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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1. 너는 놀고 먹어 좋겠다

불행한 여자들을 찾아다녔다(1) -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오늘 아침. 러닝 머신에 올라 열심히 걷고 있는데, 출근하기 위해 가방을 들고 나서던 남편이 나를 무심히 돌아봤다. 평소에도 특별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은 눈빛. 하지만 나는 대번 죄책감으로 반응한다. 너는 놀고먹어 좋겠다, 라거나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같은 눈빛. 물론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모두 다 내 억측일 것이다.


큰아이가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여느 날과 별반 다름없이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아침 식탁을 치우고, 슬슬 마루를 쓸려던 참이었다.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는 대뜸 집에 가야겠다고, 울부짖었다. 너무 무서우니 담임선생님께 집에 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달라고 했다. 상황을 따져 묻기엔 다급해 보여서, 무조건 "데리러 가겠다" 하고 서둘러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돌렸다. 


중학교 1학년 새 학기. 사춘기 예민함이 조금 시작되긴 했어도, 학교 다니는 걸 늘 좋아했던 아이다. 근데 무슨 일일까. 학교 앞에서 겁에 질린 아이를 태웠다. 도망치듯 나오느라 가방도 챙겨 오지 않은 아이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너무 무서웠다고, 학교에 다신 가지 않겠다고, 학교를 옮겨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울부짖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기를 어두운 데로 끌고 가서 "죽여버리겠다"라고 했다는 거다. 공포에 질린 아이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이 먼저 올려 보낸 뒤 차 안에서 담임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좀 알아봐 주십사 부탁드렸다. 그 사이 아이는 제 아빠와 할머니한테도 전화를 돌린 모양이다. 엄마 바꿔보라는 아빠 말에 전화기를 건네받은 나. 전화기 너머로 대뜸 남편이 묻는다. 


“집에서 뭐하냐?”

(...)


"집에서 뭐하냐"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그제야 이 말의 진의를 파악한다. 집에서 뭐했냐는 그 말은, 애가 선생님한테 욕 들어먹고 대낮에 회사로 전화해 바쁜 아빠가 전화받게 할 때까지, 엄마라는 게 집구석에서 놀면서 뭐 하고 있었냔 얘기다. 


"애 먼저 올라왔고, 난 차 안에서 선생님이랑 통화 하느라 이제 왔어. 담임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아봐 주십사 부탁드렸고. 이제 애랑 차분히 얘기 나눠보려고.”


내 목소리가 경직된 걸 눈치챘는지, 남편이 서둘러 통화를 끊는다. 


“어~ 알았어. 그럼 이따 다시 통화해.” 


조금 차분해진 아이를 통해 정리된 이야기의 전모는 이러했다. 과학 시간에 너무 졸려서 엎드려 있었던 아이를 선생님이 깨웠고, 마지못해 슬로모션처럼 몸을 일으키던 아이가 발림인지 추임새인지 모를 한마디를 뱉은 게 문제였다.  “어휴”와 “아이씨”가 뒤섞인 그 의성어가 선생님 귀에 "씨발"이라고 들렸고, 안 그래도 새 학기 아이들 군기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과학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아이를 따로 불렀던 거다. 훈계에 익숙지 않은 아이는 어두컴컴한 과학실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수치와 공포였고.. 그다음은 블라블라. 예의를 갖춘 서로의 사과가 오가고 몇 가지는 오해는 그대로 남은 채 상황 종료.


문제는 그 일 이후 내가 남편의 속마음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결혼 전 남편은 글 쓰는 내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남편 벌이에 기대 마냥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란 말이 아니다.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부부가 아직 대출 낀 내 집 하나 가지지 못했을 때의 글쓰기란, 돈으로 환산될 때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맞벌이를 접고 집에 들어앉은지 10년. 그게 내가 맞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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