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진부하지만 단단한 그 말
그래서, 직업훈련과정을 마친 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시 풀타임 알바를 구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호주로 갈까 캐나다로 갈까, 아님 AI 관련 학원을 좀 더 다니며 자격증을 제대로 하나 딸까. 아빠 말처럼 중장비 자격증이나 도전해 봐? 에이, 그도 아니면 그냥 군대나 가야지~ 하던 중이었다. 좋아하는 유튜버가 홈페이지 관리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내자 경력도 없는 게 당돌하게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난 직후. 아들은 우연히 친구가 일하던 술집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그곳에서 바로 다시 알바를 구했다.
올해 초와 똑같이 다시 파트타임 알바로 돌아온 것이다. 오후 5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까지 일하는, 하루 8시간 풀타임 술집 알바를.
그럼 지난 8개월 동안 아들은 무얼 얻었나. 어이없지만, 광배근이다. 상체 운동 좀 하는 남자들이라면 안달 난 부위 중의 하나라는, 소위 이소룡 옆구리 근육이라고 불리는 그것. 우리는 아들이 IT 수업에 진심이길 바랐지만, 이번에도 아들의 진심은 수업을 마친 후 들렀다 오던 동네 피트니스에 있었다. 게다가 아들은 직업훈련을 다니면서도 주말은 동네 장어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이미 좋은 조건의 직원 제안을 받은 터였다. 근데 어느 날 친구 따라 옆동네 술 마시러 갔다가 덜컥, 술집 알바를 구한 것이다.
왜 굳이?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아들의 반응이다.
그러니깐~ 내가 왜 그랬지?
나는 그저 또 웃는다. 그래, 성급하게 결정하고 난 뒤 하는 후회도 해봐야지. 그래야 나중에 어떤 선택 앞에 좀 더 신중해질 테지.
술집 알바를 시작하자 그동안 들쑥날쑥했던 아들의 밤낮이 완전히 180도로 바뀌었다. 새벽 1시가 넘어 들어온 아들은 TV를 보고 잠들었다가 정오쯤 일어나 밥 한 끼를 챙겨 먹고 일을 나갔다. 처음 한주는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조금 예민해져 있었다. 하지만 주급이 통장에 꽂히자 다시 목소리가 예전처럼 말랑해졌다. 정식으로 일하기로 하고 2주 차. 아들은 사장님 보다 먼저 출근해 문을 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새벽에 혼자 마감을 했다. 3주 차. 한밤중에 손가락을 베어 피가 많이 났다며 전화가 왔다.
"손가락을 왜?"
"토마토 심지 잘라내려다 힘 조절을 잘못했어."
"뭐? 너, 주방에서 일해?"
그때야 알았다. 서빙을 하고 있었던 아들이 주방에 들어가 재료 손질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크지 않은 술집이라 사장님이 직접 요리도 하고 경영도 하는 곳이었다. 홀이 한가하면 주방에 들어가 꼬치도 끼고, 요즘은 사장님이 요리도 하나 둘 가르쳐 주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이모부 병원에 가서 손가락을 꿰매며 돌아오던 길.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아무래도 이쪽 외식업 쪽으로 일해야 될 거 같아. 이제 와서 다시 공부하게 될 거 같지는 않고."
이어 아들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는 건, 뭔가 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사장님은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반 밖에 안 됐는데, 이미 식당을 3개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근처에 밤늦게까지 손님이 북적북적한 곳은 이곳뿐이라고. 지금 술집은 사장님이 직접 요리를 하고 나머지 두 곳은 각각 요리사를 고용해서 가족들이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 하루 매출만 8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사장님이 몇 년 안에 식당 잘 키워서 600억 매출로 만들어 낼 거래. 그래서 낮에는 홈페이지 만드는 학원 다니시고, 밀키트도 만들어 파시려고 연구 중이시래. 정말 대단하지?"
"와, 사장님이 야심이 만만하시구만. 외식업계의 스타트업 같은 거네. 서빙만 하는 줄 았았지~ 네가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배울 줄이야. 너무 좋은 기회다. 열심히 배워."
직업훈련학교에 다니기 전. 그러니까 연초만 해도 아들은 동네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나름 이곳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직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하지만 그해 겨울. 주방에서 시작된 불이 기름을 타고 환풍기로 올라가는 바람에 순식간에 레스토랑은 전소되었고 아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8개월 동안의 직업훈련이 별 성과 없이 끝나갈 때쯤. 아들은 지붕을 올리기 시작한 그 레스토랑이 재오픈하면 다시 정식으로 일해볼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 아들은 생각지도 못한 동네 술집에서 토마토를 썰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한 아들이 너무 반가워 나는 아들이 일한다는 가게를 검색해 보았다. 수제 꼬치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단 그곳엔 사장님의 간단한 이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젊은 사장이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시도해 보고 싶어 가게를 내게 되었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주말. 조카의 일이라면 늘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언니 부부와 함께 아들의 가게를 찾았다. 술을 자주 즐기지 않는 우리는 메인 메뉴 대여섯 개를 주문한 후 왁자지껄 아들의 또 다른 시작을 응원했다. 꼬치들은 모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간이 딱 맞았다. 재료도 신선하고, 안주 구성에 센스가 묻어나는 데다, 짬뽕국물은 깔끔하면서도 끝맛이 고소했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젊고 인상 좋은 사장님이 나와서 우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우리도 함께 덕담을 나누며 아들을 부탁했다. 이모부와 아빠에게 팁을 두둑이 받은 아들이 가게를 나서는 우리 뒤에서 서서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부모들처럼 많은 자원을 가진 부모는 아니지만, 편견은 없는 부모구나. 그것이 지금 아들을 주저 없이 응원할 수 있는 동력이었구나.'
식당을 나서는데, 오랜만에 다시 그런 긍정적인 생각들이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다시 어떤 가능성을 향해 내 마음이 조금 문을 열었다. 젊은 시절 경험 중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지 않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진부하지만 이 단단한 말을 다시 믿어보기로 한다.