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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6. 조부모라는 계급

- 도대체 얼마면 만족할 거 같은데?



10여 년 일하던 회사에서 나와 처음으로 4천 몇백만 쯤 되는 현금이 내 통장에 들어왔을 때, 내 평생 이렇게 큰돈은 처음이었다. 맞벌이 당시 남편은 아파트 대출 이자와 각종 보험과 공과금 등을 관리하고 있었고, 내 월급은 고스란히 생활비와 아이들 돌봄 비용으로 충당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대책 없이 회사를 때려치우자 당장 남편은 생활비를 대줄 형편이 못됐다. 그다음 달부터 통장에 들어온 퇴직금은 고스란히 생활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딱 1년쯤 지나자 은행 잔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든다는 사실을. 한 달에 아이들 유치원과 학원 한두 개 보내고, 영화와 외식 한 두 번 하고, 1년에 여행을 한 두 번 다니는 거 외에 여유를 부린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명품백 하나, 피부 마사지 한번 누려본 적이 없는데 한 달에 인당 기본 1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건 또 다른 의미로 내 불안을 자극했는데, 그 말인즉슨, 집안의 가장 한 사람이 아파 드러눕거나 직장을 잃고 재취업을 못할 경우, 1-2년 만에 1억에 가까운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1천이 아니라 1억이다. 이미 실업한 데다 앞으로 혹 불운이 겹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를 내겐 과거를 숨기고 사는 스파이마냥 불안함이 몰려들었다.


추석을 앞두고 시댁과 친정 경조사비로 목이 빡빡하게 조여오던 어느 날, 내가 뾰로통하게 한마딜 건넸던가. 남편이 말했다.


"도대체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만족할 거 같아?”


그러게. 정말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만족이 될까. 나도 궁금했다. 얼마나 있어야 중학교에 올라가 말끝마다 나를 거부하는 아들놈과 싸우고 난 뒤에도 세상이 살만 해 보이고, 지금과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이는 빤한 인생이 늙을 때까지 계속된다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허튼 생각 따위 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있어야 가족 모임 때 용돈으로 10만 원을 넣을까 20만 원을 넣을까 하는 고민 없이 가족모임이 기다려질까. 남편이 지중해 크루즈 티켓을 끊었는데 시부모님 모시고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이웃집 여자에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고 함부로 폄하하는 말을 하지 않게 될까.


막상 지금 나를 조이고 또 풀릴 만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실타래가 끊이지 않았다. 가끔은 불행이 겹쳐왔다는 이웃집도 넌지시 돕고 싶고, 늘 먼저 나를 챙겨주던 친구들에게 한 번쯤은 먼저 먹음직스러운 제철 복숭아 한 박스도 보내주고 싶다. 임플란트 해야 하는 친정 엄마한테 애쓰셨다고 용돈도 좀 챙겨 보내고, 서점에서 아이들 책 말고 내 책도 한 두 권쯤 골라 담고 싶다. 방학 때마다 나가진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아이들 어학연수도 보내주고 싶다. 그렇게 남들처럼 아니 남들 반의 반의 반만큼만 이라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싶다. 내가 명품 백에 명품 화장품을 사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도 누리며 살면 안 돼? 우리 정말 그 정도도 안 되는 거니?...  속으로 혼자 막 되뇌는데 갑자기 남편이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연봉이 상위 10%래."


기사를 뒤져보니 남편 말이 맞았다. 물론 10% 구간 곡선 그래프 중에서 길게 늘어선 뒷꼬리 정도더라도 말이다. 집 한 채도 없이 매달 카드값이나 겨우 메꾸며 사는 우리가 상위 10%라니. 믿기지 않았다. 어떤 기사에선 중산층의 기준을 '30평형 아파트 1채,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중형차 1대, 현금 1억, 해외여행 1회'라고도 했다. 물론 소득과 수입과 자산을 구분하고 중산층을 산정하는 것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와 그래프 분포도에 따라 체감이 달라진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에누리하더라도 내가 체감하는 연봉 상위 10%의 생활은 흔히 말하는 중산층 수준의 턱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의 정체는? 한동안 나는 그게 상여금이나 연말 성과급, 그리고 복지 제도 같은 중소기업 대 대기업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대기업에 가고 공무원이 되려 하는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가장의 능력과 노동 소득과는 그닥 상관없었다. 바로 '조부모'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급이라 생각했던 이웃 여자들은 남편의 월급으론 나처럼 먹고사는 기본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매달 그만큼의 돈이 다시 그녀들의 통장에 꽂혔다. 서울에 건물과 아파트를 소유한 조부모들이 아들과 손주의 장래를 위해 매달 투자금을 쏘아 주었다. 그들은 일하지 않아도 돈이 넘쳐날 만큼 있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돈은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이제 필요한 건 명예! 명문대와 대기업이나 '사'자 돌림의 그것이. 그들의 재력과 부를 인계하고 더욱 빛나게 할, 자식들의 성취와 번영이. 그녀들은 조부모의 조력으로 자식을 교육하고 뷰티 마사지샵과 골프 클럽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돼지 엄마가 되어 똘똘한 아이 엄마들과 편을 먹고 입시 정보를 구하러 다녔다.


계급도 사라지고 누구나 노력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여전히 계급이 있었다. 그것은 조부모라는 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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