 분개하고 말았다. 매일 아침 밥벌이 하러 나가지 않아도, 남편의 외벌이만으로도 살아지는 여자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최대한 양보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의 팔자에 대한 한탄이었을까. 하지만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지 않는 여자는 '집에서 논다'라고 생각하는 가부장 남자들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그 말. 정작 형님의 목소리는 차 한잔 할래?, 처럼 담담했고, 그 표정에 악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그녀가 선택한 단어를 곱씹으며 평론가 김현이 문학의 효용에 대해 말한 그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문학은 써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며 부를 축적하게 하는 수단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고 있다.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이 우리는 문학을 함으로써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한국 문학의 위상> 중.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매번 돌고 돌다가도 돌아오는 자리가 이곳일까? 읽고 쓰는 일 그게 뭐라고. 부모님 임플란트 하나 해드리지 못하고 외벌이 하는 남편의 짐 하나 덜어주지 못하는. 보란 듯이 아들 잘 키운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고 세상은 왜 이렇게 밖에 굴러가지 못하는지 맨날 징징거리는 것 같은.  이 무용하고 써먹을 데 없는 이것에 매번 관성처럼 돌아오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른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 나의 어머니들은 늘 내게 말했다. 한 푼 두 푼 모아봐래이. 통장에 돈 쌓이면 올매나 재미있는지 모른대이~ . 주변의 엄마들도 다들 어찌나 재주가 좋은지, 열심히 벌어 열심히 쓴다. 돈 벌리는 게 눈에 보이고 하면 벌리니 돈을 벌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이 보이고 또 다른 작가가 보인다. 새로운 세상과 새 작가를 만나는 것이 제일 재밌고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달려가는 순간이 제일 좋다. 돈 버는 사람도 그렇다며? 돈이 벌리면 힘이 들어도 모르겠다며? 그런 면에선 나도 똑같다. 읽어야 할 책이 책상에 수북이 쌓이는 스트레스는 아무리 쌓여도 힘들지 않다.


소녀 시절엔 그냥 책이 좋았고, 젊은 시절엔 책은 내 돈벌이 수단이었다. 아이 사춘기와 내 갱년기를 지나면서는 울고 싶을 때마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을 때만큼은 비로소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지금 회사에 잘 다니고 있으니 아직까진 먹고 살 일 때문에 걱정할 건 없다.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고 하니 아들 학원비 때문에 원치 않은 일을 하러 나갈 필요도 없다.  

나는 다른 여자들이 걸치고 다니는 명품 따위 관심 없고 직위와 명함 또한 부럽지 않다.  

그러니, 유용한 일에 달려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마당에 나 하나쯤 무용하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가장 만족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P.S.

철학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부 이야기.' 얼마 전 자기 계발 강사 김미경 씨가 자신의 최종 목표가 '신학 공부'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이든 신학이든,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을 하면 될 일이다.


따듯한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한 늙은 어부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관광객이 바닷가를 거닐다 할아버지가 자는 모습을 보았어요. 해가 중천에 있는데도 계속 잠만 자는 할아버지가 이상해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할아버지, 고기잡이 안 나가세요? 해가 저렇게 높이 떴는데."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을 슬며시 뜨면서 말했지요.
"벌써 새벽에 한번 다녀왔네."
관광객과 할아버지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럼 또 한 번 다녀오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 뭐 하게."
"아, 그럼 저 낡은 배를 새것으로 바꿀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 그럼 새 배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요."
"그러면?'
"그렇게 되면 더 큰 배를 사고 사람도 더 많이 고용할 수가 있지요. 그럼 더 많은 돈을 벌 테고."
"그렇게 벌어서 뭐 하려고?"
"그럼 공장도 세우고 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요."
"옳지. 그러고 나면 뭘 하지?"
"아, 그렇게만 되면 할아버지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게 누워서 지내실 수 있지요."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네."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부 이야기' : <생각한다는 것>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2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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