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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1

#13. 중력보다 무거운

- 집안일이라는 관성  



신혼 때부터 음식은 내 담당이었다. 남편은 내가 뭘 만들어도 ‘맛있다, 별로다, 뭐가 먹고 싶다’, 반응이 없었다. 남편의 음식 취향은 시댁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싱싱한 재료 자체의 미감을 그대로 살려, 되도록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바로바로 해서 식탁에 올리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다. 생선이나 고기는 그대로 구워 먹고, 소금 이하 조미료는 최대한 배제한 상차림. 고기라면 간장에 잰 것을, 생선엔 무 넣고 고춧가루 넣어 지져 먹는 친정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다행히 음식 간을 못 맞출 정도의 곰손은 아니었던 지라, 신혼 때 남편의 묵묵부답에 대해선 늘 과묵한 사람이라 그런 거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맞벌이를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은 이후에도 그의 음식 취향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모든 사이클과 리듬이 아이들 입맛에 맞춰 돌아가던 때이니. 남편은 곰국과 계란 프라이에 소금을 치지 않는다는 것, 마침 아이들 음식을 만들다 보니 그 궁합이 맞아떨어져 덩달아 간을 덜하게 됐다는 것 정도? 정작 그의 음식 취향과 묵묵부답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된 건, 친정 엄마가 며칠 집에 다녀가셨던 그날 이후다.


그날도 딸년은 친정엄마도 계시겠다, 느긋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엌을 나와 보니 이미 친정 엄마는 밥을 안치고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계셨다. 이윽고 식탁 위로 이것저것 출처도 유통기간도 불분명한 반찬들이 올려진다. 죄다 사위 먹이기엔 못마땅한, 의심스러운 반찬들이. 사위가 식탁에 앉자마자 친정 엄마가 죄인처럼 한 말씀을 건네신다.


“아유,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어쩌나. 장모라고 와서는 뭐 하나 제대로 해놓지도 않고.”


친정 엄마는 계속 안절부절못한 채 식탁 주위를 서성이고, 나는 속으로 ‘누가 엄마 보고 우리 집 와서 사위 아침상 차리랬수’ 하며 남편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풋, 하고 웃으며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밥에 올려놓더니 그대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아침부터 이렇게 난리냐는, 딱 그런 표정을 하고는.  


그때 알았다.

'아, 남편은 음식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구나.'


그러게. 밥 한 끼, 이게 뭐라고! 아침부터 두 여자는 종종거리며 상을 차리고 안절부절을 못하고 눈치를 보며 이 소란을 피웠나. 한 끼 그냥 때우면 그만인 이 하찮은 것을. 아침에 생선을 굽고 전을 부쳤어도 남편에게는 똑같았을 거다. 그에게 음식은 그냥 삼시세끼 오늘도 치러야  할 의식과 같은 거다. 그래서 그동안 음식 앞에서 아무런 감흥도 촌평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 후로 음식 차림에 대한 내 태도도 확 바뀌었다. 내가 음식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던가. 요리하는 게 즐겁고, 상 차리는 게 보람찬 사람이던가? 아니다. 매 끼니마다 뭐 먹을지 고민하는 일에 질리고 질린 사람이다. 아이들도 이제 자랄 만큼 자랐고, 음식이라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생각해 보니, 다이어트하지 못해 난리인 시대에, 가족 모두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 일에 나 혼자 종종거릴 필요가 없었다. 전업맘 10년 차. 1년 365일. 하루 세끼면 그동안 1만 번이 넘는 식사를 차렸다. 외식도 하고 빵으로 때운 적도 있었을 테니 최소 하루 한 끼만 차렸다 해도 10년 간 3,650번의 식탁을 차렸다. 내가 똑같은 일을 3,650번이나 반복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제 좀 헐렁해져도 괜찮다. 한두 번 왕의 식탁을 차렸다면, 한 두 번쯤은 좀 가난한 이들의 식탁을 차린들 어떠랴.


아무리 다짐해도 사람의 습관은 무서운 거다. 주부생활 5년 차쯤 됐을 때, 음식이 입에 착 달라붙기만 한다면 마법의 가루 좀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요리할 때 손이 가지 않았다. 맞벌이하던 시절, 처음으로 새벽에 아기 이유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매끼 다양한 식재료로 집에서 한 것보다 깔끔하게 제공하는 그것 한 번을 이용해 보자 하고 해보지 못했다. 우리 엄마 시대에 여자들은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었다. 남편과 똑같이 맞벌이하면서도 우리 엄마들은 집을 나서기 전 아이들과 시부모님 밥상을 다 차려놓고 자기 도시락까지 싸서 출근을 했다. 제사에 잔칫상은 또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그래도 다른 집 여자들도 다 하고, 더한 것도 하는 여자들이 많았기에 불평할 수 없었다. 그러며 딸들에게 말한다. 니들 때문에 참았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지만 정말,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게 살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을 깨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어쩌면 깨닫고 불평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몸을 돌이켜 저항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남편에게 맞고 살던 여자들이 쉬이 남편을 떠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맞고 살던 남자들이 자기 아들을 때린다.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매 맞고 때리던 그 관성이 때론 중력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음식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 생각했다. 그리고 알았다. 가족 중 음식에 가치를 두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뿐이었다는 걸. 그렇게 한걸음 걸어 나와 보니 내 삶에 나 스스로 쳐놓은 족쇄들이 훨씬 더 많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행은 어쩌면 나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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