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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Jun 07. 2024

능력 있는 자식에게 더 투자하는 부모의 심리

자본주의 시장 원리와 너무 비슷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 말은 인생은 원래부터 불공정하다는 거야. 공정을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이상적'이라는 거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부모나 가문을 고르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가 아무리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하더라도 모든 자식에게 똑같을 수는 없다고."


친구가 이거 또 뭔 개똥 같은 소리를 하려냐는 듯 눈을 똥그랗게 떴다.


"부모가 만약에 공정하다는 개념이 있다면 말이야. 딸이 조건 좋은 남자에게 시집갈 때 도와줘야 하겠어? 조건이 좋지 않은 남자에게 시집갈 때 도와주어야 하겠어? 어렵게 시작하는 딸의 시작을 더 도와야 하는 거 아니야? 어차피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는 딸은 더 잘 살 확률이 높잖아. 공정에 대한 개념이 먼저라면 둘이 비슷하게 출발할 수 있게 격차를 좁혀주는 게 맞는 거지. 그게 아니면 모든 자식에게 똑같이라도 하던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더 잘 사는 자식에게 더 투자하게 되는 생리가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사회든 가정이든 공평한 운동장은 허울이라는 거야. 가부장 시대 땐 장남한테 다 몰아주기 하는 것처럼, 우린 이미 가정 안에서부터 그다지 공평하지 않다는 걸 배우고 자라. 그걸 알면서도 지금 세상을 봐봐. 이렇게나 공평과 공정에 대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게 나는 더 이상할 지경이야."


공정이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가지로 증명되어 왔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그 유명한 '오이와 포도' 실험도 있지 않나. 처음에 원숭이들이 돌멩이를 가져오면 오이로만 바꿔주다가 어느 날부터 일부 원숭이에겐 오이를, 일부 원숭이에겐 포도로 바꿔 주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들이 오이를 집어던지며 분노했다는 그 실험 말이다. 똑같이 오이를 나눠 먹을 때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지만,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는 더 좋은 포도를 배급받을 때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이 공정이라는 개념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한 번도 공평과 정의라는 것을 실현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신기하다. 인간은 늘 공평과 정의가 강 같이 흐르는 시대를 꿈꿔왔지만 불과 150년 전에야 신분과 계급이 사라졌고, 흑인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으며, 여자들은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여자들은 이제야 겨우 자기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시대를 막 맛보는 중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부모로부터도 다른 자질과 능력을 부여 받고 태어난다. 그러니, 경험해 본 적 없이 이 개념을 이토록 갈망하는 이 시대가 더 신기할 밖에.  


"공정에 대해 이렇게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가정에서조차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난 놀랍더라고. '남자는 남자라서'는 가부장제여서 그렇다 쳐. 근데 더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할 때는 더 해줘야 하는 심리는 뭐야? 이거 자본주의 정신이랑 너무 비슷하지 않아?"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투자해 더 많은 잉여 자본을 얻게 되는 원리. 1천 원짜리 주식을 10주 산 사람이 2배가 올라 1만 원을 버는 동안 1000주 산 사람은 1천만 원을 버는 원리와 비슷한 것. 가족 안에서도 부지불식 간에 이런 식의 자본주의 정신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다? 그러자 앞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셨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우리한테 지원 잘 안 해주셨거든. 돈 주면 자식 망친다고. 그것도 비슷한 심리이신 건가."


주변에 강남 출신 친구들이 많다 보니 요즘 심심찮게 듣는 이야기들이다. 시집갈 때 딸이다 보니 오빠나 남동생만큼 지원받지 못했던 친구들은 그렇다고 결혼해 사는 동안 쪼들려도 차마 친정아버지한테 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 번씩 집주인이 전세를 올려달라고 할 때에도 어떻게든 융통을 하며 근근이 메꿔갔는데.... 코로나 직전, 그 해에 너무 힘들어 친정아버지께 은연중 마음을 비춰본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느냐는 표정으로 못 들은 척하시는 걸 보고 그 이후로 다시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남편이 대기업 임원이었거나 잘 나가는 사업가였더라면, 아버지가 융통해 주셨을 거 같더라고. 하지만 투자해 봐야 잘 될 가능성도, 원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아버지가 투자하지 않으셨겠구나..." 


잘 될 것 같은 자식에게 더 투자하는 심리. 양육강식의 정글인 사회는 그럴 수 있다 쳐. 그래도 가정은 사회와 달라야 하지 않나? 사랑과 희생으로 작동해야 할 것 같은 가정 내 '부모와 자식 간'에도 사회처럼 투자와 계산으로 작동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너무 당연한 걸 나만 불편하게 느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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