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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11. 합법의 이면

- 제도 이전에 힘과 입장이 있었네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집안에 들어앉았다’라는 표현을 썼을 때, 불쾌해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단톡 너머로도 다 들렸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육아’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았고, 결혼 후에 자발적으로 직장을 갖지 않았다. 그녀가 읽은 많은 육아 서적들은 어린 시절 아이에게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누차 강조했기에, 그녀는 아이를 낳자마자 자신의 신념을 향해 온전히 달렸다. 매일 저녁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낮에는 도서관과 놀이터를 오가며 온몸을 다해 놀아주었으며,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재배한 한OO 재료를 가지고 정성껏 음식을 차렸다. 그녀에게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이란 온통 자부심으로 빛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집안에 들어앉았다'는 표현은 그녀를 깎아내리는 워딩이기도 했을 터.


여기까지만 보면 그녀는 우리 어머니 시대의 현모양처와 놀랍도록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달랐다. '적극적으로 육아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녀는 결정적으로 어머니 세대, 그리고 우리 세대와 결이 달랐다. 어쩔 수 없이,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집안에 들어앉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주체적으로 ‘육아’를 선택했고, 그 결정은 ‘자기애’의 발로였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고 육아는 희생과 동의어인 어머니 세대와는 달랐다. 그녀는 한 번씩 값비싼 옷을 사 입고 피부미용에 투자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는데, 그 모든 것이 '남편이 회사에서 투자하는 노동과 그녀가 집에서 육아와 가사에 들이는 노동은 동일하다'라는 그녀의 자부심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구닥다리인지. 나는 '자부'할 줄을 몰랐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팀장이 된 것도 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자리란 누군가 몇 달만 열심히 배우면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자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꿈도 없었고, 무엇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특별히 전공하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국문과에 지원했고, 어디 꼭 입사하겠다는 다부진 포부 없이 인연이 닿은 회사에 들어갔다. 그즈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직장과 양육 사이에 분투하듯 쫓기다 사표를 냈다. 그리고 10여 년 두 아이를 위해 살았다.


이제와 돌아보면,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어쩌면 이렇게 심사숙고하지 않았을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남자와 어떤 가정을 꾸미고 싶은지, 그걸 뒷받침해주는 현실은 어떤지. 왜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회사에 사표를 던질 때 직장보다 육아가 더 중요하다고, 아이에겐 엄마가 절대적이라고, 아무도 내게 충고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 순 없다며 때려친 것도 나고, 남편을 흔들어대며 싸우지 못한 것도 나고, 끊임없이 다음 달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목표치를 갱신하는 업무에 질린 것도 내가 아닌가. 누가 내 목에 칼을 대고 꼭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던가. 아니다. 이 남자 대신 저 남자를 선택하고 일 대신 육아를 선택하고 그 모든 일을 돌연 결정한 것 또한 나인데, 떠밀려 살았다며, 마치 내 선택이 아니었던 듯 구는 지금의 내 태도는 또 뭔가.


그런 고민들 사이에서 책을 읽다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10권의 해제로 풀어쓴 고병권의 <다시 자본을 읽자>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과 만났다.


"우리는 법 내지 법칙 이전에 힘이 있고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마르크스가 말한다. 노동가와 자본가 사이엔 합법적 계약이 있다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유로운 계약을 하고 돌아 선 노동자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고. 합법적 계약 이면에 '부자유, 불평등, 착취의 구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제도와 법 이전에 '힘'이 있고 '입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먹고사는 일이 절대적으로 해결되고, 여자도 남자만큼 무엇이나 될 수 있고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왜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을까. 나는 정말 불행한 선택만 한 걸까. 나도 모르게 어떤 힘이 나를 추동했던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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