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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2. 행과 불행의 시작

- 회사를 때려치고 집에 들어앉았다



남편은 늘 한결같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맞벌이하던 당시 남편도 지금과 똑같았다. 그는 늘 밖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었고, 회사에서 전력에 전력을 다하다 너덜너덜해진 다음에야 집에 들어왔다.


여느 날처럼 퇴근하자마자 달려와 두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안 자겠다고 보채는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던 나. 아마 작정을 하고 그를 기다렸을 거다. 11시가 되어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던 듯하다.
 
 “당신은 집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해?”
 “집...?”

그가 망설였던가. 아무렇지도 않았던가. 잠시 뒤 나처럼 텅 빈 동공을 한 그가 대답했다.


“집은... 쉬는 곳이지.”

 
집이 쉬는 곳이라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맞벌이 남자 입에서 나온 ‘집은 쉬는 곳’이라는 명제 앞에서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 잘난 회사는 당신만 다니냐고. 육아에 있어선 왜 나만 맨날 디폴트여야 하냐고. 나는 묻지 못했다. 그는 그저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고 키워진 대한민국 여느 가부장 집 둘째 아들에 다름 아니었고, 나 역시 맞벌이가 무엇인지 모르고 털컥 두 아이를 낳은 대한민국 여자였으니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만약 두 사람 중 하나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닌 ‘그’라는 것.  


그 뒤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에 '들어앉았다'. 이제 더 이상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 떠밀고 울부짖는 아이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TV 앞에 앉아 도라에몽에 심취한 아이는 행복하다. 유치원 차가 올 때까지 나는 아이 허벅지를 베고 눕는다. 눈앞에 아침 햇살을 받아 발 그래진 아이 발가락 열 개가 보인다. 도~레미~도 미, 도, 미... 도레미송을 부르며 앙증맞은 그것들을 마음껏 희롱한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등에 업고 집까지 걸어오는 길은 또 얼마나 행복하던지! 살포시 잠이 든 아이가 내 품에 꼬옥 안긴다. 아이의 작은 숨이 오르락 내린다. 나는 아이를 업고 계절의 변화가 선명한 뒷길을 일부러 크게 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네 곁에 있어줄게. 다신 등 떠밀지 않을게. 내 등에 매달린 어린것의 온기는 따듯하다. 나를 향해 환히 웃어주는 아이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앞마당을 뒹굴고, 진달래 전을 부쳐 먹고, 테라스에 상추 모종을 키웠다. 유년을 다시 사는 그 기쁨에 나는 흠뻑 취했다.  


맞벌이가 정점을 찍던 어느 날.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만날 때마다 검은 독을 내뿜던 나에게 친구가 들려준 말이 있었다.


“은주야,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그건 상대방을 위한 말이 아니야. 독을 품으면 그게 결국 자기 해하게 되거든.”


삶에 절대분의 여유가 생기자, 남편에 대한 원망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당장 그를 덜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땐, 얻은 것에 취해 내가 잃을 것에 대해 미처 알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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