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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8. 그 남자, 아들

- "남자는 잔잔한 일 하면 큰 일 못한대이"



공부만 잘하면 성공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공부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여동생들은 오빠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다음은 흔히 알고 있는 레퍼토리다. 불과 몇십 년 만에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고, 모든 국민이 의무교육을 받게 되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공부'를 향해 달리게 되었다. 공부 잘하던 똑똑한 아들보다 재리에 밝은 아들이 더 성공하는 세상이 되었다. 공부 못하던 이웃집 아들이 택배 박스 하나만 미친 듯이 찍어내어 한 달에 몇 천씩을 집에 가지고 들어왔다.


그렇다면 그 많던 공부 잘하는 아들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정서적 갭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공부 잘하는 남편이 어머니 생각만큼 괜찮은 남편이 아닌데, 아들에 대한 어머니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공부 잘한 만큼 성공한 것도 아닌 남편들이, 그렇다고 함께 맞벌이할 만큼 집안일을 분담하는가, 하면 그도 아닌 애매한 남자들이 되었는데도 어머니들에게 아들은 여전히 최고의 남자였다. 남자가 아이 유모차만 밀고 다녀도 뒤에서 흉을 보던 시절. 어머니 옆에서 장바구니를 들어주던 아들은 그녀들에게 무뚝뚝한 남편을 대신하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시대엔 그 정도로 안 되는 걸. TV 속 드라마나 카톡 프사에는 다정한 남자들로 차고 넘친다. 그런 남자들은 애들 교육 때문에 TV를 없애자 하면 말없이 코드 뽑고, 친정 식구 데리고 해외여행 다녀와서 마누라 프로필 사진을 바꿔 준다. 밥벌이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온몸으로 놀아주는 아빠다. 자녀 교육의 청사진을 가지고 여자만큼 부지런히 업데이트하는 남자다. 소위 옆집에만 있다는 그 남자. 그러다 보니 공부만 잘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던  ‘조선시대 남자’들의 입지는 더욱 땅에 떨어졌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큰 데 써라'와 대구 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남자들이 잔잔한 일 하면 큰 일 못한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큰 일' 해야 될 남자로 자랐다. 부엌에 들어와 자기 먹은 그릇을 씻어선 안됐다. 그건 여자일, 잔잔한 일이므로. 그들은 어머니 걸레를 빼앗아 자기 방을 대신 청소해본 적이 없다. 왜? 바닥에 기어 다니며 먼지를 훔치는 일은 하찮은 일이므로. 남자는 바깥에서 번듯한 일을 해야 하므로.


신혼 초. 집안일을 분담하자고 제의했을 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사이에 네 일 내 일이 어딨니. 먼저 보는 사람이 하면 되지."

하지만 집안일은 남자들 눈에 먼저 잘 띄지 않았다. 집안일이란 게 얼마나 끊임없이 몸을 놀려야 말끔한 상태가 유지되는지 그들은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본 적 없는 그 일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빈정 상해 그 남자 눈에 띌 때까지 세탁기를 돌리지 않는 날이 늘었다. 빨래 바구니에 가득 쌓인 양말은, 신고 나갈 양말이 없어 비로소 불편함이 느껴질 때에야 그 남자 눈에 띌 것이 분명했다. 아이가 둘이 되자 악감정 따위도 필요 없었다. 목욕물 버린다고 아이까지 버릴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두 아이 챙기기 데에만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집안꼴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졌다.


그 당시를 회생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남편은 매일 10시가 넘어야 집에 기어들어왔다. 아침에 8시에 아이 맡기고 6시 땡 치자마자 퇴근에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받아 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피곤에 찌들어 눈이 반쯤 풀린 여자 하나가 한쪽 손으론 아기 하나를 가슴팍에 안고 수유를 하면서, 다른 손으론 네 살짜리 아기 고추에 소변통을 받쳐 들고 있다. 누군가의 먹는 것과 싸는 것이 나의 몸을 통해 동시에 흐르고 있다는 기이한 느낌. 그때 알았다. 아, 나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구나. 나는 이제 기능으로서만 존재하는구나.


그런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퇴근하려는데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나 일찍 들어가니까 서둘러 오지 않아도 돼. 예비군 훈련 왔거든.”
여느 때 같으면 반가웠을 그 멘트가 아무렇지 않았다.

나에겐 생존인 육아가 그에게는 한 번의 이벤트가 된 그때부터다.
그것이 나에 대한 배려 없음이 아니라 그의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며,
여차하면 나는 집에 들어앉을 사람이고,
궁극적으로 생계를 이끌 사람은 남편이라는 것을
머리로 너무너무 이해해 버리게 된 이후부터이다.
그의 무심함에 깨끗이 마음 비웠듯, 나는 이제 그의 호의에도 움직여지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그의 눈을 쳐다보지 않게 된 것이. 저녁마다 그를 기다리는 일마저 그만두게 되자, 싱글일 때도 몰랐던 외로움이 덜컥 덜컥 밀려들었다. 함께여서 더 외롭다는 말도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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