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1년 전쯤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며,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내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다행히 문상객들을 통해 듣게 된 아버지의 마지막 사생활은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과묵하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는 아침마다 아들뻘 되는 세입자를 찾아가 봉지 커피 한잔을 얻어마시며 오른 물가와 이자를 함께 걱정해 주시는 좋은 어른이었고, 동네 슈퍼마켓 손녀와도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다정한 할아버지셨다.
우리 세대 부모님들과 달리 아내에게도 다정한 남편이셨다. 시를 좋아하셔서 신문에 실린 시를 잘라 딸이 오면 늘 읽어주시던. 자식들에게 한 번도 경제적으로 근심을 안겨준 적 없던 아버지. 부동산을 안정적으로 불리며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했고, 우리 때 여느 노인들처럼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에 그 흔한 유럽여행 한번 다녀와 본 적 없던 검소한 아버지.
그랬기에 친구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도 아낌없이 투자하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부자는 3대 못 간다. 자식에게 돈 퍼주는 일은 자식 망치는 일이다.' 우리 시대 불문율을 교훈 삼아, 꼭 필요할 때만 절도 있게 주셨다.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잘 알았기에 딸 또한 경기도에 집 한 채 없이 살면서, 아이들 교육비와 매년 상승하는 전세금 때문에 불안이 들끓어도, 차마 친정아버지께 손 벌리지 못했다.
그렇다. 친구의 아버지는 강남에 빌딩 몇 개를 가질 만큼의 부자는 아니셨다. 강북에 본인이 살고 계셨던 아파트 하나와 5층짜리 상가건물 한 채, 그리고 작은 오피스텔 몇 채. 대한민국에서 평생 딴짓(노름, 계집질, 사업, 친인척 부양) 안 하고, 큰 욕심 안 내고(땅 투기, 주식 투자), 풍파(IMF, 이른 실직, 투병)에 크게 휘청하지만 않았다면 노년에 이 정도쯤은 가져도 될 법한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계셨다. 우리 부모 세대가 유래 없는 경제 호황기를 누렸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40년간 강남 아파트 한채 가격이 100배쯤 올랐으니 말 다했지)
장례를 치른 후, 가족들이 모였다. 경황없던 죽음이라 슬픔이 채 가시기 전이었지만, 서류 정리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름 건물주이셨기 때문에 친구도 아버지 수중에 적지 않은 현금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 통장을 열었을 때, 그곳엔 친구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가 찍혀 있었다.
"그게 우리 돈은 아니잖아. 세입자들 나갈 때 다 돌려줘야 할 돈이니까. 논리적으로도 그 정도 돈이 들어 있어야 맞는 건데도..."
우리에게 현금이란 늘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통장에 월급이 꽂히자마자 카드값으로 나가는 생활을 20년간 하다 보니, 그 천문학적인 금액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또 다른 의미로 코끝이 찡해지고야 말았는데... 그즈음 뉴스에는 전세사기로 인해 자살하는 젊은 세입자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세입자 보다 더 적은 돈을 가진 인간들이 집주인이랍시고 남의 돈을 가지고 건물주가 되는 세상. 남의 돈을 수십 수백만 원도 아니고 수천 수억 원을 받아 그 돈으로 건물을 사고 또 사서 수십 채를 소유해도 불법이 아닌 세상. 나중에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 남의 돈을 마치 자기 돈처럼 펑펑 쓰며 외제차를 사고 명품백을 사고 아이 유학을 보내는 부자들이 합법인 세상. 빌린 돈을 돌려 막기만 잘하고 살아도 부자처럼 떵떵 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 세상.
그러다 보니 나는 친구 아버지가 세입자들에게 받은 돈을 또 다른 곳에 무리하게 재투자하지 않고, 세입자들이 언제라도 돌려달라 할 때 돌려줄 수 있도록 막대한 현금으로 남겨 놓았다는 사실 자체로 감동을 하고야 말았다. 이 돈을 또 다른 곳에 투자하면 또 다른 잉여를 낳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친구의 아버지가 더 이상의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 전력을 다해 투기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고, 이 정도로 자족하셨다는 사실에.
문제는 이웃에게도 가족에게도 상식적이셨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남긴 유산이다. 아들 학원비 몇백을 벌러 매일 출근하던 친구는 하루아침에 억대 상속녀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어머니, 동생 둘과 함께 N분 하자, 천문학적인 금액의 상속세가 배당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금을 빼도 낼 수 없는 금액의.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어서 건물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고, 친구는 당장 억대 상속세를 마련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렸다.
"물론 상속세는 몇 년 동안 몇 천씩 상환할 수 있게 되어 있거든. 그렇더라도 내가 1년에 몇 천씩을 어떻게 마련하겠어.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이 많은 재산 맘껏 써보고나 돌아가시지. 뼈 빠지게 모아서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애국하다 가신 거잖아."
친구는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친구에게 부과된 상속세를 생각하니 내가 더 아쉬운 마음이 불끈 올라왔다. 살아생전 재산을 조금씩 분배하셨다면 친구는 경기도 일대에 작은 아파트라도 자신의 소유로 삼고 살았을 텐데. 그럼 매번 재계약을 할 때마다 몇천 씩 오르던 전세금을 마련하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불안에 떨지도 않았을 텐데.
막상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친구는 처음으로 강남 출신 친구들의 사생활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들은 강북에 터를 잡은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강남에 건물을 여러 채 갖고 있고, 손주들의 학원비와 유학비를 대주시는 강남 부자다. 그러니 그들은 아마도 수십억의 상속세를 내야 할 것이란 데에 생각이 미쳤던 거다.
"그래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역시 부자들은 마인드 자체가 다르더라. 명절이나 기념일에 친정에 가잖아. 우리는 아버지가 애들 용돈으로 몇십 만원씩 주시거나 나중에 대학 등록금 하라고 통장을 하나 만들어주신 정도였거든? 근데 친구들은 갈 때마다 부모님이 몇백에서 몇천 씩 주신다는 거야. 현금으로. 은행으로 이체하면 흔적이 남으니까. 만날 때마다 직접 건네 주시는 거야. 그렇게 받은 현금이 집에 쌓이면 불안하잖아? 그럼 금괴로 바꿔. 그리고 바꾼 금괴를 보관하기 위해서 다시 금고를 사는 식이지."
그러다 나라가 뒤집어지면 금괴를 싸들고 어딘가로 나르겠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다. 그런 이웃이 주변에 없어서 진짜 그럴까,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던 그런 장면들이 강남에 살고 있는 이들에겐 일상이었구나. 그렇게 제대로 된(?) 부자들은 몇 년에 걸쳐 재산을 분식한다. 나중에 법에 저촉되지 않고 나라에 세금을 왕창 뜯기지 않으려고. 진짜 부자들은 그렇게 산다. 법? 공정? 그런 거 다 지켜가며 살면? 애국자는 될지 몰라도 부자는 될 수 없다.
이게 가족을 위해서라면 온갖 자원을 끌어들이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한 톨까지 움켜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웃에게도 가족에게도 공정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친구 아버지가 친구에게 물려준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