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2)
해도 되는데 못하는 내가 너무 짜증 나!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교회에 다녀오던 길. 나를 기다리는 동안 당근으로 뭔가 열심히 검색하던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사려고 했던 중고 아이폰이 방금 떴거든. 집에 가기 전에 거기 좀 들렀다 가자."
"알았어. 주소 불러줘~."
달리는 차 안에서 아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엄마, 이거 정가가 170만 원인가 하는데, 120만 원에 떴거든."
"와, 중곤데도 장난 아니네. 출시된 지 얼마나 지났는데?"
"몰라. 좀 됐어. 좀 비싸긴 하지?"
"엄마야 뭐, 핸드폰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 하니까. 그리고 매달 몇만 원씩 할부로 사니까, 당연히 비싸 보이지."
"그래. 그래서 나도 좀 고민이야. 5만 원이라도 내고해 주면 살까 했는데, 내고를 절대 안 해준다네. "
"......"
"사지 말까? 지금 꼭 바꿔야 하는 건 아닌데. 아까 봤지? 통화할 때 스피커가 좀 작동이 안 돼. 등판만 안깨졌어도 그냥 썼을텐데."
"너한텐 핸드폰 중요하니까. 너 전부터 바꾸고 싶어 했잖아. 네가 모은 돈으로 사는데, 뭐. 근데 그 가격에 중고로 살 거면 차라리 새 거로 사는 게 낫지 않나."
"그니깐.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알바 하는데. 핸드폰 바꾸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거잖아. 엄마한테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으로 사겠다는데, 근데 내가 이 정도도 못 사? "
"누가 뭐래? 엄마야 그냥 네가 물어보니까 엄마 의견 그냥 얘기한 거뿐이야. 물론 네가 그 돈으로 여행을 가겠다거나 했으면 엄마도 바로 찬성했겠지. 근데 핸드폰이니까. 너도 갈등돼서 나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물론 최종 결정은 네가 내리는 거지만."
묵묵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아들이 뒷좌석에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놔~~ 나 진짜 죽고 싶어. 엄마, 내가 정말 싫은 게 뭔지 알아? 이런 거야. 내가 하루 여덟 시간씩 뼈 빠지게 고생해서 돈을 벌어도, 내 맘대로 쓰지 못한다는 거야. 내가 왜 그래야 돼? 내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왜 핸드폰 하나를 못 바꾸냐고~~~."
당황한 내가 수습했다.
"아니, 누가 사지 말라 그랬어? 휴대폰 바꾸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며?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도 되는데, 나도 알겠는데, 내가 맘대로 못하겠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검열하게 되어 버린다고. 어떤 새끼들은 엄빠 카드로 더한 것도 마구 긁어대는데, 이거 봐. 나는 해도 되는데 못하잖아. 아, 진짜 짜증 나."
"......."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던 작년 이맘때. 나는 아들이 방안에 처박혀 평생 게임이나 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저러다 히키코모리처럼 우리에게 얹혀 살까봐. 아들은 고3이 될 때까지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는데, 공부도 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해서 아무 걱정도,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학생이니 당연히 공부해야지, 같은 어른들이 말하는 의무나 당위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영혼은 또 얼마나 자유로운지 녀석이 자기 생각에 꽂혀 질주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겠다며 선언한 아들은 곧 알바를 구했고, 돈을 벌며 비로소 자신의 쓰임을 발견했다. 히키코모리인 줄 알았던 아들은 알고보니 사람들과 어울릴 때 오히려 에너지를 받는 사교적인 스타일이었다.
오늘 교회에 다녀오며 나는 하나 더, 아들에 대한 편견을 수정한다.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지 않았다. 자기가 번 돈으로 핸드폰을 사면서도, 스스로 주저할 줄 알았다. 엄마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것이 적당하고 합리적인 행동인지 생각했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되고 싶어 했다. 그 모든 상황을 "짜증 난다"는 한 단어로 표현했지만, 자기 멋대로 했다면 아마 짜증이 나지도 않았을 터.
아들은 알까. 짜증 나 죽고 싶다고 말하는 너를 보며 지금 내가 얼마나 안심하고 있는지.
P.S. 어쩌면, 자기가 번 돈이라 더 신중했을까... 지금은 그것조차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