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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4. 허영심이었을까?

- 사교육, 욕망의 용광로



허영심이었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분수에 맞게 산다는 말은 무엇일까? 만약 내가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몇 백을 카드로 당겨 써도 다음 달 월급이 어느 정도 커버해 주는 맞벌이 었다면 그 정도쯤 욕망해도 되는 것일까. 그럼 이건 어떤가. 고정 수입이 없어서 아파트 대출로 생활하는 집이라면? 대출받은 돈으로 먹고사는 건 괜찮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건 허영심일까? 근데 그 아파트가 우리 집 보다 더 비싼, 시가 10억이 넘는 집이라면? 매달 3억이 넘는 은행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5억짜리 전세로 사는 월급쟁이보다 부자라면? 그런 자기 명의의 집이 한 채쯤 있고 꼬박꼬박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이 들어오는 집이면 마음껏 사교육을 해도 되는 걸까?


어느 날 신문에서 강남의 평균 아이 사교육비가 우리 한 달 수입을 훌쩍 넘긴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그게 말이 돼?’라고 동네 엄마들과 모인 자리에서 냉소했을 때,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분당 사는 누구네 집 아들이 지금 고3인데 그 집 아들이 원룸에서 선생님을 들여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각각의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이 제시간에 오가고, 밥하고 빨래해주는 아줌마가 틈틈이 들락거린다고도 했다. 얼마 전까지 같은 학원에 아이를 보내던 친구도 얼마 전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학원비 벌러 원치 않은 일을 하고 싶진 않아, 하며 맞장구치던 친구였는데, 이제 논술과 과학까지 하게 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들어갈 때쯤엔 이미 다 들어간 거야, 하고 끝까지 버티던 마지막 이웃 엄마도 얼마 전 주식을 사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학원비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교육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다 좋은 대학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서다. 좋은 대학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고, 좋은 직장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싶어서. 명절 때 부모님께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교육을 시켜주고, 그래서 좋은 아들이자 좋은 아빠이자 좋은 며느리이고 싶어서. 명절이 다가오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게 불편하고 싶지 않아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게 나쁜 일인가?    


맞벌이를 그만두었을 때 우리는 서울 있던 집 한 채를 팔고 이곳 경기도 변두리로 이사 왔다. 우리의 꿈은 전원주택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서울에 살지 않을 거니까, 서울에 집을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매매 계약에 도장을 찍을 때 어느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경기도 변두리에 집 한 채를 갖지 못했다. 그때 서울의 집을 팔지 않고 전세를 주고 그 전세 금액으로 이곳에 전세를 얻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그 집을 팔아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전원주택을 한 채 짓고 살고 있을 것이다. 불과 10여 년 만에 그 서울 집이 5억쯤 올랐으니까.


남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어렵다는 직장에서도 아직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늘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남편은 여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 집 한 채를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가정을 꾸리기 시작 한 이후 부동산과 금융 자본이 늘 노동 자본을  앞서 갔기 때문이다.


남편 탓이 아닌 걸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자주 불행하다. 그가 이웃 남자처럼 더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해서. 그게 내 욕망을 제한하고, 내 삶을 규정해서. 남편에게 빌붙어 사는 주제에 다른 여자들처럼 수완도 없어서. 여자들도 남편들 만큼 자유롭게 벌어들이는 시대에 여전히 남편 탓이나 하고 있어서.


그렇게 내가 점점 사악한 여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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