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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24. 2024

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1)

진지충 엄마가 소피스트 아들과 대화하는 법


'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요즘 이 검색어를 타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길래...

 



처음 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사춘기가 극에 달하던 중3 때였다. 그때 아들은 학교를 다녀오는 것만 빼곤 이미 집안 모임과 부모가 바라는 것들은 다 무시한 채 방에 틀어 박혀 게임을 하거나 가끔 친구들이 부르면 나가는 생활이 전부였다. 그러다가도 일요일이 되고 습관처럼 잠깐 제정신이 돌아오면 한 번씩 교회에 가겠다고, 우리에게 언질을 주곤 했다. 부모로서야 당연히 정신 나갔던 아들이 돌아와 교회에 가겠다니 그 한마디를 붙들고 또 다른 희망을 꿈꾸기 마련. 문제는 그것에 사로잡힌 나머지 아들이 스스로 내뱉은 결심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깜빡하게 된다는 것이다. 탕자 아들의 귀환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교회에서 맡은 것이 많았던 우리의 시간엄수도 그것만큼 중요했다. 그날 아침만 해도 아들이 차라리 가지 않겠다거나, 나중에 혼자 오겠다고 하면 우리도 더 이상 닦달하지 않고 우리끼리 교회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막상 가겠다고 하고는 그새 귀차니즘이 발동했는지 화장실에 들어가 30분 넘게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고, 안 그래도 시간 강박이 있는 남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이도 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아들을 보다 못한 남편이 입에 치약 거품을 물고 있던 아들을 밖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그때 아들이 돌아서서 교회로 향하는 우리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이 길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겠다"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들이 두 번째로 죽음을 언급했던 건, 고2 때. 아침을 먹으면서 어느 유튜버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엄마, 이 유튜버 알아? (당연히 나는 알리 없었다) 이 유튜버, 자살하려고 실제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가 '반병신' 된 유튜버야. 아들은 어쩌다 얼마 전 알고리즘을 따라 이 친구의 채널에 입문했고, 나름 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다. 나도 죽고 싶었는데 얘 보니까 저렇게 될까 봐 못 죽겠더라고. 엄마 배고파 뭐 먹을 거 없어?,와 별반 다르지 않은 톤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아들에게 나는 그때 뭐라고 말했더라. 그 유튜버에게 너무 고마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 고 했던가.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살 시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다,라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엄중한 경구를 떠올렸던가. 처음만큼 마음이 진창은 아니었던 게, 그때쯤에는 그 말이 조금 익숙해져서 아, 아들이 또 뭐 힘든 일이 있구나, 나처럼 불쑥 사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구나,라는 말이란 걸 알아듣게 되었거든. 내가 혹시 또 아들에게 은연중에 그런 뉘앙스를 전염시킨 건 아닌가 자책하며.


아들이 세 번째로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그래서, 나도 이렇게 좀 괜찮은 말(?)을 해주기도 했다.

"아들아, 엄마도 갱년기 지나면서 죽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 사는 게 이게 단가, 싶고 뭐 이리 재미가 없나, 싶어서. 그래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죽고 싶다는 그 말이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더라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더라고. 적어도 엄마는 그랬어. 지금처럼 말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의미더라."

뜻밖에 아들이, 내 말에 호응을 보냈다. 이때다 싶어서 나의 호들갑이 시작다. 우리 같은 스타일은 겁이 많아서 죽고 싶어도 못 죽어. 용기가 없어서 어차피 못 죽어. 그러니까 그 노력을 이왕이면 잘 살아보는 쪽으로 쏟는 게 낫지 않겠냐, 블라블라. 쓰고 보니 뭐 썩 괜찮은 말도 아니네. 나이 오십이나 먹은 에미가 돼서 고작 해줄 수 있는 말이 이 정도뿐이라니. 그래도 진심의 힘을 믿어볼 밖에.


