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우 30년의 낙차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전근대, 근대, 후기-근대를 거의 반세기 만에 경험한 사회죠. 서구 문명권에서 400년이 넘게 걸리며 진행된 것들을 이렇게나 빨리 해치웠어요. 서구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그러니까 전근대인 할머니, 근대인 어머니, 후기-근대인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입니다. 세대 갈등이 유난 맞은 까닭도 여기 있지요." (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백소영 저. p.10)
그러는 사이 한 세대가 갔습니다. 미국에서 반세기 전쯤에 중산층 여성들이 겪었던 제도적 혼란을 오늘날 대한민국 다수의 젊은 주부들과 2030 세대 딸들이 겪게 되었죠. 자기를 희생하며 전업주부로 최선을 다해 딸들을 훌륭한 전문가로 길러낸 엄마 세대 덕분에, 지금의 딸들은 그야말로 경쟁력 있는 주체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 사회의 ‘여성 응시’는 여전히 ‘근대적’인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가정을 지키는 근대적 기획은, 후기-근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즉 바깥일을 하는 여성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구조라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이에 더하여 전근대적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여전히 가정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 보니 ‘추석에 전 부치고’ 대가족 단위로 행사를 치르는 전통 사회의 일들까지 잔재해 있죠. 이런 '일상'을 사는 젊은 세대로서는 그야말로 타임 슬립을 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같은 책.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