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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un 03. 2024

거대했던 그의 세계는 지금 재편 중

내가 가져보지 못했다는 이유 만으로 훨씬 더 커 보였던 이야기



젊은 시절. 딱 하나 후회하는 게 있다. 외국에 1년 정도 살며 그 나라 말을 익히는 것. 보캐블러리와 문법을 달달 외워서가 아닌, 그냥 그 나라 문화와 언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학에 다닐 당시 친정 오빠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참 좋았다. 내가 가겠다고만 하면 친절하고 배려 넘치는 오빠는 숙식부터 어학학원까지 일사천리로 알아봐 주고 제공해 주었을 거다. 그때 왜 안 갔을까. 그 좋은 기회를 왜 놓쳤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한창 연애하느라 바빴던 데다 그땐 인생이 너무 재밌어서 굳이 다른 삶에 대해 아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지금 제일 후회된다. 


남편은 고2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온 케이스. 일찍 간 케이스는 아니지만 워낙에 머리가 좋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인간이라 영어를 네이티브스피커처럼 잘한다. 그러니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한때 내가 간절히 원했으나 갖지 못한 이 남자의 배경에 매우 혹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데다 이 평소에 과묵하기 그지없는 남자는 만난 지 이틀 만에 내게 '남자가 자기 여자를 만났을 때에만 털어놓는다는 속엣얘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긴가민가 하던 감정을 딱 내려놓고 이 남자에게 정박하고 말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내가 가져보지 못했다는 이유 만으로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당시 남편은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학생들이 현지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 친구들 몇몇과 맥주를 마시러 간 펍에서 현지인들끼리 우발적인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순식간에 평온하던 펍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남편이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바로 옆에서 술을 마시던 친구가 총에 맞고 피를 흘린 채 자기 옆에 쓰러져 있었다. 20년 전만 해도, 게다가 청정구역 캐나다에서의 총격사건은 드문 일이었기에 현지인과 한국유학생 사회는 모두 충격에 빠졌다. 캐나다 현지 대한민국 영사관이 우왕좌왕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다행히 학교 당국은 캠퍼스 내에서 진심을 담아 유학생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그때 남편이 장례식장에서 한인 대표로 낭독한 추도문은 한인사회에서 두고두고 명문으로 회자되었다고 했다. 


보통 사람에게 라면 일생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 남편의 삶은 늘 복작복작한 한국에서 늘 남들과 별다를 것 없이 살았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삶과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단박에 남편의 세계에 매혹되었다. 남편은 이밖에도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모든 걸 갖고 있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고, 세상의 중심에 늘 자신이 있었다. 늘 최선을 다했고, 변명이 없었다. 


결혼할 당시 남편은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고 있었고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종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뭔지 모를 빛나는 아우라가 있었다. 지금은 미약하게 시작하더라도, 혹 대단한 성공을 거두진 않더라도, 특별히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평균치 이상의 삶 정도는 살게 될 거라는. 중년의 어느 시절 남편 덕분에 해외 주재원으로 따라나가 몇 년간 젊은 시절 놓친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 아들들은 나처럼 보캐블러리와 문법을 달달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남편처럼 고급스러운 발음으로 영어 정도는 자유롭게 하게 되는 아이들로 자라날지 모른다고. 그땐 몰랐지만 내 무의식은 그런 기대와 전망을 품고 그를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십 줄에 들어서자 후반전에 대한 청사진이 대략 그려진다. 남편의 직업군이 대기업, '사'자 붙은 전문직, 성공한 스타트업 임원 정도가 되면 수도권 근처에 10억대 아파트나 주택 하나쯤 소유하고 아이들 유학 정도 보내며 그럭저럭 만족한 수준의 삶을 살아간다. 꼭 전문직종이 아니어도 괜찮다. 택배박스나 인테리어 소품 하나만 찍어내도, 그게 자기 사업체라면 아이들에게 공부 닦달하지 않더라도 운동이나 악기 정도시키고 1년에 한두 차례 해외여행 정도는 다녀오며 살 수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의 경우라면 부동산, 주식, 조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될 경우 평타 이상의 삶이 유지된다. 아님 교육에 혈안이 된 열혈 아내가 남편의 박봉만으론 더 이상 견딜 수 없겠다 싶어 뒤늦게 학원이든 부동산업이든 뛰어들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 다시 평타 이상의 삶으로 편입 가능하다.


남편은 반도체 장비를 수주하는 작은 중소기업의 임원이다. 2년 전 남편은 임원이 되자마자 스톡옵션을 받았고 회사는 그해 바로 상장을 했다. 그리고 지금 대기업 몇 곳과 계속 실험을 반복하며 적합한 장비를 생산해 내기 위해 부지런히 협업 중이다. 늘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기 때문에 적당히 운만 따라준다면 몇 달 후,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남편의 회사는 대박이 나고 그간 기다려준 주주들에게도 보답하고 스톡옵션을 팔아 우리도 중산층 이상의 삶으로 편입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배운 게 하나 더 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시작한 유망한 스타트업체라도 몇 년 안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가지고 있던 우리 사주 모두가 한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시대를 앞선 사업 아이템이더라도 제때 자본이나 인프라가 투입되지 못해서, 경영자의 자질 부족으로, 아님 다된 밥에 대기업이 재를 뿌려서 등등의 수백 가지 이유로 순식간에 시류에서 나락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이 다니던 이전 회사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우리에게 지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으나 우리가 마냥 장밋빛 전망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 집의 경우 나처럼 한쪽 짝꿍이 인생의 후반전에 책이나 읽고 인생의 의미나 논하며 살겠다고 작정한 이상 다른 변수도 없다. 지금과 다른 인생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삼십 대처럼 미래를 무한히 가능한 어떤 전망으로 바라보고 기다리기엔 너무 늙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 나이쯤 되면 행복한 삶의 기준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옆집엄마와 옆집아빠의 경제적 규모, 소비의 씀씀이, 자식들에 대한 투자에 맞춰 그에 못 미치는 내 삶을 비교하며 불행 지옥에서 빠질 것이 분명하다. 설혹 내일 당장 행운의 여신이 활짝 우리에게 웃어주더라도, 그런 확률에 기대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확률을 대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란 말이다. 


한때 남편의 거대했던 세계는 지금 재편 중이다. 아내인 나는 지금 눈높이를 낮추는 중이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니체가 말한 '비극 끌어안기'와 비슷한데,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적 측면에서, 그리고 세계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젊은 시절 너와 함께 시작하며 기대했던 핑크빛 전망들을 이제 내려놓는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은 좀 비극적인 측면이 있지만, 헛된 기대감으로 끊임없이 너와 나에게 생채기 내는 것보다는 낫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동안 곁눈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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