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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an 03. 2024

불과 10년의 격차

출산율 대책이 교육 정책을 끼고 돌아야 하는 이유



남편이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고정 멤버 서너 명이 조용한 바닷가 한 귀퉁이에 캠핑카를 정박한 후, 손님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바퀴 달린 집'이다. 멤버 일부가 한쪽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재료를 썰고 국을 끓이고 밥을 안친다. 또 다른 멤버는 상추를 씻고 밑반찬과 수저로 기본 세팅을 한다. 그것 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는 식탁 위에 회 같은 그 지방 별미를 곁들이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끼 식탁이 뚝딱 차려진다. 그리고 그때 하필 부엌에서 한창 저녁상을 차리고 있던 나는 남편의 감탄사에 잠시 TV 앞에 섰다가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돌아서는 것이다.


저녁상 하나를 대여섯 명이 함께 차리다니!


그러고는 나름 구색을 맞추려고 끓이고 굽고 차려낸 내 식탁을 바라보며 뭔가 속에서 울컥 올라온다. 대여섯 명이 함께 차리니까 그렇지! 한 명이 대여섯 가지 음식을 차려내는 거랑 대여섯 명이 한두 가지 음식을 차리는 게 어떻게 똑같겠어?~ 투자 대비 수고와 공정이 생략되고 오로지 결과물로만 단순 비교될 내 식탁을 향한 푸념.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고 정작 저녁상을 받은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건만, 저 밑바닥에서 해묵은 감정이 올라오는 걸 보니 여기에도 뭔가 쌓인 감정이 있다. 힐링 프로그램을 보면서까지 이렇게 엉뚱 비교해 대는 걸 보면 말이다.



불과 10년의 격차인데도, 요즘 30-40대 부부(이하 '젊은 부부')와 40-50대 부부(이하 '중년 부부')의 온도차는 상당하다. 교회는 수많은 사회 구성체 중에서도 변화에 가장 둔감한 보수 공동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여자들이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성가대에 서거나 예배 안내를 한다. (한동안 젊은 아빠들이 어쩔 줄 모르며 아이들 꽁무니를 좇아다니는 걸 보며 남편은 혀를 쯧쯧 찼다). 주일학교 단톡방에도 엄마 대신 아빠가 들어와 아이들의 교회 일정과 알림을 받는 경우가 늘었다. 당연히 젊은 부부 대부분은 맞벌이다. 평일 아이들 픽업과 케어, 집안일 모두 똑같이 나눠하는 이들은 귀성길 운전도 반반씩 똑같이 한다고 한다.


이 모든 변화가 우리 또래 중년 여자들에게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특히 아이 육아 때문에 맞벌이를 접고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파트타임으로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우리 같은 여자들에게는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30년의 격차도 아니고, 고작 10년의 격차가 이정도라니. 그럼 우리 때도 가능했던 건 아닌가, 하는 회한이다.


아이에 대한 투자를 비교하면, 격차는 더 확연하다. 주일날 유치부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토요일 호캉스를 하고 바로 교회로 왔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은 키즈 카페에 수영장도 있다고 한다. "토요일에 뭐 했어?" 물어보면 키즈 카페에서 수영을 하고 놀았단다. 얼마 전까지 손흥민이 되기 위해 축구클럽을 다녔던 남자아이는 토요일마다 야구장엘 간다. 수영과 태권도(여자 아이들은 발레)는 기본 옵션. 지난달까지 피아노가 너무 재밌어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여자아이도 요즘 피겨스케이팅에 빠져 꿈이 '김연아 선수'로 바뀌었다. 영수 공부는 당연히 깔고 가는 디폴트 사교육이다. 하지만'공부'가 더 이상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자 요즘 젊은 부부들은 확실히 스포츠 쪽으로 공을 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수입은 늘고 투자할 아이는 반으로 줄어든 요즘 세태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답게 숫자로 한번 나눠 비교해 볼까? 남녀 각각의 수입 및 육아에 대한 투자를 1로 산정하고, 젊은 부부를 맞벌이하는 3인 가족(엄마, 아빠, 아이 1), 중년 부부를 외벌이 하는 4인 가족(엄마, 아빠, 아이 1, 아이 2)으로 나눠 비교해보자. 젊은 부부가 아이 하나에 들이는 공이 4(엄마 수입 1, 아빠 수입 1, 엄마 육아 1, 아빠 육아 1)라면, 중년 부부가 아이 하나에 들이는 공은 아이가 둘이다 보니 1.5(아빠 수입 0.5, 엄마 육아 1)가 된다. '4 : 1.5' 맞벌이와 자녀수에 따라 수입과 교육 투자라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엄빠 양육의 정서적 측면 모두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물론 나처럼 약간 억한 감정이 있는 독박육아맘에 경단녀가 대충 어림 한 단순 비교다. 하지만 요즘처럼 똑똑한 젊은 여자들이 이 차이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내가 계속 주목하고 있는 것은 엄마 육아의 수치다. 내 또래 4인 가족의 아이 하나에 들이는 엄마 육아는 0.5가 아니라 '1'이다. 평균 자녀수가 2명인 내 또래 중년 여성들의 두 아이 교육을 향한 열망은 당연히 2가 된다. 숫자가 큰 만큼 의미도 복잡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로 이 숫자가 '엄마'라는 교집합을 축으로 학부모와 학원장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을 절대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엄마들의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의 수요(엄마)와 공급(여학원장)의 양축을 팽팽하게 지탱하는 그 밑바닥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해 중단된 여자들의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있다. 그것이 자녀교육이라는 대리 만족과 어떻게 단단히 꼬여 탄탄한 사교육 시장의 축을 이루는지도.


배울 만큼 배운 여자들이 남자들과 똑같이 사회에 정박하지 못했다는 것.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어머니 세대만큼의 경제적 풍요도 따라주지 못했다는 것. 그 욕망이 자녀교육에 투영되어 집 안팎에서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 내 아이에게는 내가 경험한 가난과 실패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어미들의 근본적인 불안은 앞으로도 사교육 시장의 불쏘시개로 작용할 것이다.


내 아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다는 이 어미들의 원초적인 욕망. 이것이 지금 0.7명 출산율 바로 직전 세대 서사의 본질이다. 이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없다면 수많은 출산 정책은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 뻔하다. 전 정권이 부동산 정책에서 놓친 부분도 이 인간의 원초적 불안과 욕망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 아닌가. 출산 정책이 교육 정책과 맞물려 돌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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