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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7. 2024

아들의 가보지 않은 길

알 수 없기에 늘 가능성으로 충만한



나는 아들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와 남편처럼 당연히 대학에 갈 줄 알았다. 상위 1%의 대단한 대학은 아니더라도, 보통의 대학을 나와 회사에 취직해 우리처럼 살 줄 알았다.


하지만 1년 전. 아들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살아온 어떤 방식이나 논리에 설득되지 않았다. 6년간의 긴 공교육 기간 동안 어느 한 과목에도 동기부여받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게임과 핸드폰에 빠져 너무 오랫동안 공부를 놓았다. 뒤늦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어렸을 때부터 한 번의 일탈도 없이 달려온 이들과의 경쟁에서 아무 승산이 없어 보였다. 


대신 아들은 알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단박에 매혹되었다. 일한 시간만큼 다음 달 바로 통장에 돈이 꽂히는 이 방식에. 아들은 알바를 하며 평생 처음 자신의 쓰임을 발견했다.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내가 자구책으로 마련한 방편은 국비지원 풀스택 인공지능 과정이었다. 아들이 공부에 아무 취미가 없다고, 그래서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공부 밖에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아들에게 공부 밖에 권하지 못했다. 공부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갓 열아홉이 된 아들은 지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주방에 들어가 요리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홀 서빙으로 들어가, 주방 보조를 하다가, 요리를 전담하면서. 아직도 얼떨떨 하다. 그 두 달 동안의 시간 동안 아들이 선택하고, 달려오고, 성취한 것들이. 그야말로 드라마가 따로 없다. 공부도, 공부가 아닌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던 아들이, 방안에 처박혀 부모의 집에 눌러앉아 히키코모리가 될 까봐 걱정했던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해 사장을 찾아가 쇼부를 볼 줄 알았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이제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만도 하건만. 어젯밤 12시.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 이게 말이 돼? 오늘 사장님이 아예 가게에 안 나오셨어. 나보고 혼자 다 해보래. 손님 제일 많이 오는 토요일에. 나 완전 멘붕이야. 탕은 어제 처음 배우고 아직 안 배운 메뉴도 있는데... 새로 온 알바 애들도 가르쳐야 되는데... 엄마? 듣고 있어? 어? 엄마는 이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 웍을 연신 문질러 닦는 물소리 너머로 아들의 하소연이 다시 시작됐다. 하하. 녀석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는데도 끝이 없지? 모든 메뉴 레시피를 마스터하면, 너는 다시 알바생 중 하나가 며칠 만에 그만뒀다고 징징 거릴 거야. 주방과 알바까지 능숙하게 주무를 줄  알게 되면 너는 다시 이렇게 말할 걸? 엄마~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매일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야. 지루해 죽겠어...라고.  


그런 너를 보며 우리도 또 전전긍긍하는 밤을 보내게 될 테지. 네가 중도에 그만둘까 봐, 흥미를 잃을까 봐, 뜻하지 않은 실패로 다시 낙심하게 될까 봐.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게. 이제 네가 네 인생의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가든, 엄마는 예전처럼 불안해하지 않을 거야. 왜냐고? 지난 1년 동안 널 주욱 지켜봤거든. 네가 시작한 모험을 뒤좇아 가며 조금은 알게 되었거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너 너머,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너를 발견했거든. 내 불안과 염려 너머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고 있는 너를 만났거든. 네 덕에 엄마도 조금은 성숙해졌거든. 


너는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될 거야. 이번처럼 생각지도 못한 불을 내고 엄청 겁에 질리기도 할 테고고, 사장님께 예기치 못한 미션을 부여받고 당황하기도 할 거야. 하지만 너는 동시에 안심하게 될 거야. 한번 불을 냈던 너는 앞으로 다시 불을 내진 않을 거거든. 그 일을 통과하며 너는 불에 대해 엄청 주의해야 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거든. 


그러니 너도 기억해 주렴. 네가 때로 벼랑 끝에 서 있을 때라도 늘 우리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라도, 지금처럼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할 거고. 그럼 우린 그때도 꽤 괜찮은 곳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지금 이곳처럼 말이야. 


그것이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갖게 된 믿음이라고, 나는 이제는 조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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