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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r 01. 2024

세 번은 애초에 없는 마음?

한 번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들에 대하여



밥 먹어~ 학교 가야지.

아침에 아들을 깨운다. 한번, 두 번... 보통은 알았어 혹은 잠깐만, 그도 아니면 흐흥, 하는 신음 소리가 나고 30초 안에 방에서 기어 나온다. 우리 집에서 세 번 만에 깨우는 일은 없다. 일어날 생각이 있다면 한두 번 만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우리 집의 불문율. 세 번은 애초에 없는 마음이다.


오늘 아들은 세 번 만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도 지각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데. 서둘러 데운 불고기를 접시에 덜고 된장찌개를 식탁으로 옮긴 후 잠시 앉아 생각한다. 한번 더 깨워볼까, 말까. 저혈압은 아침이 유독 힘들다고 하지 않나. 옆집 아들은 일어날 때까지 얼르고 달래고 협박과 애교를 번복하며 수도 없이 깨운다는데... 일어날 때까지 기어이 붙들고 늘어진다는데! 나는 모성이 부족한 엄마인가,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인가. 나는 일찌감치 아들을 독립시킨 엄마인가, 실랑이하는 게  힘들어 아들을 버린 엄마인가. 지겹도록 되뇌던 시간들이 있었다.


한 번이 아니면 없는 마음. 연애할 때도 그랬던 거 같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첫눈에 반해 사랑하듯 했다. 누군가 곁을 오래 맴돌며 질척거려 본 적이 없다. 오래 재고 기다리는 마음 같은 건 내게 부자연스러운 것. 마음이 떠날 때도 마찬가지. 한번 금이 간 마음은 더 이상 붙여지지 않았다. 노력해 보자는 말은 내게 없는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렸는데, 시도 때도 없이 좋던 그 사람이 이제 뒤통수만 쳐다봐도 지긋지긋해졌는데... 그 마음을 속이고 좋아하는 척할 순 없었다. 


고쳐 쓰는 마음 같은 게 나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아무런 여과 없이 쑤욱 들어가는 것처럼, 헤어질 때도 함께 한 시간 같은 거 없이 쑤욱 빠져나갔다. 들어갈 때나 나갈 때 모두 애쓰지 않는다. 이리저리 재고 안달복달 하는 걸 견딜 자신이 없어서? 기대했다가 혹 상심할까 봐? 그런 여리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감정과 가깝고 의지와는 먼 사람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땐 그걸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걸 미성숙했다고 생각한다는 차이뿐. 


그러다 보니 연애할 때 토라진 마음은 쌓이다 폭발하고 헤어지면 끝이 났는데, 결혼을 하자 이게 빈정 상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세 번까지 말했는데 못 알아 쳐 먹는 건 애초에 마음이 없어서인 거다, 하고 입을 닫았다. 내가 만약 여우 꽈였다면, 그런 남편을 붙들고 엄청 싸웠을 것 같다. 하지만 곰이었던 나는 여우처럼 남편을 얼르고 달래 내 의견을 관철시킬 줄을 몰랐다. 한번 어긋나면 돌아서 마음에 빗장을 질렀다. 나는 늘 내 자존감이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장 나종 남은 나의 자존심 같은 거였던 것 같다. 


독서모임에서는 누구보다 잘 떠들어대는 내가 식탁 앞에선 서둘러 입을 닫았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까? 나는 나에게 주목하고 경청해주지 않는 사람 앞에선 입이 열리지 않았다. 관심이 있건 없던 내 의견을 들어달라고 할 만큼 자존감이 높지 않고, 공감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나는 복창이라도 터쳐야겠다, 도 아닌. 그래서 남편 앞에서도 아들들 앞에서도 말수가 없었다. 정말 미묘한 자존감이다. 얼마나 붉은 주단이 앞에 깔려야 너는 입을 열었을까. 한두 번 안에는 되어야 하지만, 세 번이면 안 되는 이 꽁한 마음아.


한 번만 더 해보자. 

아들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오늘 아침. 마치 처음인 것처럼 아들을 한번 더 깨웠다. 아들이 벌떡 일어났다. 세 번 만에 안되어, 평소 같으면 그대로 포기할 뻔 했던 아들이 네 번만에 일어났다. 안경을 쓰고 화장실을 찍고 오더니 식탁에 와서 앉았다. 와, 이게 되네? 되는 거였어! 네 번 만에 되는 것들이 내 생애에도 있구나. 그건 없는 마음이 아니라, 한번 더 기다리면 되는 마음이었구나.


아들을 보내고 식탁에 앉아 생각해 보니 세 번 말고 네 번만 기다리면 혹 될 수도 있었던 사건들이 뭉개 뭉개 피어 올랐다. 후회는 그만. 오늘은 내 생애 처음으로 네 번째 만에 가능한 마음을 만난 날. 그것만으로 충분히 족하다. 

한 번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한 번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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