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아들은 돌아온다!
내가 생각하는 꼭 그런 방식은 아니더라도
내가 아들 사춘기를 호되게 치른 걸 지켜본 엄마들이 요즘 하는 말.
"아들 때문에 죽을 거 같아요. 언니, 아들은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리고 돌아와요?"
나의 대답은 이렇다.
"아들? 돌아오긴 하지.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꼭 그런 방식은 아니라는 거~."
예전엔 군대 갔다 오면 철든다던 아들들. 요즘은 군대도 예전 같지 않아서 돌아와도 6개월 안에 말짱 도루묵이라는 게, 선배맘들의 중론이다. 그럼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구요오~~? 내가 따져 묻자 선배맘들은 그 시기를 대략 스물여섯으로 꼽았다. 스물여섯이오? 내가 근거가 뭐냐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묻자 그들이 말했다. "그냥 그즈음 되니까 확실히 애들 눈빛이 좀 달라지더라고. 자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고. 암 생각 없는 것 같더니 먹고살 궁리도 하고 말이지." 26. 어느 날 일제히 존경하는 선배맘들이 내게 들려준 숫자다. 신기하게도 제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내게 들려준 숫자가 모두 26이라는 같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에 대해서라면 나름 열의와 성의를 다해 키운 존경하는 선배맘들이니 믿어도 좋다. 아들은 스물여섯 살 안엔 돌아온다. 야호! 그러니 지금 아들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에미들이 계시다면 내 아들의 남은 연수를 손가락으로 세어 보며, 그때까지 다시 정진과 수련을 다짐할 찌어다!
사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정신 차린다'라는 개념부터 제각각 다시 정의해야 하겠지만. 다음은 순전히 내 나름의 기준으로 꼽은 '정신 차린 아들 에피소드' 몇 가지다. 근거는 역시 내 맘대로. 대략 '독서모임 엄마들의 호응' 정도가 될 터인데. 여하튼, 아들 때문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에미들에게 잠시나마 단비를 촉촉이 내려 주었던 에피소드였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효력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본다.
#1. 아들은 언제 스스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밥을 먹는가
아들이 국비지원 훈련을 받기 위해 잠시 기숙사에 머물 때. 저녁을 먹으러 기숙사 앞 감자탕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8시 가까운 시간. 식당엔 아무도 없었고, 마침 마감을 할까 하던 식당 아줌마가 아들의 주문을 받아주었다. 해장국 하나를 시켜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들은 해장국이 나오고 나서도 역시나 습관처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들의 수저가 밥과 국을 느릿느릿 오가며 공기와 그릇을 조금씩 비워 가고 있는 사이. 켜놓은 TV에서는 저녁 뉴스가 거의 끝나가고... 순간 젓가락을 바꿔 쥐며 무심코 고개를 든 아들은 30분 전부터 언제 식사를 마칠지 오매불망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줌마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엄마, 그때 내가 너무 미안한 거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재빨리 밥을 비우고, 아줌마한테 말씀드렸지. 마감하고 들어가셔야 하는데, 늦게 먹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하고."
* 식탁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으라는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는 아들이 있으시다면, 마감이 임박한 감자탕 집에 아들을 꽂아 놓고 혼자 저녁을 먹어보게 할 것.
#2.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아들도 '우리의 대화'에 대해 숙고해 본다는 사실!
"엄마, 내가 오늘 알았잖아. 평상시 내가 엄마랑 대화하면 왜 대화가 하기 싫은지. 오늘 딱 식당에 엄마랑 내 또래 아들이 밥을 먹으러 온 거야. 둘이 얘기를 하는데, 와, 내가 그때 우리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알았잖아. 아들은 계속 엄마한테 가볍게 농담조로 얘길 하는데, 그 엄마는 계속 아들 말에 꼬리를 잡고 진지하게 대구를 하는 거야. 지켜보는 내가 다 답답해서 속이 뒤집히더라고."
* 듣는 나도 그 장면이 훤히 그려진다. 아마 내 또래 엄마는 그때 아들에게 이런 농담을 던지고 있었겠지. "아들아, 글쎄 요즘 애들은 10억 주면 10년 동안 교도소에도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댄다. 세상이 진짜 미쳐돌아가고 있는 거 같지 않냐?" 하지만 당연히 어이 없는 표정으로 실소나 날릴 줄 알았던 네 또래 아들은 정색을 하며 내 또래 에미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껄? "10억? 10억 주면 나도 당연히 들어가지! " 내 아들은 당연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에미가 순간 놀라 아들의 진의를 따져 묻는 사이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어를 뒤집었을 거고. 그때부터 에미는 아들의 정신을 개조시킬 적당한 언어를 고르느라 정색을 하고 있었을 거다. 왜냐고? 니들 하는 꼴 봐선 농담이 아닐 거 같거든!
#3. 해병대에 지원해서 정신개조받고 싶어!
얼마 전 신검을 받으러 가던 차 안에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신검 1등급 받고 싶은데, 안 나오면 어쩌지? 나 수영은 쫌 하니까 해병대 같은 데 지원하고 싶거든."
"아니, 굳이 그 험하다는 해병대엘 왜?"
"그냥, 이왕에 군대 가는 거, 가서 정신개조받고 싶어서."
1년 전만 해도 비폭력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물레 앞에 앉은 간디 마냥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삐쩍 마른 몸매를 가진 아들이었다. 하지만 7개월 남짓 국비지원 AI 과정을 배우러 다니는 동안 아들의 진심은 수업을 마치고 들렀다 오는 동네 피트니스에 있었고. AI 과정을 수료할 때쯤에는 밋밋했던 상반신에 그럴듯한 근육이 붙어 제법 근사한 남자티가 났다.
* 아쉽게도 그날 신검에서 아들은 몸무게 미달로 2급이 나왔다. 아들은 울상을 지으며 다음번에 점심을 제대로 먹고 와서 재검을 받겠다고 말했다. 부유한 집 애들이 일부러 우울이나 공황 진단을 유도하여 군대를 피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 이후 ADHD 나 우울 진단을 받는 아들들 이야기는 점점 더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동네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면 최소 3개월 대기를 타야 한다는 것도 이젠 상식. 심지어 약물이 일상화된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는 ADHD나 우울, 공황을 마치 자신의 정체성처럼 SNS 프로필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1년 전 아들이 다시 한번 의지를 내보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지금쯤 ADHD를 정체성 삼아 약물과 상담에 의존해 살고 있었을까. 그 결정은 아들의 어떤 기질을 강화하고 약화시켰을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상상하며, 그저 우리가 선택한 길에 대해 점검할 뿐이다.
이제 고작 열 아홉. 남은 일곱 해 동안, 한 해에 이런 에피소드 딱 3개씩만 더 만들어 보자.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