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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5. 재계약

- 부동산 가격이 미친듯이 뛰던 해



작년 이맘때쯤, 부동산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인집이 재계약 통보를 하며 5-6천만 원을 더 불렀다는 거다. 부동산이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직전이었다. 안 그래도 모이기만 하면 온통 부동산 이야기뿐이었다. 주변이 플랫폼 시티로 지정되면서 옆동네 아파트 가격도 들썩들썩했다. 그동안 저평가됐던 아파트들이 최소 1억이 올랐다고, 어떤 집은 7-8년 전 3억 5천에 산 아파트를 이번에 7억에 팔고 수지로 떴다고 했다. 늘 적금으로 돈을 불리던 알뜰한 동네 동생은 이번에 아예 주식으로 갈아탔다고 했다. 줄곧 가정주부로 살면서 세상 물정일랑 모를 것 같던 친구도 한동안 통화만 하면, 애들 쓸데없이 학원 보내지 말고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주라고 했다. 


원 세상에! 정부는 부동산이며 투기를 막겠다고 난린데, 내 눈엔 온 동네가 좀비처럼 투기 열풍에 휩쓸린 듯 보였다.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돈을 불리는 수완 따윈 애초에 없기도 하고, 모든 경제권은 남편이 쥐고 있던 탓에 나는 그런 얘기는 늘 남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게다가 우리 동네로 말할 것 같으면 분양 이래 주욱 하향곡선을 그리는 정체된 동네였다. 이런저런 호재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분양가 이상으로 올라본 적이 없었다. 그건 이 동네를 찾아든 실입주자들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환경이 너무 좋아 불편한 교통쯤은 감수하기로 작정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부동산에는 조만간 연락드리겠다고 전달 한 뒤, 주말에 시간을 내어 부동산 몇 군데를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다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주인집이 다음 주쯤 통과될 예정인 “'임대차 3법' 때문에 마음이 급하니”, 빨리 결정해달라고 재차 전화가 왔다는 거다. '임대차 3법'은 기존 전세금에서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등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정부에서 추진 중인 법안으로, 다음 주쯤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그 법이 통과되면 집주인은 우리에게 5%인 1500만 원 이상으로 전세금을 올릴 수 없다. 이 집에서 재계약을 하고 6년째 살고 있는 동안 한 번도 까탈스럽게 군 적 없는 집주인이었다. 그 덕에 이 동네에 이사와 나 또한 집 없는 설움 따위 느껴본 적 없었다. 그런 주인집이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부동산을 통해 더 높은 금액에 집을 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중이었다.


 “제가 3단지 때부터 계속 집 알아봐 드렸잖아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저도 새로 계약하고 계약금 받고 그러면 왜 안 좋겠어요. 근데 지금 집이 안 나와요. 나와도 다들 이렇게 집값 올려서 내놓으니 어디 가도 이 가격이에요. 새로 이사하면 이사비용 최소 2-300 들죠. 그 돈이면 대출 이자밖에 안돼요. 그냥 전세대출 추가로 받으시는 게 제일 나아요.”
 
 부동산 사장님 또한 난감해하는 투가 역력했다. 덩달아 맘이 급해진 나는 바로 부동산 업자인 이웃 엄마에게 전화를 돌렸다.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집주인이 3개월 이전에 통보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고, 심지어 이번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몇 년 간은 5% 이상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아예 재계약 자체를 꺼린다는 거다. 지금 세입자를 내보내고,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린 전세금으로 새 세입자를 받길 원하기 때문이라고. 좋은 법을 시행하면 뭐하나. 늘 그걸 악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언니, 물론 세입자도 권리 있지. 근데 감정적으로 해봐야 서로 진흙탕 싸움밖에 안 돼. 이 동네에서 뜨고 싶지 않은 이상은 서로 합의해서 조정하는 게 제일 좋아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 집주인도 수지 어딘가에 전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동네는 지금 더 큰 금액으로 전세가 올랐다고 하니, 그쪽도 자기 집주인에게 전세 압박을 받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서로 물리고 물리는 연쇄 고리.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남편이다. 안 그래도 몇 달 전부터 자꾸 어디 시골로 이사 가자고 하는 걸 애들 학교 핑계를 대며 간신히 눌러놓던 중이었다.   
 
남편은 예상대로였다. 세입자 권리 운운하며 “세입자가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다운 톤이었지만, 자존심에 상처 받은 게 분명했다. “집주인이 더 올려 내놓건 말건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듯 우리도 3달 전에 꼭 이렇게 하겠다 통보할 필요 없어. 아쉬우면 집주인보고 나한테 직접 전화하라고 해. 다만 근무 중에 바빠서 못 받을 수도 있으니, 그리 알라고 하고. 그리고 누가 집 보러 오면 우리 사정에 따라 못 보여 줄 수도 있다고 해. 그리고 우리도 집 알아보면 되지. 정 안되면 연립이라도 들어가서 살면 되고. 안될 거 뭐 있어.”
 
안 그래도 갈피를 못 잡던 남편의 마음은 집주인의 태도로 인해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고, 남편은 똑같은 대출을 받더라도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그래, 더 작은 평수로 가는 것도 상관없고, 연립에서 못 살 바도 아니다. 사람이 뭔들 못하고 살겠나. 그때나 지금이나 내 걱정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 진흙탕 싸움에 휩쓸려 자존심 싸움하다 원치 않는 집이라도 떠안게 될까 봐, 딱 그거 하나였다.


다행히(!) 우리는 세 달 후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재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매달 몇천 씩 올라가던 아파트 가격이 1년이 사이 2억이 넘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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