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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31. 2024

우리에겐 때로 추앙이 필요하다

그때 내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필요했던 이유



내 친구 중에 피트니스에 진심이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의 루틴은 다음과 같다. 공복에 레몬 빠진 물 1리터를 마신다. 아침엔 무조건 산에 오른다. 내려와서 아쉬우면 러닝머신 위에 올라 땀을 한번 더 뺀다. 주말엔 한강에 간다. 자전거를 타거나 빠른 도보로 걷는다. 딸이 어렸을 때는 이런 기본 루틴 이외에 함께 108배를 한다거나 수영, 필라테스, 스쿼드, 풋샵으로 종목만 살짝 바뀌었다 뿐. 운동을 시작했다가도 작심삼일을 시전 하다 끝나기를 반복하는 나 같은 위인들과는 달리, 최근 10년 간 단 한 번도 운동이 끊어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대한 찬사는 나이를 먹고 건강에 대한 염려가 높아질수록 더 강렬해져가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이 친구는 뷰티에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사십 중반이 넘어서자 우리들 얼굴에 하나 둘 주름과 기미가 올라오고, 뭔가 모르게 초로의 기운 감돌 때에도 이 친구만은 달랐다. 되려 만날 때마다 얼굴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저 혼자 얼굴에다 무슨 짓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알고 보니 한 번씩 무슨 캡슐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했다. 어느 날은 압구정 미용실에서 곱슬머리를 폈다고도 했다. 아들 학원비 보다 더 많은 돈을 머리칼에 쓸 줄 아는 용감한 여자가 내 주변에도 있다니! 동백기름, 콜라겐이란 단어도 이 친구에게 처음 들었고, 아침 세안과 저녁 세안 후 뭘 발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하면 이 친구에게 물어보면 최신정보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진심이 아니라면 따라올 수 없는 그녀의 열정과 부지런함에 매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몸에 이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니 당연히 보디 라인이 예쁘고, 옷을 입어도 테가 난다. 만날 때마다 "이제 옷 좀 그만 사야 되는데"를 연발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옷을 입고 나온 적이 없다. 자주 사다 보니 옷 고르는 센스도 날로 좋아질 밖에. 내가 봐도 저렇게 예쁘게 가꾸고 정성껏 치장한 몸이 저렇게 센스 있게 차려입고 우리 같은(?) 여자들만 만나러 다니기 아깝단 생각이 슬슬 들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최근 남자 동창생 하나를 만나기 시작했다고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국민학교 동창생인데, 우연히 카톡으로 연락이 와서, 한 두 번 만났다고 했다. 물론 남편의 허락 하에. 몇 번 동창이 근무하는 광화문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게 다였긴 했지만 친구의 얼굴엔 색다른 생기가 감돌았다. 그 애가 자기를 짝사랑했다던가, 서로 썸을 타다 헤어졌다던가, 근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 애가 되게 멀끔해졌다던가... 중년의 남녀가 동창을 만날 때 흔히 전개될 법한 서사가 이어졌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반응 또한 이 뻔한 질문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담에 연락 오면 또 만날 거야? "

"음... 아마도? 그럴 거 같아."

"... 둘이만?"

"응!"

"정말? 아니... 근데 굳이, 왜에...?" 


평소에 남편과 그 흔한 잠자리 트러블조차 없는 친구가, 이 나이에 굳이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우리는 재차 묻었다. 


"넌 남편이랑 대화도 많이 하고, 남편도 너 말이라면 다 꺼뻑 잘 들어주잖아. 우리랑 달리 너네 부부야 말로 서로 아쉬운 게 하나도 없잖아. 근데 왜 굳이 다른 이성 친구가 필요한 거야?"

"그냥 그 친구랑은 남편과는 하지 못하는 대화 같은 걸 나눌 수 있어. 그 친구가 책을 좋아하더라고. 책 얘기 같은 것도 나누니 재밌고."

"야, 책 얘기는 독서모임에서도 하고 우리랑도 허구한 날 하는 거잖아."

"아... 그러니까... 그게..."


여전히 친구의 대답이 마땅치 않게 느껴진 우리의 추궁이 이어지자, 정말 뜻밖에도 친구가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포인트였다. 


"아,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게 너희들이랑 얘기할 때와 달라. 너희들한테 그동안 솔직하게 다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너희들 만나서도 할 얘기 맘껏 다 못할 때 있었어. 하고 나도 괜히 했다 싶을 때도 있었고. 특히 너희들 만나서 내 딸 얘기 할 때마다... 뭐랄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동네 엄마들한테도 딸 얘기만 하면 뭔가 반응이 늘 별로인 거야. 근데, 이 친구 만나서는 나 내 딸 얘기 원 없이 해도 돼서 좋았어. 내가 하는 말이 그냥 고스란히 그 친구에게 날아가 꽂히는 기분. 충분히 가닿고, 충분히 돌아오는. 온전히 칭찬받고 지지받는 그런 느낌이었어."


아~ 그런 느낌! 뭔지 알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주도적이고 똑똑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란 내 친구의 딸은, 우리들이 아들 사춘기로 지지리 궁상을 떠는 동안에도 어찌나 육아의 정석 안에서 반듯하게 자라주었던 지. 우리가 한 번씩 만나 아들 욕을 할 때마다 차마 친구는 우리와 함께 공감도 훈계도 할 수 없었다. 친구는 그저 묵묵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해야 했다. 그러니, 같은 동네 같은 학교에서 1점 하나를 두고도 등급 하나가 뒤바뀌는 친구이자 경쟁상대인 엄마들 사이에서는 뭔가 발언하기 더욱 어려웠을 게 분명했다. 무슨 말 한마디에도 선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 테니. 무슨 말만 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들렸을 테니. 그때 친구 앞에 나타난 동창생은 자기 딸에 대해 거리낌 없이 털어놓을 수 있고, 또 아무런 저항 없이 격려받을 수 있는 그 누구보다 편안한 상대였을 것 같았다.  


둘 사이에 격조한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한, 현재의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사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남편과는 너무 가까워 굳이 주고받을 필요 없는. 그것은 바로 추앙받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엄친아를 둔 친구에게 남자 친구가 필요했던 그 순간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해되었던 에피소드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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