아들이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나도 좀 더 어른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아들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지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그리고 아들이 죽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말해주고 싶었다. 오래도록 물었고, 지금도 여전히 묻고 있지만 나 또한 내 안에 아직 그럴듯한 답을 정리하지 못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기후 위기다, 전쟁이다, 공황이다, 세기말적 기운이 가득한데. 다른 부모들처럼 금수저도 아니면서 나는 어쩌자고 이 불확한 시대에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낳았다. 어쩌자고, 나는 이 정글 같은 무한 경쟁의 사회에 아들을  내놓았다. 가진 게 없으면 알뜰살뜰 야무지게 있는 자원이라도 잘 활용해서 훌륭하게 키워보던가. 경쟁적 교육의 횡포에 맞서 나설 만큼 잔다르크 기질도 없는 내가, 나만의 교육 철학도 부재한 내가. 권위도 자율도 아니고 경쟁력도 중심을 갖춘 것도 아닌 어정쩡한 아이 둘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내 인생만으로도 우울하고 버거우니 너도 네 갈길 혼자 잘 찾아보라며 사회로 등 떠밀고 있다.


시간이 답이라더니. 그래도 사춘기와 갱년기의 시간을 겪으며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마음에 새기기 위해 정리한다.


어떤 경우에도 유머를 잃지 말 것. 예전 같으면 이런 자기 계발류 같은 메시지에 바로 식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생은 지지리궁상일 때가 너무 많아서 유머를 마지막 보루로 삼지 않으면 너무 우울해 살기 어렵다. 자식 얘기만 해도 그렇다. 기대는 꺾이고 후회는 막급이라 말해봐야 옛날이 좋았다는, 그러니 점점 더 할 얘기가 없어진다. 게다가 요즘 애들, 정색하는 걸 얼마나 싫어하나. 뼛속까지 진지충인 나 같은 엄마와 극단적 소피스트인 아들이 만나 몇마디라도 이어 가려면 무거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얼마 전 녀석이 대놓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는 것 같아서 슬쩍 건강 운운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들 왈, 자기는 빨리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란다. 잔소리 듣기 싫단 말을 참 이쁘게도 한다. 내가 쉬이 물러 설 것 같지 않아 보였는지 지가 먼저 2절까지 시연했다. 안락사 기계가 나오면 자기가 가장 먼저 살 거라고. 이렇게 사춘기 궤변론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이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재빨리 피하는 게 상책, 하지만... 늘 그렇듯 아뿔싸, 이번에도 입이 먼저 반응했다)


야, 안락사 기계가 얼마나 비싼 줄 아냐?

- 그래서 내가 알바 열심히 하는 거야.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죽긴 왜 죽어? 어떻게 하면 안 죽고 싶을 거 같은데?

- 그냥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며 살고 싶어. 돈만 펑펑 쓰면서.

그러다가 녀석기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앞으로 다왔다. 얘가 왜 이러지? 하는 순간. 녀석이 웃통을 훌훌 벗어던지더니 내 눈앞에 등짝을 들이밀었다. 엄마, 나 여기 광배근 나온 거 보여? 만져 봐. 어딘지 알겠어? 이거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 잘 보이냐고, 응?


웃자고 한 아들 말에 내 진지병이 또 도졌다.


지독한 아들 사춘기를 지나며 내가 깨달은 건, 아들의 광기가 아니라 내 안의 광기였다. 광기에 가까운 불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연 27조 사교육 시장을 견인하는 에미들의 불안. 저 먼 옛날 천적으로부터 우리 종을 보호하고 살아남게 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사회를 모두 자식 사랑이라는 욕망으로 포장하여 이상한 광기로 몰아넣고 있는 그것.  


그 안에서 함께 요동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온몸의 힘을 빼는 연습을 한다. 아들이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과장하며 던지는 말들 앞에. 진지하게 경청하되, 가볍게 되받아칠 줄 알기. 넘겨짚거나 평가하거나 충고하는 것 절대 금물이다. 무엇보다 내 안의 불안 중추가 덩달아 요동치지 않도록 잘 다스릴 것.


고수의 화법을 수련하기 위해 오늘도 정진을 다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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